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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조직위 쌍두마차 ‘삐그덕’

이연택 위원장 한때 사의, 갈등설 분출 … 정몽준씨만 앞세우는 의전·의사결정에 불만?

월드컵조직위 쌍두마차 ‘삐그덕’

월드컵조직위 쌍두마차 ‘삐그덕’
12월2일 오전 10시 부산 김해공항. 전날 저녁 2002 월드컵 조 추첨식을 끝낸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겸 대한축구협회 회장 부부,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부부 등 VIP들이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은 일등석에 자리잡았다.

잠시 후 월드컵조직위의 또 다른 수장인 이연택 공동위원장이 탑승했다. 이위원장을 안내하던 수행원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당황했다. 이위원장의 좌석이 일등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 조직위 의전부에 따르면 이위원장은 이미 11월 말 이 항공편의 일등석을 예약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애당초 정몽준 위원장은 다른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위원장은 블라터 회장과 동행하기로 하고 전날 밤 축구협회를 통해 일등석 스케줄을 다시 짤 것을 지시했다. 그 과정에서 축구협회가 이위원장의 탑승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일등석 좌석 배치표를 짜 항공사에 통보하는 바람에 이위원장의 좌석이 비즈니스석으로 밀려난 것이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위원장은 일단 비즈니스석을 타고 서울로 돌아와 그날 저녁까지 조직위 사무실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정작 문제가 불거진 것은 그 다음날. 12월3일 오전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난 이연택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문광부 담당자는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사의를 표명했지만 장관이 만류했다”고 확인했다.

이날 오후 6일간의 월드컵 홍보투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이위원장은 12월9일 오후 귀국해 기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위원장이 “사퇴하지 않는다”고 말해 파국으로 치닫던 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하게 됐다. 그러나 조직위 직원들은 “언제 다시 문제가 불거질지 모른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02 월드컵 준비를 총지휘할 조직위원회 두 공동위원장의 갈등이 심상찮다. ‘축구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정몽준 위원장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 반해, 또 다른 한 축인 이연택 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갈등의 뿌리는 박세직 전 위원장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8년 5월 조직위원장에 임명됐던 박 전 위원장은 정몽준 당시 축구협회장 겸 조직위 수석부위원장과의 갈등설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7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대신 선택된 것이 같은 해 10월 출범한 이위원장(당시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과 정위원장의 공동위원장 체제. 정치권에서는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정위원장이 월드컵 성공 개최의 열매를 독차지해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되는 것을 우려한 정부 여당이 고육지책으로 공동위원장 체제를 만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월드컵조직위 쌍두마차 ‘삐그덕’
김한길 당시 문광부 장관은 “정위원장이 FIFA 등 국제 업무를, 이위원장은 시설 등 안살림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업무 분장이나 조직 재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정위원장으로서는 공동위원장 체제가 달가울 리 없었고, 이후 두 위원장은 여러 부문에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조직위 내부 관계자들은 “이위원장이 비행기 좌석 문제만 갖고 화가 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동안 누적돼 온 갈등이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 특히 조 추첨 행사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데 대해 이위원장의 분노가 컸다는 지적이다. 조 추첨 행사 가운데 조직위가 가장 고심한 것은 지난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가 건넬 FIFA컵을 누가 받아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결국 조직위는 FIFA의 유권해석을 받아 ‘개최국 축구협회 회장 자격’인 정위원장이 받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더욱이 조 추첨자로 단상에 오르는 것 역시 정위원장으로 결정되면서 이위원장은 행사 내내 관심의 대상에서 소외돼 있었다.

한편 그동안 개장된 월드컵 경기장 행사에서도 이위원장에 대한 ‘관심 부족’은 계속됐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1월8일 열린 전주 월드컵 경기장 개장 행사. 지자체와 축구협회가 협의를 통해 의전문제를 결정한 이 행사에서는 문광부 장관을 중심으로 가장 상석인 왼쪽에 정위원장이 앉은 반면, 이위원장의 좌석은 가운데서 오른쪽 네 번째였다. 전북 출신으로 이날 행사만큼은 주도하고 싶었던 이위원장은 이러한 ‘푸대접’에 크게 마음 상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축구협회 남광우 사무국장은 “FIFA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FIFA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정위원장은 국가 원수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어 두 위원장을 똑같이 배려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직위에서는 공동위원장 중 한 명이지만 실제로는 격이 다르다는 것. 따라서 의전상 우선 배려받는 것 역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조직위에서는 축구협회의 무성의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대부분의 개장 행사는 외국팀을 불러 친선경기를 갖는 A매치 게임과 함께 열렸고 이 때문에 진행에서 조직위가 아닌 축구협회가 주도권을 행사해 왔다. 이 때문에 협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정위원장이 주요 고려 대상이 되고 상대적으로 이위원장이 소외됐다고 조직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의전상의 마찰뿐 아니라 실무 결정사항 처리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월드컵조직위원회의 모든 결재 문서에는 위원장 서명란이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총리실에서만 23년을 근무한 공무원 출신인 이위원장이 퇴근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반면, 겸직이 많은 정위원장의 경우 사무실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결재는 주로 이위원장이 먼저 하고 정위원장이 나중에 하는 모양새로 굳어졌다. 세세한 사항까지 체크하는 정위원장이 이미 이위원장의 결재를 받은 사안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결국 동등한 관계인 공동위원장의 결재 절차가 마치 상하관계인 것처럼 변해버렸다는 것.

지난달 3일 열린 ‘성직자 친선축구대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조직위가 주관한 이 행사는 사실상 정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졌다. “조직위가 왜 이 행사를 주관해야 하느냐”고 이위원장이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 최종적으로 행사 지원과 예산 집행은 이위원장의 결재 없이 처리됐다고 조직위 관계자는 전한다.

올해 초 정위원장은 조직위 총무부에 지시를 내려 이위원장의 업무 추진비 사용명세를 별도로 보고받기도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이위원장이 크게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 그는 축구계 인사들과 만난 사석에서 “내가 출장비까지 받아 써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축구계의 한 인사는 “이러한 파행은 정위원장의 넘치는 의욕 탓이라는 게 축구계 사람들의 여론”이라고 말한다. 축구협회장이라는 별도 직함이나 국제 축구계에서의 위상으로 볼 때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정위원장(50)이 연장자인 이위원장(65)의 자존심을 적절히 배려해야 옳았다는 것. 만약 그랬다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지지 않았으리라는 지적이다.

반면 정몽준 위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축구협회 조중연 전무이사는 “최근 문제는 결국 이위원장이 너무 소심하게 반응한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위상이나 그간의 공에 차이가 있으므로 의사결정 주도권 역시 정위원장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조전무는 “이위원장은 정위원장을 막기 위해 (정부 여당에서) 보낸 사람 아니냐”는 반문도 잊지 않았다.

서울 무교동 파이낸스 빌딩에 있는 조직위 사무실. 6층에 있는 두 위원장의 사무실은 불과 10m 남짓 떨어져 있다. 그러나 두 위원장은 공동위원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올 9월 말에 이르러서야 첫 오찬 회동을 가졌다. 조직위를 이끄는 쌍두마차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산적한 현안 앞에서 또 어떤 파열음을 낼 것인가. 이위원장이 “공동위원장 체제로 월드컵을 치른다”고 밝힌 12월9일, 두 위원장 사무실 사이에 걸려 있는 표지판은 ‘월드컵 앞으로 173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1.12.20 314호 (p12~13)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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