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2

2001.09.20

70여 년 갈고 닦은 ‘佛 다쏘항공의 경쟁력’

73개국에 군용·민항기 7천여 대 수출 … 팔콘·미라주 이어 ‘라팔’로 세계 하늘 장악 꿈

  • < 김 당 기자 / 파리 > dangk@donga.com

    입력2004-12-21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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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여 년 갈고 닦은 ‘佛 다쏘항공의 경쟁력’
    최근 ‘주간동아’는 프랑스 우주항공협회(GIFAS) 초청으로 1주일 동안 프랑스 우주항공산업의 발전상을 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프랑스는 서방세계에서 미국과 더불어 우주항공산업의 양대 산맥을 구축할 만큼 우주항공 분야의 강국이다.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초청은 우주항공협회 명의로 이뤄졌지만 실제로는 협회 회원사들이자 프랑스 항공산업의 자존심인 라팔(Rafale) 전투기를 매개로 한 컨소시엄인 ‘라팔 인터내셔널’을 구성하는 다쏘항공(Dassault)과 스네크마(Snecma) 그리고 탈레스(Thales)사 연구소와 공장들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스네크마는 프랑스 국영 항공엔진 제작사로 보잉 777, 에어버스를 비롯한 아리안 5호, 라팔 전투기 엔진과 같은 민간군용 엔진을 제작하는 부동의 엔진 전문 제작사로 그룹 내 8개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스네크마는 최신 버전인 M-88 엔진을 라팔에 공급한다. 한편 탈레스사는 2000년 12월 톰슨-CSF에서 탈레스로 회사명을 바꾼 레이더, 유도미사일, 자동항법장치 등 항공 전자시스템 분야의 수출 의존도 세계 1위로 전 세계 28개국에 생산 기반을 두고 42개국에 판매망을 구축한 세계적인 기업. 지형 인식과 공대공 탐색작업을 수행하는 라팔만의 고유한 RBE-2 레이더를 비롯한 첨단 전자전 무기체계를 공급한다.

    다쏘항공과 스네크마 그리고 탈레스 3사는 이처럼 각각 라팔 전투기의 몸체와 엔진 그리고 전자전 장비를 생산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우주항공 산업체들이다. 라팔을 인체에 비유하자면 3사는 각각 몸통과 심장 그리고 두뇌 딸린 팔다리를 만드는 회사인 셈이다. 여기서 그냥 팔다리가 아닌 ‘두뇌 딸린 팔다리’라고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갈수록 전자전 비중이 커짐에 따라 전자전 무기는 단순한 완력을 행사하는 팔다리가 아니라 두뇌를 쓰는 팔다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70여 년 갈고 닦은 ‘佛 다쏘항공의 경쟁력’
    고(故) 마르셀 다쏘(본명은 마르셀 블로크) 회장이 1930년에 창립한 다쏘항공은 지난 55년 간 전 세계 73개국에 약 7000대가 넘는 군용기 및 민항기를 제작 공급한 세계 굴지의 항공기 제작사다. 프랑스에는 두 개의 고정익 항공기 제작사가 있다. 다쏘항공은 주로 군용기를 제작하고, 다른 하나인‘아에로스파시알’은 에어버스를 비롯한 민항기를 주로 제작한다. 다쏘항공은 현재 세계 수출 1위의 ‘베스트셀러’인 민간 비즈니스 제트기 팔콘과 군용기인 미라주(Miraje)에 이어 다목적 전투기 라팔을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어로 ‘돌풍’을 뜻하는 라팔은 지난 86년부터 21세기 생산 배치를 목표로 개발을 시작한 차세대 다목적 쌍발전투기. 라팔은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40억 달러 규모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4개 후보기종 중 하나. 다른 후보기종인 미국 보잉사의 F-15, 러시아의 수호이(Su) 35,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4개국이 공동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과 함께 이른바 4세대 전투기에 속한다. 4세대 전투기 중 가장 오래된 기종은 72년에 생산한 F-15, 다음이 86년에 생산한 수호이 35, 그리고 최신 기종이 98년에 나온 라팔과 유러파이터 타이푼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라팔을 구입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일까. 이브 로빈스 국제협력 담당 부사장과 장 루이 몽텔 시험비행센터 부사장 등 다쏘항공 관계자들은 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는 현재 FX사업에 제안된 4개 기종 중 유일하게 21세기에 운용하기 위해 설계 제작한 최신 기종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팔은 공대공 전용기로 개발했다가 공대지 기능을 추가한 다른 기종과는 처음부터 다른 기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모든 종류의 최신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BVR(Beyond Visual Range) 성능의 공대공 요격미사일에서부터 스탠드오프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이르기까지 첨단 미사일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체와 함께 한국에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공군은 무제한의 기술이전을 허용하는 라팔을 운용함으로써 어떤 위협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무기체계 운용시스템을 자동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라팔을 구입함으로써 한국 공군은 한반도 주변에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로빈스 부사장은 한국군과 정치권에 대한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F-15를 겨냥해 “라팔은 냉전시대 부산물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햇볕정책에 딱 맞는 전투기”임을 강조했다. 라팔은 현존하는 북한군을 상대할 ‘낡은 기종’이 아니라 통일 이후 주변국을 상대할 ‘차세대 기종’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이점은 라팔의 유지운영비가 4개 기종 가운데 가장 저렴하다는 점이다. 제라르 마리아 메리냑 공장 부공장장은 “20대로 이뤄진 일개 비행대를 운용하는 데 소요되는 정비인력이 60명에 지나지 않는 전투기는 오직 라팔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인원으로 항상 출격대기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경제적인 기종이라는 것. 실제로 비행기의 경우 대당 가격보다 비행기 운영에 드는 수명주기비용(Life Cycle Cost)이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통상 30년 간 비행기를 운영하면 운용비용은 대당 구매가의 3배 가량이 소요된다. 정비·부품조달·연료·교육에 소요되는‘배꼽’(부대비용)이‘배’보다 훨씬 더 비싸게 먹힌다는 얘기다.

