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2001.12.06

초라한 제국, 옛 영화여 다시 한번

소련 해체 10년 그 후 … 구소련 향수 속 유라시아 대륙 맹주 복귀 ‘부푼 꿈’

  •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 kimkihy@donga.com

    입력2004-11-25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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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라한 제국, 옛 영화여 다시 한번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공격에 쏠려 있던 지난 11월 초 러시아군 총참모부에 근무하는 한 영관급 장교는 “‘대(對) 테러 전쟁’을 핑계로 미군이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의 턱밑인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 장기주둔하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정작 러시아 국민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사건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우즈베키스탄에 진주한 미군 일부 병력이 아프간 공격이 마무리돼도 앞으로 상당 기간 남아 있을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군은 지난 10월 아프가니스탄 접경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공군기와 지상군 병력을 배치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러시아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도착한 미군은 과거의 주적인 구소련군이 쓰던 군사기지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두 나라의 군사 기지와 공항 영공을 빌리는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약속했다.

    미국이 구소련 영토에 주둔

    그런데 구소련 영토에 미군이 비록 소수나마 장기(영구) 주둔하는 것은 기존 러시아의 안보개념으로서는 엄청난 위협이다. 러시아는 국경을 맞댄 주변 국가를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으로 유지시켜 서방과의 사이에 놓인 완충지대로 삼는다. 러시아가 동유럽 국가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결사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 완충지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국경을 맞댄 중앙아시아 국가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러시아가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뜻밖이다. 러시아 정부는 미군의 우즈베키스탄 주둔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내부적으로 군부 등 일부에서 조심스레 ‘안보위협론’을 제기하면서 불만과 우려를 나타냈을 뿐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전에 없이 밀접해졌다. 러시아는 미국의 보복공격을 일관되게 지지했다. 두 나라는 이제 상대방을 ‘전략적인 동반자’로 부르고 있다. 러시아 언론과 외교전문가들은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부의 대외정책이 ‘친(親)서방 노선’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집권한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반, 전임자였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친서방 외교노선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의 개정 문제나 테러국가 지정 문제, 체첸사태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했고 대규모 외교관 맞추방전까지 벌였다.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내세우고 집권에 성공해 “러시아를 다시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푸틴이 초반부터 이러한 대미 강경 외교노선을 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푸틴의 외교 정책은 민족주의 세력은 물론 야당인 공산당의 지지까지 받았고 높은 국민적 인기의 한 원인이 됐다. 초강대국에서 2류국가로 전락한 데 대한 러시아 국민의 울분을 일시적으로나마 시원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권 2년째를 맞아 푸틴의 대미 외교 방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경제지원을 얻어내거나 투자를 더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는 등 실용적으로 바뀐 것. 러시아는 최근 미국을 상대로 전 세계에서 치열하게 벌여온 군사 경쟁마저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소련 시절부터 미국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 쿠바의 군사기지와 베트남 캄란만 해군기지를 포기하고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군은 더 이상 과거의 소련군처럼 전 세계를 작전 지역으로 하지 않는다. 푸틴 정부가 채택한 신군사 독트린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기본적인 작전 지역은 러시아 영내며 이 지역의 안전 보장이 가장 큰 목적이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된 지 올해로 10년. 그동안 힘의 균형이 무너진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외교 군사 분야 등에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 러시아가 최근 들어 미국과 더 이상 대등한 경쟁 관계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존심 상하지만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현실을 자인하고 ‘보통국가’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나라를 재건하자는 것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15개 공화국은 소련 해체 후 10년 동안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로 가는 경제개혁과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었다.

