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2001.11.29

“1년 만에 온 보졸레 누보… 바로 이 맛이야”

무게는 없지만 싱그러운 느낌의 햇포도주 …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거품에 대한 비판론도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24 14: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년 만에 온 보졸레 누보… 바로 이 맛이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11월15일은 아주 신나는 날이었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기다리던 보졸레 누보의 시판일이었던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 2층 양식당 ‘비즈바즈’에는 1200여명이 몰려 발 디딜 틈 없는 가운데서도 각자의 글라스마다 와인을 듬뿍 채워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보졸레 누보의 코르크 마개가 열린 시간은 정확히 15일 0시였다. 입구에서 나눠준 파카글라스를 하나씩 들고 몇 시간 전부터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표정엔 조금 후면 전 세계 최초로 보졸레 누보를 마실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스무 가지의 보졸레 누보를 원하는 만큼 맘껏 마실 수 있었던 이날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자리가 끝난 후에도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보졸레 누보 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행사입니다. 작년 참가인원이 300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뜨거워진 열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와인 포털사이트 와인21닷컴(www.wine21.com)의 최성순 대표는 최근들어 온라인·오프라인의 와인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게 됐다고 말한다.

    “1년 만에 온 보졸레 누보… 바로 이 맛이야”
    “다양한 보졸레 누보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론 프랑스 와인업계의 상술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좀 걱정스러웠어요.”



    초보 와인 마니아로 올해 처음 축제에 참가한 김재연씨(26)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비단 김씨뿐 아니라 평소 와인도 소주, 맥주 같은 술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특정 지방의 와인을 둘러싼 이런 열기가 이상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졸레 누보’ 열풍은 거품이 다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성숙되지 못한 햇포도주의 출시 기념행사가 마치 대단한 마니아급 와인축제인 것처럼 부풀려진 것. 특히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와인 마니아들이 이렇게 많아졌는지 씁쓸하기도 하다.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 0시를 기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시하는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보졸레 누보.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산 포도주보다 지명도가 낮았지만 보졸레 누보는 이런 독특한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포도주 전문가 기욤 케르고를레가 “인간이 3주 안에 만들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포도주”라고 했던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동부 보졸레 지방에서 수확한 햇포도로 담근 포도주로 1년에 단 한 번밖에 맛볼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은다.

    보통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지만, 보졸레 누보의 경우는 예외다. 보졸레 누보는 발효하지 않은 ‘덜 된’ 포도주로 가볍고 신선한 맛이 특징이며 과일향이 풍부하다. 일반 레드와인보다 엷게 착색돼 핑크색을 머금은 옅은 자주색을 띠며, 외관도 일반 포도주와 달라 기품과 전통을 강조하는 대신 화려한 라벨과 더불어 상큼한 인상을 준다.

    “1년 만에 온 보졸레 누보… 바로 이 맛이야”
    가격도 다른 와인보다 저렴한 편. 올해의 경우 750ml 한 병에 1만6000∼2만9000원 선. 95년부터 우리나라에 본격 수입되기 시작한 보졸레 누보는 99년 10만병, 2000년 16만병이었으나 올해는 24만병으로 껑충 뛰었다. 프랑스대사관 상무관실의 한관규씨는 “현지에선 그해의 포도 수확을 축하하며 나눠 마시는 저렴한 와인이지만 항공운송료나 세금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다른 술보다 아직도 비싼 편이다. 전체 주류 소비량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0.5%에 지나지 않지만, 보졸레 누보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값싼 포도로 만든 와인을 빨리 팔기 위해 보졸레 누보라는 행사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11월 중순의 이런 행사는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음식평론가 고형욱씨의 말처럼 “보졸레 누보를 마시는 건 하나의 즐거운 이벤트요 축제”인 것이다.

    와인동호회 회원들에게도 11월은 그 어느 때보다 들뜨고 모임이 많은 달이다. 와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한다는 마니아들 중에는 보졸레 누보를 진정한 와인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마시지 않고 넘어가는 법은 없다. 노블리안닷컴(www.noblian.com)의 와인동호회 ‘비나모르’의 회원들도 17일 보졸레 누보 시음을 위한 별도의 모임을 가졌다.

    “보졸레 누보 네 가지와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누보까지 스물한 가지의 술을 맛보는 자리였습니다. 햇포도주라 무게는 없지만 싱그러운 첫 잔의 느낌이 역시 좋더군요.”

    운영자 우서환씨는 동호회 회원 70여명이 와인에 관해서라면 모두들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와인 한 병이 750ml라 회원 수를 75명으로 제한했어요. 10명이 신청하면 2명쯤 통과될까. 가입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거든요. 20대 대학생에서 50대 회사 중역까지 다양하지만 와인이라는 공통언어가 있어 한식구 같아요.”

    “1년 만에 온 보졸레 누보… 바로 이 맛이야”
    반면 회원 수 900명을 자랑하는 와인동호회도 있다. 프리챌의 ‘와인 앤 조이’(WINE N JOY)는 수많은 와인동호회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활발한 온라인 활동으로 정평이 나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직장인이 가장 많아요. 한 달에 두 번 와인잔이 서브되는 레스토랑에서 정기모임을 하는데,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문화생활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거든요. 뮤지컬, 영화 등의 소모임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동호회의 시삽 송지선씨(32)는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다른 술과 달리 공부가 필요하고, 함께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호회를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와인 메이트(wine mate)가 생긴 게 무엇보다 좋아요. 고급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땐 8명이 한 병을 사서 나눠 마시는데 정말 즐거워요. 와인은 결코 과소비나 호사가의 취미가 아니에요. 문화의 술이고, 대화의 술이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