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2001.11.29

“개에 미친 내 인생… 개 훈련이 즐거워요”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1-24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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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에 미친 내 인생… 개 훈련이 즐거워요”
    소년은 유난히 개를 좋아했다. 그가 개밥을 챙기고 털을 빗기고 배설물을 치우면 아버지는 늘 용돈을 쥐어줬다. 하지만 소년에겐 무엇보다 개를 돌보는 일 자체가 즐거웠다. 개 사료가 따로 없던 시절, 시장을 돌며 양동이에 생선 찌꺼기를 채워오는 일조차 그에겐 ‘놀이’였다. 그런 어느 날 소년은 문득 아버지의 서가에서 개 사육·훈련 입문서를 빼들었고, 중2 때 3등 견훈련사 자격을 따냈다. 이후 개는 그에게 ‘존재의 이유’가 됐다.

    지난 11월6일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의 용인경찰견훈련소. 개를 좋아한 소년은 장년의 견훈련소 소장으로 변모했다. 박용영 소장(36)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특수견 훈련 전문가다.

    특수견은 말 그대로 특수목적으로 활용되는 개. 미국 테러사태 이후 중요성이 부쩍 커진 폭발물 탐지견은 물론 마약 탐지견, 군견(경비·추적·수색견), 일반 경찰견, 인명 구조견, 맹인 안내견 등이 모두 특수견의 범주에 속한다. 국내에서 특수견을 운용하는 곳은 경찰특공대(폭발물 탐지견 20여마리), 관세청(마약 및 폭발물 탐지견 30여마리), 각 군 군견대(군작전견 800여마리), 삼성그룹(인명 구조견 등 40여마리) 등이다.

    “아버지(60)가 평범한 직장인이면서도 특별한 개 애호가여서 늘 집에서 4∼5마리 개를 길렀습니다. 그 덕에 태어날 때부터 개와 연(緣)이 닿았죠.”

    그러나 박소장이 본격적인 특수견 훈련을 접한 건 군에서였다. 고교시절 연극에 빠져 졸업 후 한때 무명 연극배우로 지내던 그에게 가족들은 수의대 진학을 권했지만, 28사단 군견소대에서 군견 훈련조교로 복무하던 중 탁월한 훈련기술을 발휘, 전군 군견훈련 경연대회 5회 연속 1등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훈련교관이 ‘30년간 교관생활을 했지만 너 같은 놈 처음 본다’며 소질을 인정해 줘 솔직히 군대에 ‘말뚝’ 박으려 했는데 동료들이 ‘나중에 후회한다’며 강력히 만류해 마음이 흔들렸죠. 그래도 눈길은 개한테만 쏠렸습니다.”

    “개에 미친 내 인생… 개 훈련이 즐거워요”
    자신의 말마따나 ‘개 덕에 밥 먹고 살고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제대 후인 1989년 6월 결국 ‘개를 못 잊은’ 그는 경찰특공대(당시 치안본부 산하) 경찰견 훈련요원이 됐다. 국내에 폭발물 탐지견이 도입된 때가 87년이니 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대가 탐지견을 갓 운용할 무렵이었다. 이후 탐지견 훈련에 온힘을 쏟은 그는 ‘경찰 사상 최고의 핸들러(Handler·탐지견 관리요원)’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았다. 미국 CIA 특수작전견 훈련과정도 수료했다.

    경찰관 생활 만 2년이 지난 91년 9월. 때마침 삼성그룹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특수견을 좀더 깊이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한 달 뒤 삼성 계열의 한국안전시스템(지금의 에스원) 경비견관리소 수석훈련사(1등 훈련사)로 입사했다.

