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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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난 통관 절차… 도난차량 줄줄 샌다

전문절도단 고급차 훔쳐 중국 등지로 밀수출 … 위장선적·정상품목에 섞여 ‘무사 통과’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2-08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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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크난 통관 절차… 도난차량 줄줄 샌다
    지난 10월22일, 출근길을 나선 한 중소업체 사장은 사흘 전 서울 삼성동 집 앞에 주차한 회사 소유 에쿠스 승용차가 창유리 파편만 남긴 채 사라졌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3개월 전 이 회사 직원 K씨도 강남 일대에서 회사 소유의 에쿠스를 이미 도난당한 터였다. 경기도 광주의 C씨도 지난 7월12일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스타렉스 승합차가 감쪽같이 사라져 경찰에 신고했다. C씨는 한 달 뒤 도난보험금 1450만원을 지급받았지만 차를 되찾지는 못했다.

    이들의 차는 어디로 갔을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국내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채업계 등에서 흘러나와 명의이전 없이 헐값에 거래되는 무보험 차량인 일명 ‘대포차’가 국내에서 활개치는 것과 달리, 도난차량의 상당수는 부산·인천·평택 등 항구를 통해 신차 가격의 절반 혹은 그 이하 가격에 해외로 밀수출되기 때문. 에쿠스의 경우 타이어와 엔진을 손본 뒤 비닐커버를 씌운 신차로 둔갑해 주로 중고차 수입을 금지한 중국으로 밀수출된다. 이는 중국인의 대형차 선호현상과 경제 급성장에 따라 등장한 신흥 부유층의 수요 때문.

    3년간 도난보험금 무려 606억원

    이와 관련, 손보업계는 이례적으로 지난 10월 초 관세청에 은밀히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손보업계는 올 들어 고급차량 도난이 급증하면서 도난보험금 지급액도 부쩍 늘어나자 근본대책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관세청에 도난차량 검색시스템 구축 및 합동 실사팀 구성을 제의한 것. 대한손해보험협회측은 “초기단계의 협의여서 아직 제 모습이 갖춰지진 않았다”고 밝혔다.

    아직 언론에 보도된 바 없지만,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국내 11개 손보사가 지난 98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3년간 지급한 도난보험금은 무려 606억원. 차량 대수만도 1만3597대다. 그마나 이는 자기차량손해(자차)보험에 가입한 경우다. 올 1~10월 경찰에 접수된 자동차 도난신고는 2만3838건. 하루 평균 80대가 도난당하지만 회수율은 70∼80%에 불과하다.



    손보업계는 밀수출 규모를 가늠조차 못한다. 상호 밝히기를 꺼린 한 손보사 보상관리 직원의 귀띔. “수출 중고차는 대개 5년 미만 운행된 차들이다. 이중 절도범의 집중 타깃이 되는 것은 2000 ~2001년식 대형 승용ㆍ승합차종이다. 우리 보험사에서 올 4~10월 도난보험금을 지급한 고급차종(에쿠스·스타렉스)도 수십대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도난차량이 해외로 빠져나가는지는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차량전문 절도단이 잇따라 검거되면서 밀수출의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11월2일에도 경찰은 지난 8월 그랜저·산타페 등 차량 12대를 훔쳐 몽골 등지에 팔아 2억여원을 챙긴 K씨(35) 등 3명을 구속했고, 이에 앞서 절도-운반-수출알선-해외 현지판매 등 역할분담 체계를 갖춘 절도단을 붙잡기도 했다. 경찰은 현재 서울 강남경찰서에 전담반을 두고 추적수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밀수출의 횡행은 도난차량이 줄줄 샐 수밖에 없는 수출 통관절차의 구조적 맹점 때문. 규제개혁위원회가 수출규제 완화 차원에서 2000년 1월부터 자동차 말소사실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점을 악용해 도난차량 불법수출이 횡행해도 관세청은 무방비 상태다.

    관세청은 “통관과정에서 수출물품 검사를 생략하는 게 원칙”이라 답한다. 그렇다면 관세청은 전혀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일까.

