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2001.12.06

각선미의 적 ‘정맥류’를 잡아라

다리 정맥 검붉게 튀어나오는 혈관질환 … 피곤·저림·부종 증상 동반

  • http://snu.snuclinic.co.kr

    입력2004-11-25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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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선미의 적 ‘정맥류’를 잡아라
    주부 박모씨(45)는 처녀 때부터 다리가 날씬하고 예뻐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그런데 결혼 후 둘째 아이를 출산한 뒤부터 종아리 부위에 거뭇거뭇한 혈관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흉하게 드러난 혈관 때문에 반바지나 스커트는 입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또 조금만 오래 서 있거나 걸으면 그날 저녁 종아리가 부어오르고 저려서 한참 다리를 주물러야 했다.

    박씨를 괴롭히는 것은 다리의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서 검붉게 튀어나오는 정맥류(靜脈瘤)라는 혈관질환. 이는 다리 정맥혈의 속도와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판막이 망가지면서 피가 역류해 정맥이 늘어나거나 굵어지는 질병이다.

    정맥류는 흔히 서양인에게만 발견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보기 흉한 정맥류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습성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따름. 실제로 정맥류가 있는 40대 이상 중년 여성들은 대부분 반바지나 짧은 치마를 입지 않으며, 수영장이나 공중목욕탕에도 가지 않는다. 박씨 역시 반바지를 입은 사진에는 어김없이 압박붕대로 다리를 가렸으며 아이들과 수영장에 갈 때도 긴 치마로 다리를 감추곤 한다.

    다리는 인체 중에서 심장과 제일 멀리 자리잡고 있어 혈액순환 장애가 가장 흔한 부위. 정맥류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만큼 정맥혈이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에 난관이 많다는 이야기다. 혈관을 압박해 피를 심장으로 보내주는 종아리 근육의 힘이 모자라거나 밸브 역할을 하는 판막에 이상이 생기면 피의 역류 현상이 일어나 혈관이 굵어지고, 서로 꼬이는 정맥류가 발생하는 것. 특히 서 있을 때는 피가 상대적으로 강한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피의 역류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동맥혈의 순환에 장애가 생기면 동맥경화에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렇듯 혈액 역류를 차단하는 판막의 기능이 저하되는 원인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의학계에서는 우선 유전적 요인과 임신을 첫째 요인으로 꼽는다. 즉 선천적으로 혈액순환 기능이 약한 여성들은 정맥류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최근 의학계에 보고된 조사 자료도 이를 입증한다. 한국 사람의 경우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세 배 정도 정맥류에 더 많이 걸린다는 것. 특히 여성 환자의 절반 이상이 임신 당시 정맥류가 생긴 것으로 드러나 임신과 정맥류 발생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다. 임신을 경험한 여성이 정맥류에 잘 걸리는 이유는 두 사람분의 혈액을 감당하려면 임산부의 정맥혈이 자연스럽게 굵어지는데다, 임신 말기에는 커진 자궁이 복부를 압박해 다리 정맥혈의 순환을 방해하기 때문. 이런 현상은 출산 후 대개 없어지지만 정맥이 심하게 망가질 경우에는 정맥류로 발전하게 된다.



    반면 이런 선천적 원인 외에도 직업의 종류와 생활습관도 정맥류를 발병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오래 서 있거나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야 하는 교사, 미용사, 요리사 등의 직업여성이나 보초를 많이 서는 군인들에게 흔히 정맥류가 나타난다. 배에 힘을 많이 주는 경우에도 생길 수 있으므로 변비가 있는 사람이나 꽉 끼는 옷을 즐겨 입는 사람도 정맥류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정맥류가 통증이 없다 해서 방치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최근 남편과 함께 필자를 찾은 주부 김모씨(55)는 다리에 정맥이 튀어나오는 증상이 수십년 넘게 있었지만 별다른 통증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심각한 합병증까지 얻은 경우. 몇 년 전부터 이틀에 한 번 정도 밤에 자다가 쥐가 나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서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대수술을 해야 하는 단계까지 와 있었다.

    정맥류에 걸린 환자의 가장 큰 특징은 정맥이 피부 밖으로 흉물스럽게 튀어나온다는 점. 그 밖에 피곤, 저림, 부종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런 증상만으로 정맥류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이 경우 정맥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김씨와 같이 밤에 자다가 쥐가 나는 증상(night cramp)이다. 또 정맥류는 일반적으로 중년 이후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절염이나 내과적 질병으로 오인하기 쉽다. 이 때문에 다양한 통증 치료를 받다가 나중에야 정맥류 치료를 받는 환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맥류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제대로 진단받지 않으면 김씨처럼 혈전 정맥염과 피부궤양 같은 심각한 합병증에 걸릴 수도 있다.

    각선미의 적 ‘정맥류’를 잡아라
    그렇다면 정맥류를 예방하고 치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평소에 많이 걷고, 정맥류에 걸리더라도 규칙적으로 걷는 운동을 해주라는 것이다. 다리 정맥의 혈액순환을 담당하는 종아리 근육을 활발히 사용하면, 정맥혈의 ‘펌핑력’이 좋아져 정맥류를 예방하고 정맥류에 의한 증상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 반면 무거운 짐을 드는 것과 같이 복근에 힘이 들어가는 운동은 해로울 수 있다. 한 자세로 오래 서 있는 일을 피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 하지만 일단 정맥류 증상이 나타났다면 틈틈이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해 다리 정맥의 압력을 줄여야 한다. 서 있을 때는 탄력붕대를 무릎부터 발까지 적당한 압력으로 감아주는 것도 좋다.

    정맥류가 심해지면 혈관 경화요법이나 외과적 수술 등의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 혈관 경화요법은 약물을 정맥류에 주입한 다음 약 3주간 압박하는 방법. 시술 시간은 30분 내외며, 시술 후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외과 수술의 하나인 정맥절제술은 환자가 치료받고 걸어서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에 ‘보행’(ambulatory)이란 말을 덧붙여 ‘보행 정맥절제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수술법의 가장 큰 장점은 지름 3mm 이하의 작은 구멍을 통해 정맥을 제거하기 때문에 흉터가 작고 합병증이 거의 없으며 수술 후 곧바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혈관 굵기가 0.5mm보다 가늘면 혈관 경화요법을, 굵으면 보행 정맥절제술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혈관 경화요법은 치료 후 압박이 매우 중요하므로 압박이 어려운 허벅지나 오금, 발목 등 부위의 정맥류에는 적용하기가 어렵다.

    특히 임신 말기에는 다리를 조여주는 압박 스타킹을 신는 것이 정맥류 예방에 도움이 되며, 증상이 보이기 시작하면 심한 정맥류로 발전하기 전에 주사로 치료하는 혈관 경화요법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임신중에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출산 직후에 저절로 좋아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출산 후 적어도 6개월은 지나서 치료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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