    소련 해체는 국제정치적으로는 미-소 양 진영의 무한정 대립과 갈등의 냉전 시대를 종식시켰지만 정작 러시아 국민에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

    초라한 제국, 옛 영화여 다시 한번
    소련 해체와 함께 가장 먼저 닥친 것은 경제 후퇴와 생활 수준 저하였다. 소련 해체 후 첫 해인 92년부터 국내총생산(GDP)의 마이너스 성장 행진을 시작했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의 집권을 전후로 러시아의 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푸틴 정부 출범 후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진정된 것도 경제 회복의 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국제석유가가 99년 이후 계속 강세를 보이고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올라간 것이 경제 회복의 가장 주요한 요인. 그러나 여전히 소련 시절의 경제 수준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겪은 경제 후퇴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혼란과 시행착오였다. 러시아는 92년 초부터 가격자유화와 사유화 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예고르 가이다르 전 총리와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부총리 등 30, 40대의 소장 개혁파들이 전면에 나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병폐를 이른바 ‘충격요법’(Shock Theraphy)으로 치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살인적인 물가 폭등과 루블화 폭락, 실업, 사유화 과정에서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 많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급진 개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높아지자 옐친은 다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 등 구소련의 산업 테크노크라트 출신들을 기용해 개혁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옐친 정부는 개혁의 일관성이 없다는 서방의 의심을 받으며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 임기 말년에 옐친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한자릿수에도 못 미쳤던 가장 큰 원인은 경제를 파탄시켰다는 비난 때문이었다.

    그러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시장개혁이 10년째 계속되면서 이제는 러시아 시장경제가 외형적으로는 자리를 잡았다. 민영화와 사유화의 결실로 이제는 경제에서 민간부문의 비중이 공공부문보다 더 커졌다. 모스크바의 트로이카 디알로그 투자은행의 크레스웨퍼 조사실장은 “러시아 시장을 보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개혁 초기에는 정치적 변화에 따라 다시 사회주의식 통제경제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국내외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공산당이 집권한다 해도 과거로의 회귀는 어려운 분위기다. 공산당마저도 “우리의 정강정책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소련 해체로 시장개혁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시작됐다. 공산당의 1당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의회와 선거, 다당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통치와 언론탄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푸틴 집권과 함께 오히려 언론탄압과 권력의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19일, 91년 보수파의 쿠데타를 시민의 힘으로 막아낸 ‘8월 사태’ 기념 집회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10년 전 시민혁명으로 얻어낸 언론자유가 최근 다시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정부가 최대 민영방송인 NTV의 경영권을 뺏은 것이 대표적인 언론탄압 사례다. 정부는 평소 비판적인 NTV에 대해 지난해부터 집중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해 사주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회장을 탈세와 횡령혐의로 구속했다. 구신스키는 보석으로 풀려나 1년째 스페인에 망명중이다. 정부는 국영기업인 가스프롬을 동원해 경영난에 빠진 NTV의 지분을 매집했고 결국 이사진을 개편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예브게니 키셀료프 사장 등과 보도국 간부들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90년대 초 소련 전역을 열병처럼 휩쓸고 지나갔던 주권독립과 민족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으로 소련 해체가 촉발됐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옛날이 그립다”는 향수의 확산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1.1%가 “소련 시절이 그립다”고 대답했다. 반면 “현재가 더 낫다”는 대답은 27.7%에 지나지 않았다. 응답자의 73.5%는 “소련 붕괴가 유감”이라고 대답했고 63.5%는 “막을 수도 있었다”고 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반면 “소련 붕괴가 필연적이었다”는 답은 25.3%였고 “91년 12월 당시 옐친 전 대통령 등이 소련을 해체하기로 한 결정이 정당했다”는 응답자는 겨우 9.5%에 지나지 않았다.

    초강대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사회 혼란과 국민의 생활 수준이 크게 낮아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과거에 대한 향수로 나타난 것이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소련 해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여전히 다양하다.

    공산당 등 일부 정치세력은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연방(소련)의 재건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비록 ‘위대한 러시아 재건’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정책은 현실적이다. 구소련 국가를 재통합하겠다는 환상적인 시도보다 상호 협력을 이끌어내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단일세력으로 묶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 ‘소련 해체’라는 대사건을 통해 러시아는 초라한 대국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과거와 같이 단일한 이념에 바탕을 둔 소련제국의 부활을 노리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부쩍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대륙세력의 대표적인 국가. 문명사적으로 보면 10년 전 소련의 붕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에 대한 대륙세력의 패배로도 해석된다. 러시아가 최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축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심이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러시아의 대륙성을 이용해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의 하나다. 러시아는 어쩌면 다시 유라시아 대륙의 맹주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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