    그 후 8년간 삼성에서 근무하며 그는 미국 K-9(경찰견훈련학교) 경찰견 훈련과정, 독일 마약 탐지견 훈련과정, 독일 방위견 훈련과정을 잇따라 이수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견 운용국인 영국에서 경찰청(버밍엄) 경찰견 훈련교관과정까지 마치는 등 특수견 전문가로서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그러나 훈련 하나에도 몇 번씩 회의와 결재를 거듭하는 ‘조직의 생리’에 답답해진 그는 지난 99년 사표 내고 바로 사비를 털어 2000평의 훈련장을 갖춘 용인경찰견훈련소를 열었다. 박소장의 일은 민간 위탁 특수견의 훈련지도와 견훈련사 지망생 교육. 현재 3명이 그에게 ‘레슨’받고 있다. 훈련받는 개도 20마리다.

    박소장에겐 또 특수견 운용기관들로부터 특수견을 구해달라는 부탁과 훈련기법에 관한 자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경찰특공대와 군엔 기초훈련을 마친 개 20여마리를 ‘납품’하기도 했다. 연간 10여 번쯤은 경찰에서 암매장 사체 및 실종자 수색협조 요청이 들어오므로 인명 구조견을 이끌고 무보수로 나서기도 한다.

    그가 최고로 치는 특수견 종(種)은 독일산 셰퍼드. 핸들러가 교체돼도 2~4주면 친화력이 생겨 바로 훈련이 가능하고, 장애물 극복능력과 환경변화 적응력이 뛰어나며 집단사육이 용이해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된다는 것.

    이쯤에서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을 법하다. 진돗개라는 영민한 충견도 있는데, 왜 국내에서조차 특수견으로 활용되지 못할까. 박소장은 진돗개가 특수견으로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진돗개는 셰퍼드에 비해 체구가 작고 힘도 약하다. 또 수렵견 성질이 강해 동물 추적에 관심이 많아 사냥견으론 훌륭해도 군과 경찰의 대인(對人) 작전엔 적합하지 못하다.”

    박소장은 요즘 자신이 축적한 특수견 훈련지식을 전파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전문가용 견훈련서 집필도 서두르고 있다. 영국 미국 독일의 선진 훈련기법 중 장점만 추려내 ‘한국화’한 훈련서를 출간하려는 목표에서다. 현재 2권(전 6권)까지 원고를 끝낸 상태. 3년 뒤엔 ‘개 올림픽’격인 세계견훈련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꿈도 갖고 있다. 이르긴 하지만 네 살, 한 살 난 두 딸이 커서 특수견 훈련사가 되길 원하면 유학까지 보낼 생각도 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가스 탐지견까지 운용합니다. 미량의 누출 가스를 탐지해 사고를 예방하는 거죠. 특수견의 활용범위는 무한합니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인간에게 이로운 다양한 활용 용도와 훈련기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북한엔 폭탄을 장착한 채 탱크만 보면 돌진하도록 특수훈련된 대전차 파괴견도 있습니다.”

    대규모 국제행사들을 앞둔 한국의 사정상 특수견 수요가 많은데도 국내의 특수견이 크게 부족한 점, 능력이 떨어지는 특수견이 많다는 점도 그에겐 불만이다. 각급 기관의 특수견 운용방식에 대해 “부실하다”며 때때로 ‘쓴소리’를 내뱉다 보니 가끔 ‘난 척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아직 젊은 나이니만큼 탄탄대로를 걸은 셈이죠. 다른 전문가들이 30, 40년씩 익힌 갖가지 훈련기법을 16년 만에, 그것도 해외연수까지 두루 받으며 속성으로 마스터했으니 그럴 만도 하죠.”

    엑스레이 검색대가 플라스틱 폭발물을 못 가려내는 것처럼 기계장비가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체의 능력은 못 따라잡는다는 게 박소장의 지론이다. 영국 연수 당시 현지 스승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개 훈련에) 미친 사람이란 의미의 ‘크레이지 맨.’ 개 얘기만 나오면 100년이 넘는 특수견 역사를 술술 풀어내는 박소장은 특수견 훈련에 관한 한 영원한 ‘불감증 환자’다. 30여년을 귀따갑게 들어온 개 짖는 소리를 그가 단 한번도 지겹게 느낀 적 없는 이유다.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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