    “수출물품이 선박·항공기에 적재됐는지 확인하지만 물품내용과 수량까지 검사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판단에 따라 의심 가는 물품에 대해서는 전산으로 발췌검사를 실시하지만, 비율은 전체 물품의 0.03%다. 세관 소속 기동감시반도 순찰을 통해 종종 불법수출 물품을 적발하지만 사실 도난차량을 가려내기는 힘들다. 단, 경찰전산망과 연계하면 도난차량 검색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어느 정도 예방효과도 있을 것이다.”(관세청 수출통관과 관계자)

    예전엔 수출물품을 보세구역에 입고했다가 선적했지만, 요즘은 바로 선적하므로 ‘현장’ 적발이 어렵다. 실제 관세청의 도난차량 밀수출 적발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수출물품을 중고차 아닌 다른 품목으로 허위 신고한 뒤 컨테이너에 도난차량을 실어 다른 품목인 것처럼 위장해 선적하거나, 수출신고서엔 중고차로 기재했더라도 일반 중고차에 도난차량을 섞어 대수를 속이는 편법을 써도 적발되지 않는다. 더욱이 절도범들은 차량을 훔친 뒤 3~4일 만에 처분하고 있어 추적이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세청과 손보업계의 시각차가 커 도난차량 검색시스템 구축은 불투명하다. 수출차량은 차량번호판이 없어 경찰청사이트에서 운영중인 조회시스템으론 도난차량 확인이 불가능하다. 결국 차대번호를 확인해야 하는데, 부족한 세관인력으론 수출 신고된 차대번호와 실제 번호를 일일이 대조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대조하더라도 차대번호 위·변조차량의 도난 여부는 여전히 가려낼 수 없음을 내세워 관세청은 난색을 표한다.

    펑크난 통관 절차… 도난차량 줄줄 샌다
    절도단 검거에 주력하는 경찰도 시스템 구축에는 소극적이다. 경찰청 형사과 관계자는 “관세청 직원이 방문해 시스템 구축에 관한 1차 협의를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관세청에서도 아직 구상단계일 뿐 구체화된 내용은 없다”며 “경찰전산망과 연계하면 도난차량 검사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정보 보호문제가 걸려 있어 섣불리 매듭짓긴 힘들다”고 밝힌다.

    도난차량 검사로 통관절차가 까다로워지면 중고차 수출에 타격을 준다는 게 관세청의 논리. 하지만 정작 수출조합의 견해는 다르다. 수출서류 처리를 명확히 해 도난차량 수출을 적극 막아야 한다는 것. 한국중고자동차건설기계수출조합 박용호 이사장이 밝히는 이유는 이렇다.

    “도난차량은 덤핑 판매된다.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면 주문량도 급감한다. 올해 초 덤프트럭 40여대를 훔친 절도단이 검거된 적이 있다. 경찰이 인지한 게 아니라 연식에 비해 헐값인 점을 수상하게 여긴 필리핀 현지인의 수사의뢰가 있어 사건 해결이 가능했다.” 13년의 중고차 수출 경력을 가진 그는 수출 중고차의 20% 가량이 도난차량일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엔 영세업체를 포함해 400개에 육박하는 중고차 수출업체가 난립하고 있어 이들 중에는 전문절도단도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때문에 손보사들은 도난예방이 더 급하다고 지적한다. 차량도난이 많은 미국·유럽처럼 엔진 시동이 꺼진 후엔 똑같은 키가 아니면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이모빌라이저(immo bilizer)나 위성추적장치를 장착해 도난 즉시 차량수배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물론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현재 국내의 이모빌라이저 장착차량은 S사의 고급차종인 C모델이 유일하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중고차 수출은 8만3596대. 97년까지는 증가폭이 크지 않았으나 외환위기 이후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면서 98년부터 3년 연속 8만대를 넘어섰다. 동남아, 중남미, 동유럽, 중동지역 등에서 한국 중고차 수요가 폭증하면서 올 상반기 5만대 돌파에 이어 연말까지 10만대 판매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공급물량이 달리는 만큼 도난차량이 얼마나 섞일지는 알 수 없다.

    중고차 수출은 분명 외화벌이, 폐자원 재활용,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를 거두는 일석삼조의 ‘효자산업.’ 그럼에도 도난차 주인들의 이구동성을 곱씹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도난차량 증가는 1차적으론 손보사 부담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종 손해는 국민이 감수한다. 도난보험금 지급이 늘면 보험료도 오른다. 방지대책의 ‘실종’은 도난차량의 ‘해외 실종’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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