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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날인 없애니 ‘주민증’ 허위발급 기승

절차 간소화 후 신원확인 어려운 점 악용 … 3자가 분실신고 후 자기 사진 붙여 재발급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지문날인 없애니 ‘주민증’ 허위발급 기승

지문날인 없애니 ‘주민증’ 허위발급 기승
최근 카드 발급을 위해 C은행을 찾은 회사원 김모씨(26·여)는 은행 직원에게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신분 확인을 위해 내민 자신의 주민등록증이 은행 확인과정에서 ‘가짜’로 판명나 카드 발급이 중단된 것. “무슨 이야기냐”며 따지는 김씨에게 직원은 “주민등록증 발급 날짜가 조회 결과와 다르니 가짜 주민등록증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운전면허증을 보여줘도 은행 직원은 믿으려 들지 않았다. 곧바로 자신의 거주지 동사무소인 부산시 남구 대연4동사무소를 찾은 김씨는 비로소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김씨의 확인 결과, 동사무소 주민등록증 발급 대장에는 자신이 직접 2001년 1월5일 동사무소에 찾아와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재발급 사유는 ‘분실’. 하지만 김씨는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 소재로 바꾼 지난 2000년 9월 이후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동사무소 재발급 확인 대장에 남겨진 사진도 전혀 모르는 사람의 것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진을 가져와 김씨 명의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던 것. 그러나 김씨는 물론, 발급기관인 동사무소도 1년여 동안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동사무소측은 즉시 김씨에게 ‘착오 발급’에 대해 사과한 뒤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김씨는 그날 이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지난 1년여 동안 자신의 주민등록증이 어떻게 사용되었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씨의 경우처럼 일선 읍·면·동 사무소의 주민등록증 허위 발급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행정당국은 속수무책. 지난 한 해 주민등록증 허위 발급으로 김씨와 같이 황당한 경험을 한 사람은 전국적으로 40여명(행정자치부 추산)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김씨처럼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무엇인가 하려다 허위 발급 사실을 알게 된 경우만 합산한 통계이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얼마나 될지 추산이 불가능하다.

일선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이러다 주민등록 담당자들이 모두 징계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자에 대한 본인 확인만 철저히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일에 일선 공무원들이 이렇듯 엄살을 떠는 이유는 뭘까? 서울시청 자치행정과 장영준씨는 “이 모든 게 지난 99년 3월 주민등록증 재발급 절차 간소화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장씨는 “예전에는 재발급 신청자가 주민등록증 뒷면에 지문날인을 했기 때문에 현재의 얼굴이 옛날 사진과 많이 달라도 최초 발급 때 남겨놓은 10지문과 신청자의 지문을 대조해 보면 금세 본인 여부가 드러났다. 그러나 간소화 이후 지문날인 제도가 생략되면서 기존 화상에 입력된 사진과 재발급 신청인의 얼굴을 직원이 육안으로 대조하는 것 외에는 본인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즉 일선 창구 직원이 눈썰미가 없다거나 판단을 잘못하면 엉뚱한 사람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셈이다. 부산시 대연4동사무소 박경호 동장은 “갑자기 살이 쪘다거나 빠졌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특히 여성 민원인의 경우 헤어스타일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육안 확인은 불가능한 상태고, 미심쩍어 전화를 거는 등 시간을 끌면 공무원이 불친절하다며 온갖 욕을 다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동장은 공무원의 과실 부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추적하면 되겠지만 일선 동사무소 인력이 너무 모자라다 보니 그럴 만한 시간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이해를 구했다.

문제는 주민등록증 허위 발급이 본인에겐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제천시 영천동에 사는 박모씨(30·여)가 바로 그런 경우. 박씨는 지난해 9월 보험형 적금을 인출하기 위해 K보험사를 찾았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계좌에서 적금 1790만원이 무려 10여 차례에 걸쳐 빠져나간 것이다. 보험회사측은 “당신이 통장을 잃어버렸다며 통장갱신 신청을 한 뒤 돈을 찾아가지 않았느냐”고 도리어 볼멘소리를 했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달 전쯤 박씨의 거주지 동사무소인 영천동사무소에서 누군가가 박씨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뒤, 통장과 비밀번호를 바꾸고 적금을 모두 찾아간 것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붙잡힌 범인 신모씨(30·여·보험설계사)는 박씨의 친구. 신씨는 자신의 외모가 박씨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주민등록증 허위 발급에 나섰고, 동사무소는 그 두 사람을 전혀 구별해내지 못했다. 신씨는 사기와 공문서부정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처럼 사기에 이용되지 않더라도 허위로 발급된 주민등록증의 쓰임새는 많다. 그중 가장 흔한 사례는 미성년자의 출입이 금지된 유흥업소에 위장 취업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주민등록증을 허위로 발급받는 경우다.

지문날인 없애니 ‘주민증’ 허위발급 기승
인천시에 사는 윤모양(17)은 지난해 10월22일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사무소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언니 최모양(20)의 주민등록증을 허위로 발급받은 뒤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다. 인상착의가 너무 다른 것을 의아하게 여긴 직원이 마침 주민등록 대장에 쓰인 최양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본 것. 경찰에서 윤양은 “요즘은 주민증을 변조하면 들키기 쉽기 때문에 아예 이 방법을 쓴다. 그곳(룸살롱) 언니들은 다 그렇게 해서 취직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23일 해남군 해남읍사무소에 의해 경찰에 인계된 강모양(17)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월 친구의 언니인 문모씨(21)의 주민등록증을 허위 발급받은 강양은 이를 이용해 다방종업원으로 9개월간 일했다. 하지만 문씨가 은행에 갔다 자신의 주민등록증이 재발급된 사실을 알고 해남읍사무소에 조회한 결과, 주민등록 재발급 대장에 동생의 친구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강양의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경찰 조사 결과, 강양은 경찰과 군청의 미성년자 불법취업에 대한 합동 단속이 있을 때마다 허위로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단속망을 쉽게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주민등록증 허위 발급 피해가 늘면서 일선 담당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동사무소에 ‘본인 확인용 지문인식기’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최근 아파트 출입문의 개폐장치로 이용되는 지문인식기를 동사무소에 한 대씩만 설치하면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자의 본인 확인은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천시 영천동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민원인들이 지문날인을 피하는 것은 인권적 차원이 아니라 손가락에 인주를 바르고, 그것을 지워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따라서 손가락 하나만 갖다 대면 본인 여부가 즉시 확인되는 지문인식 시스템만 도입하면 이 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주민과의 한 관계자는 “본인 확인이 힘든 경우 민원인의 양해를 구한 뒤 지문 날인을 요구해 보고, 가족사항을 대조하는 등 본인확인 절차를 강화하라고 지시했지만 일선에선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일선 동사무소에서 쓸 수 있는 지문인식기 모델 개발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318호 (p32~34)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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