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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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찾아주오” 눈물의 지구촌

유엔 추산 4만6천 건 ‘애타는 가족’… 대부분 피살되어 어딘가에 묻혀 있을 듯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2-21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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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자 찾아주오” 눈물의 지구촌
    지구촌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과 사건·사고들로 편할 날이 없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희생자를 낳는다. 실종자도 희생자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란-이라크전,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은 많은 실종자를 낳았다. 그뿐 아니다. 많은 독재국가들도 비판세력들을 ‘처리’하고는 ‘실종되었다’고 발표해 왔다. 범죄행위를 은폐하려고 발뺌하는 수단이 실종 처리일 뿐이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겪은 아르헨티나나 칠레가 대표적인 보기다.

    지난 8월30일은 국제 인권기관들이 정한 ‘국제실종자의 날’이다. 남미의 실종자 가족 연대기구인 ‘남미 실종자 가족연맹’(FEDEFAM)을 비롯해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개한 실종자 찾기운동이 실종자의 날을 정한 배경이다. 그날을 맞아 세계적 인권감시기구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모든 관련 국가들은 국제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실종사건들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연합(UN)의 추산으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만6000건의 실종사건이 접수되어 있다. 실종사건의 특성상 실종자들은 말이 없다. 가해자들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하며 기다리는 가족만 눈물을 흘릴 뿐이다.

    반인류 ‘더러운 전쟁’ 피해자들

    1970~80년대 군사독재의 검거선풍이 몰아친 남미의 경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실종된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 지난 3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25년 전(1976년)의 군부 쿠데타와 그 후 일어난 실종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아르헨티나에서는 7년 동안의 군부독재(76~83년) 치하에서 3만 명이 체포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반인류적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하여 ‘더러운 전쟁’이라 일컫는다. 특히 군부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어린 아기들을 아이 없는 군인·경찰 가족에게 입양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렇게 입양된 아기는 모두 200∼400명 정도로 알려졌는데 인권기관들의 끈질긴 추적 끝에 현재 이름이 드러난 입양아만도 70명쯤이다. 군사평의회를 이끌던 군부 지도자들은 사면법에 따라 사법처리를 피해 왔다. 그러나 칠레의 피노체트와 마찬가지로 사면권을 박탈당하고 법정에 설 가능성이 크다.

    17년 동안(1973~90년) 피노체트 군부독재를 경험한 칠레도 그가 드리운 음습한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73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배후 지원에 힘입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칠레에서는 모두 3000명이 실종된 상태다. 현재 85세의 피노체트는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나이로 보아 실형을 선고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분쟁지역에서의 실종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처럼 되었다. 콜롬비아는 현재‘남미의 실종센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납치·실종이 흔한 곳이다. 몸값을 노린 납치범들이 득실대는 콜롬비아다.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난 납치사건은 3706건으로 하루 평균 10명이 납치되었다. 돈을 노린 납치범에게 납치되었다면 언젠가는 풀려날 확률이라도 있지만, 좌익이든 우익이든 가릴 것 없이 내부 협력자 또는 동조자로 상대방에게 낙인찍혀 잡혀갈 경우, 영구실종이 되기 십상이다. 특히 콜롬비아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정부가 반군 콜롬비아혁명군(FARC)과의 평화협정을 꾀하기 위해 1998년 스위스 크기만한 지역을 완충지대로 설정한 뒤 그곳에서 납치와 실종사건이 빈번히 벌어진다. 90년대를 전쟁으로 지샌 발칸반도에도 실종자 문제가 심각하다. 보스니아의 경우 95년 말로 내전이 끝난 지 6년이 지났지만 국제적십자사에 실종자로 신고된 2만 명 가운데 4000명만을, 그것도 대부분 시신으로 발굴했을 뿐이다. 보스니아 내전 막바지인 95년 7월 세르비아 세력은 회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 스레브레니차 마을을 점령해 8000명에 가까운 사람을 처형했다. 실종 신고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200만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이 밀로셰비치의 강권통치로부터 독립을 외치던 코소보 전쟁도 많은 실종자를 만들어 냈다. 현재 3000명이 실종상태다. 99년 봄 세르비아 보안군과 민병대들은 이른바 ‘인종청소’를 저지를 때, 많은 알바니아계가 죽임을 당했다. 99년 6월 세르비아 세력이 코소보에서 물러날 때 전쟁범죄를 감추려고 집단무덤에 묻힌 사람의 시신을 다시 파내 냉동차로 세르비아로 실어 날라 비밀리에 파묻기도 했다. 이즈음 세르비아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집단무덤은 바로 그 무렵 만든 것이다. 필자가 99년 6월 나토(NATO)군을 따라 코소보에 들어갔을 때 주요 도시에 마련된 실종자 신고센터 앞에는 날마다 긴 줄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뒤 코소보로 다시 돌아온 알바니아계 일부 과격파들은 세르비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로 보복에 나섰다. 세르비아 쪽 주장으론 1500명이 현재 실종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납치·실종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종자 찾아주오” 눈물의 지구촌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체첸 전쟁에서는 1200명이 넘는 실종자들이 생겼다. 대부분이 반군 동조자 혐의로 러시아군에 붙잡힌 체첸 시민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가족이 러시아군에게 뇌물을 써서 빼냈지만, 일부는 나중에 집단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국제적 비난을 의식해 실종자 문제를 조사하는 특별기구를 두고 이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중이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인 캐시미르에서도 지난 11년 동안 1100명이 납치되어 어디론지 사라졌다. 인도 정부군에 맞선 파키스탄 게릴라들이 저지른 납치도 있지만, 대부분은 회교반군 동조자란 혐의로 인도 경찰과 민병대원들이 저지른 범행이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도 숱한 실종사건에 대해 언젠가는 답변해야 할 처지다. 1980~88년에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 일어난 실종사건들과 관련해서다. 1983년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에 살던 쿠르드족 8000명의 남자(8~70세)들이 이라크군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간 뒤 지금껏 소식이 없다. 10만 명에 이르는 쿠르드족도 1988년 안팔 작전(Anfal Operation)으로 알려진 이라크군의 쿠르드족 인종청소 당시 트럭에 실려간 뒤 생사를 모른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면서 이라크로 납치된 600명의 쿠웨이트인도 지금껏 실종상태다. 이들의 생사 확인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에도 이라크는 침묵한다.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도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실종자를 양산했다. 북부 지역의 타밀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29년 동안 6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내며 지루한 소모전을 이어가는 스리랑카의 실종자는 1만2000명에 이른다. 80년대 후반 스리랑카 남부지역에서 마르크스주의 무장조직 JPV가 무장봉기를 일으켰을 때 많은 실종자가 생겼다. 1996년 타밀 북부 거점도시 자프나가 정부군에 점령당했을 때도 수백 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실종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따라서 실종은 남은 가족에겐 곧 생계 위협으로 다가서게 마련이다. 가장의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지내는 가족이 느끼는 아픔과 분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사람이 누군가에게 붙잡혀 사라진다. 인권단체들은 유엔인권위에 강제실종과 관련한 헌장(Convention on Enforced Disappearance) 초안을 제시하면서 국제사회가 이에 관심을 기울이길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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