    70여 년 갈고 닦은 ‘佛 다쏘항공의 경쟁력’
    FX사업에서 라팔의 유력한 경쟁 기종측에서 주장하는 라팔의 최대 ‘약점’은 미군 무기체계와의 상호운용성(호환성)과 실전경험이 없다는 것. 그러나 미국이 다른 나라 무기를 구입하려는 한국 정부에 대해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러 온 상호운용성은 실제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모듈식 표준 설계프로그램에 의해 제작한 라팔은 나토(NATO) 표준을 충족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군기들과 100% 호환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 물론 이 같은 상호운용성은 유러파이터 타이푼도 마찬가지다.

    이스트르 시험비행장에서 만난 자베테씨(55)는 한 달 전 전투기 시험비행 조종사에서 은퇴(전투기 조종사는 55세가 정년)하고, 지금은 팔콘으로 ‘애마’를 갈아 탄 시험비행 조종사. 그는 라팔이 가장 최근에 배치한 차세대 전투기기 때문에 실전경험이 없다는 약점에 대해 “라팔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미라주(현재의 프랑스 주력 전투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반박했다. 라팔에 사용한 장비는 이미 기존의 전투기 3000여 대에서 사용한 장비들이고, 미라주는 코소보 전쟁에서 미군 전투기보다 뛰어난 전과를 올린 만큼 라팔의 실전경험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 에어쇼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자베테씨는 “서울 에어쇼에서 직접 라팔을 몰고 고도 100m까지 저공비행을 했다”며 라팔이 F-15보다 생존성이 더 뛰어난 전투기임을 주장했다(통상 전투기는 저고도 침투비행 능력을 가질수록 지대공 공격으로부터 생존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한다).

    전투기 도입·생산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가격, 성능, 기술이전 그리고 정치 변수라는 네 가지 요소. 이 가운데 다쏘항공측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치적 변수다. 국방 담당 기자 출신의 노련한 로빈스 부사장은 부시 대통령이 F-15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오는 10월 서울 방문길에 서울에서 열리는 에어쇼를 참관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거론하며 “우리도 부시가 에어쇼에서 라팔의 뛰어난 비행 성능을 눈으로 확인하길 바란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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