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1

2001.09.13

한국축구, 유럽엔 왜 안 될까

  • < 고진현/ 스포츠서울 축구팀 기자 > jhkoh@sportsseoul.com

    입력2004-12-20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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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축구, 유럽엔 왜 안 될까
    한국축구가 유럽축구에 약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히딩크로도 안 되는’ 우리 축구의 한계는 지난달 15일(한국시간) 대표팀이 체코와의 친선경기에서 5 대 0으로 맥없이 주저앉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된 바 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 실시한 유럽 전지훈련마저 무위로 돌아간 후 좌절을 넘어 아예 기대를 접은 팬들도 있을 것이다.

    유럽축구는 한국이 깨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일까. 도대체 왜 안 되는 것일까. 이제는 우리 축구가 유럽보다 모자란 부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여다볼 시간이다.

    유럽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응축된 문화의 표현이다. 유럽 프로축구리그를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온 사람 중 열에 아홉은 “가슴이 쿵쿵 뛴다”고 말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가장 다이내믹하게 자극하는 스포츠인 축구는 유럽인에겐 생활 자체이며 문화다. 승패를 떠나 축구를 매개로 사회가 움직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게 바로 유럽축구가 지닌 보이지 않는 힘이다.

    유럽의 축구팬들은 남녀노소가 없다. 경기가 있는 날 축구장에 가보면 지팡이를 쥔 노인에서부터 갓 걸음마를 뗀 꼬마까지 3대가 함께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경기가 끝나면 관중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경우가 없다. 클럽하우스에서 한데 어울려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한 정담에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꽃을 피운다. 유럽축구가 강할 수 있는 뒷배경에는 응축한 축구문화에 객체가 아닌 주체로 참여하는 든든한 팬들이 있다.

    기술적 부분을 살펴보자. 한국이 유럽에 밀리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첫번째는 패싱력이다. 유럽축구는 드리블이 거의 없다. 상대 골문을 압박해 갈 때 대부분이 자로 잰 듯한 패스를 한다. 패스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고 빠르다. 드리블은 일 대 일 찬스에서나 시도할 뿐이다. 이러한 유럽축구의 특징이 바로 한국축구의 아킬레스건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공만 잡으면 지루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들에게 대처할 시간을 주는 한국축구로는 게임이 안 된다.



    또 하나의 약점은 트래핑이다. 볼을 자신의 행동반경 내에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트래핑이 선행되어야 한다. 움직이는 볼을 눈으로 따라잡아서는 늦다. 발과 가슴에 눈이 달린 듯 기계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트래핑 기술은 한 박자 빠른 슈팅과 드리블의 시작이다.

    사회적 여건을 바꾸는 일이 장기과제라면 기술 업그레이드는 시급한 단기 처방이다. 한국축구의 ‘유럽 징크스 탈출’의 열쇠는 두 과제를 얼마나 잘 병행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모래 위에 화려한 누각을 쌓으려 한 우리 축구대표팀이 곰곰이 되씹어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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