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0

2001.11.22

‘블레어 말발’ 중동국가엔 안 먹히네

반테러리즘 연대 위한 5개국 순방 헛고생만 … ‘北아일랜드 해법’으론 이슬람 설득 한계

  • < 정재영/ 런던 통신원 > Jeonghwa.Lee@tesco.net

    입력2004-11-23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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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어 말발’ 중동국가엔 안 먹히네
    매주 수요일 오후, 웨스트민스터라고 불리는 영국 하원의사당에서는 ‘프라임 미니스터 퀘스천 타임’이 열린다. 굳이 번역하자면 ‘총리에게 묻는다’라고 할까.

    11월7일 수요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출석했다. 그는 이 시간이 끝나는 대로 워싱턴으로 날아가 중동 5개국(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순방 결과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브리핑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는 11월5일 저녁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을 초청, 만찬을 함께 하면서 중동 순방을 브리핑한 바 있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반테러리즘 국제연대를 호소하기 위한 그의 중동 순방은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한 영국 언론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는 아무것도 건진 것 없이 맨손으로 돌아왔다. 다른 신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그릇된 시점에 그릇된 장소에서 그릇된 인물을 만나고 왔을 뿐이었다.

    ‘블레어 말발’ 중동국가엔 안 먹히네
    이날 웨스트민스터에서 블레어는 한 의원으로부터 전날 북아일랜드 의회 재신임 투표를 둘러싼 한바탕 소동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사건 자체는 간단하지만,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데이비드 트림블의 북아일랜드 수석장관직 재신임에 얽힌 3막극이다. 우선 데이비드 트림블을 소개해 보자.

    트림블은 북아일랜드 최대정당 얼스터연합당(Ulster Unionist Party·UUP) 당수다. 또 북아일랜드 자치의회 초대 수석장관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보다 2년 앞서 1998년 존 흄 사회민주노동당(Social Democratic and Labour Party·SDLP) 당수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98년 4월10일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을 이끈 주역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1막은 지난 7월 북아일랜드공화군(IRA)의 무기폐기 약속 위반을 비난하면서 트림블 스스로 초대 아일랜드 의회 수석장관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수석장관직 사임은 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체제의 위기를 의미한다. 가장 당황한 것은 구교파도 신교파도 아닌 영국정부였다. 영국정부는 트림블의 사임 이후 북아일랜드 의회 기능을 6주간씩 연속적으로 정지시키는 편법으로 트림블의 수석장관직 복귀를 기다렸다.

    2막. 지난 10월 말 IRA는 무기폐기를 재천명했다. 미국의 9·11 테러사태 이후 그동안 IRA 활동을 재정적·심정적으로 지원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반테러리즘 영향으로 분석되지만, 트림블의 입장에서 보면 사임 이유가 없어진 셈이었다. 당연히 트림블은 북아일랜드 수석장관직 재취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11월2일의 재취임 신임투표에서 그는 신임을 얻는 데 실패했다. 자신이 당수로 있는 UUP 소속 의원 2명이 뜻밖에도 그에게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3막. 트림블이 연합파 내부 반란으로 신임을 얻지 못하자, 영국정부는 예정에 없던 제2차 신임투표를 밀어붙였다. 11월6일 2차 신임투표에서 트림블은 토니 블레어의 적극적인 중도파 설득 공작에 힘입어 북아일랜드 수석장관직에 복귀했다.

    왜 영국 노동당 정부는 트림블을 북아일랜드 수석장관직에 복귀시키기 위해 그토록 노심초사했는가. 그것은 이날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한 블레어의 답변으로 요약된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며, 그것은 중동평화 협정에도 귀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사실 블레어의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위한 국제연대 구상은 바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방정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블레어가 전대미문의 9·11 테러사태 초기 우왕좌왕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비해 반테러리즘의 국제연대라는 카드를 기민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북아일랜드를 요리해 본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은 사실 3명의 민간인 공동의장 주재로 2국가(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와 북아일랜드 7지역 정당 사이의 다자간 협상의 산물이다. 북아일랜드 협정의 골자를 대략 요약하면, 북아일랜드를 영국정부의 보호 아래 두되, 주민 투표로 구성된 북아일랜드 자치의회가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그 자치정부가 영국의 입법 행정권을 인수한다는 것이다. 자치정부론은 이후 블레어의 단골메뉴가 된다.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아라파트 의장을 런던으로 초청했을 때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아라파트를 찾아갔을 때도 블레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론을 다시 빼들었다.

    그러나 자치정부론은 UN이 지난 47년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권고한 정책이었다. 이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서도 재차 확인된 원칙이다. 문제는 자치정부의 길로 간다는 원론이 아니라 어떻게 산적한 과제를 뚫고 그 길로 가느냐 하는 각론이다.

    북아일랜드 해법은 기본적으로 권력분점제도를 통한 갈등세력의 제도편입이라는 해결방식이다. 말하자면 테러리즘이 발호할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함으로써 과격 테러리스트 조직을 고사하는 방안이다.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최근 미국과 적대관계인 이란과 리비아, 두 이슬람 국가와 최근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블레어가 과격파 팔레스타인 그룹 후원국으로 알려진 시리아를 방문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는 IRA의 정치적 날개에 해당하는 신페인당을 북아일랜드 협정에 끌어들이고, 북아일랜드 비합법 준군사조직 지도자들을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비공식 연쇄 접촉한 것을 연상시킨다.

    야심만만한 토니 블레어에게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총리’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칭찬이 아니었다. 유럽의 중간 크기 나라의 총리가 대영제국시절 글래드스턴 총리나 팔머스턴 총리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묻어 있었다. 역할 축소를 조심스럽게 주문하던 여론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이 장기화되고, 아프간 민간인의 인명 피해가 늘자, 영국 총리가 미국의 특명전권대사냐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지금 테러리즘과 전쟁하고 있지 이슬람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다.” 블레어가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는 말이다. 문제는 그의 역할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블레어는 한편으로 반테러리즘 국제연대를 위한 의장 역할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조지 미첼 전 미국 상원의원이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의장 역할을 했듯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블레어는 스스로를 악에 대항하는 선의 세력을 대표하는 군사지도자 역할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전자에서 블레어의 선의가 읽힌다면, 후자에서는 블레어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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