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7

2001.11.01

‘삼청각’ 권력자 요정에서 시민 마당으로 …

서울시 전통문화공간으로 새 단장 … 공연·문화 체험장 10월29일부터 손님맞이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1-16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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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청각’ 권력자 요정에서 시민 마당으로 …
    한때 보통 사람은 감히 얼씬할 생각도 못했던 삼청각(三淸閣)의 대문이 활짝 열린다. 대원각, 선운각과 함께 ‘밀실정치’ ‘요정정치’의 무대로만 기억되던 삼청각이 지난 10월29일 전통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 10월29일~11월11일까지 14일 동안 삼청각에서는 일화당과 야외전통놀이마당의 개관 축제공연을 보고 전통차 한잔 마시며 북악산 자락을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일부 권력자들의 음풍농월 장소였던 이곳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한번쯤 찾아가 신선 놀음을 해볼 만도 하다.

    서울 성북구 성북2동에 자리잡은 삼청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남북조절위원회 대표단의 만찬이 베풀어진 장소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청와대 옆 삼청공원을 오른쪽으로 내려다보며 북악산을 오르면 삼청터널을 지나 100m도 못 가서 왼편으로 삼청각의 팻말이 보인다.

    삼청각은 그동안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부침을 겪었고 한때 고급빌라 건설이 추진돼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지난해 서울시가 이곳을 인수, 전통문화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보존이 확정되었다. 5개월여의 리모델링 작업 끝에 개관을 앞둔 삼청각을 찾았다.

    ‘삼청각’ 권력자 요정에서 시민 마당으로 …
    한창 단풍이 들어가는 북악산을 배경삼아 지상2층, 지하2층으로 넉넉하게 자리잡은 일화당(하나가 되는 집)과 담 혹은 나무 뒤에 숨어 언뜻 그 자태가 드러나지 않는 부속 건물 유하정(그윽한 노을이 깃드는 정자), 취한당(비췻빛의 서늘한 정자), 동백헌(동녘에 밝은 집), 천추당(영원한 깊은 가을의 정자),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는 청천당(봄의 물소리가 들리는 정자)이 보인다. 서울 중심지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이처럼 고즈넉한 장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뿐이다.

    72년 신선이 놀던 1만3400㎡의 땅에 본관(일화당)과 별관 4개 동으로 이루어진 삼청각이 세워지면서 소문도 많았다. 건물 소유주는 민간인이지만 실제 토지매입과 설계를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주도했다는 것과, 남북회담 대표자 만찬을 위해 단 3개월 만에 급조했다는 내용 등이다.



    삼청각의 최초 설계자인 정재원씨(68·현재 라이온건축 대표)는 “이미 72년 2월 기초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해 4월 설계에 들어갔다. 6월에는 부속건물 공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정씨 말대로라면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 훨씬 전부터 이 연회장의 건축을 준비해 왔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도보나 자전거로 통행할 수 없고, 주정차가 금지될 정도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는 이 지역에서 밤낮없이 공사를 하려면 중앙정보부의 지원은 필수였다. “공사기간이 너무 짧아 하청업체 어느 한 곳이라도 지연되면 큰일이었다. 그때마다 직접 중정이 나서서 이들을 독려했다. 야간작업도 강행했는데 통행금지 때는 그쪽에서 내준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정씨는 당시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측도 삼청각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 자그마한 결함이라도 발견되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고 고위 관리자가 자주 현장에 들렀다고 한다. 이렇게 지어진 삼청각 본관 일화당은 기단은 궁전 양식, 건물은 민가 양식, 담과 대문은 고궁 양식을 택해 우람하면서도 고전적인 자태를 잃지 않는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 후 삼청각은 20여 년간 정·재계 인사들의 은밀한 사교장소로 사랑받았고 외국 바이어가 오면 그들을 모시는 장소로 널리 이용되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심심치 않게 각 정당과 전경련 모임 등 굵직한 행사를 치렀으나 일본 관광객 상대의 기생파티로 위상이 급격히 추락해 결국 93년 매각되고 말았다. 94년 ‘예향’이라는 이름의 전통혼례식장 겸 음식점으로 바뀌어 옛 명성을 회복하려 했으나 역시 경영난으로 건설회사에 팔려 고급빌라 건설이 추진되었다.

    서울시는 삼청각의 보존을 결정한 후 이름을 놓고 잠시 고심했다. 일각에서 고급요정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화예술계 인사들 대부분이 원래 ‘삼청’(三淸)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입을 모았다. 삼청은 원래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집을 의미하는 태청(太淸)·옥청(玉淸)·상청(上淸)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한다. 주공연장이 될 대연회장 일화당(一堂)도 “풍류로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니 돌이켜보면 남북 대표들의 만찬장 장소로 이만한 이름도 없었다.

    ‘삼청각’ 권력자 요정에서 시민 마당으로 …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삼청각은 세종문화회관이 운영을 맡았다. 김승업 삼청각 운영부장은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극장처럼 한국의 전통극을 상시 상연하는 레퍼토리 시어터 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본관인 일화당은 수납식 객석을 꾸며 일반 무대형태인 프로세니엄, 마당놀이 형식의 아레나, 패션쇼 무대인 개방형, 연회장 등 필요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청천당과 천추당은 주로 외국인 관광객 혹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위해 다례, 규방공예, 도자기 공예 등을 배우는 한국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꾸며지고 삼청각 북서쪽 나무숲에 가려진 팔각정 모양의 유하정에서는 민요, 가야금, 대금 등 전통 소리강좌가 열린다. 41평 규모의 취한당과 42평의 동백헌은 전통 온돌식 방과 툇마루, 뒤뜰 등 전통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전통 객관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부대시설로 프라자호텔측이 직영하는 한식당(아사달)과 전통찻집(청다원)이 일화당 1층에 자리잡았다. 특히 청다원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일품이다. 우선 조선 태조 4년에 축조했다는 18km 길이의 서울성곽이 삼청각 터를 크게 감싸고 돌고 거기에 수령 100년이 넘는 적송 350그루가 버티고 있다.

    삼청각 보존을 주장해 온 건축가 김영섭씨는 이곳이 서울 ‘북촌 문화벨트’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삼청각 맞은편은 와룡공원과 서울성곽을 지나 계동·가회동 등 한옥마을, 팔판동·소격동의 화랑가, 인사동까지 이어진다. 또 성북동의 만해 한용운 생가인 심우장과 성낙원, 이재준가 등 서울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건물들을 이어주는 고리 구실도 한다.

    서울프라자호텔, 교보문고, 경복궁에서 삼청각까지 오르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주차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승용차는 세종로와 프라자호텔 주차장에 두고(4시간까지 1000원)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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