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1

2001.09.13

세금 깎아주고 욕먹는 것 아냐?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2-16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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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깎아주고 욕먹는 것 아냐?
    논란을 거듭한 5조 원 규모의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정부 여당이 올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기로 한 세제개편안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막상 이번 감세방안이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안 그래도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나라살림 형편에 세금까지 깎아주겠다고 나섰으면 ‘약발’이라도 제대로 먹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부가 내놓은 근로소득자 위주의 감세방안은 경기부양에 실효성도 없으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재정에 부담만 주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정부는 야당이 요구해 온 법인세율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1조9000억 원 규모의 감세안을 확정했다. 이 중 1조7490억 원이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의 세금 경감 몫이다.

    세금 깎아주고 욕먹는 것 아냐?
    정부 여당이 확정한 근로소득세 경감 방안은 내년부터 종합소득세율을 현행 10~40%에서 9~36%로 10% 인하하는 내용을 담았다. 연간 급여 4800만 원인 근로자에게 426만 원이던 근로소득세를, 375만 원으로 13.9% 깎아주는 것을 비롯해 소득수준별로 10.6%부터 33.3% 깎아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표’ 참조). 이번 감세방안 발표를 통해 정부는 봉급 생활자에게 소득세 1조1300억 원과 주민세 1130억 원 등 모두 1조2430억 원의 세금을 깎아주게 된다.

    서민 혜택 실종 … 불평등 심화 우려도

    그러나 정부 여당이 내세우는 대로 이번 감세방안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것에서부터 의문의 여지가 있다. 현재 근로소득자의 면세점은 4인 가족 기준 1317만 원. 면세점 이하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46%에 이르는 형편이다. 봉급 생활자를 약 1000만 명으로 보았을 때 그 중 460만 명은 각종 소득공제 등으로 인해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있는 것. 결국 세금을 내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 중 상위 54%에 해당하는 계층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상위 54%를 차지하는, 중산층 이상 근로소득자에게 세금을 큰 폭으로 깎아주면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을 어디까지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근로소득세율을 이렇게 낮춰주다 보면 부의 불평등이 오히려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조세 전문가들은 외국보다 높은 현행 근로소득세의 면세점을 낮추고 세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번 감세방안에 포함된 근로소득공제 확대 등으로 인해 근로소득자의 면세점은 1317만 원에서 1392만 원으로 오히려 올라가 버렸다.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는 말이다.



    서울시립대 임주영 교수(경제학)는 “근로소득세는 면세점을 낮춰 과세 인원을 넓혀줘야 하는데도 이번 세제개편안을 보면 ‘역(逆)의 형평성’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경부는 면세점이 높아졌는데도 근로자의 소득 증가로 인해 과세자 비율은 현행 54%에서 1%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근로소득세 면세점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세금 납부 여력이 없는 근로자에게 세금을 걷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정부가 감세방안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기 활성화에 미치는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한국조세연구원 박기백 박사(경제학)는 “재정 지출을 통한 방식은 총수요를 증대시키는 효과가 큰 반면 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매우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반짝경기를 부추기고 일자리도 늘리는 데는 추경이든 뭐든 당장 지출을 늘리는 것이 효과가 있으며 세율 인하를 경기 대응책이라 보아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세제개편안이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경제학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은 세금이 줄어든 만큼 그대로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오히려 저축을 늘렸으면 늘렸지 세금 감면이 그대로 소비 촉진을 통한 경기 부양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계속되는 저금리 기조로 인해 저축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차라리 쓰고 말자’는 식으로 소비를 늘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소비를 늘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세금 감면으로 인해 월급쟁이나 그 가족이 스스로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것을 깨닫고 이를 어떤 형태로 소비할 것인지 판단을 내려 실제로 시장에 풀어놓는 데까지는 여러 단계의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세금 깎아주고 욕먹는 것 아냐?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도 재정정책의 우선순위를 단기적인 경기대응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재정 건전성의 제고에 둔다. 단기적인 경기조절은 통화정책을 통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1980년대 초반부터 재정 건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물가불안을 해소했을 뿐 아니라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튼튼한 재정이 위기극복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박사는 “과거에 소득세 감소정책을 폈을 때도 경기 호전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했다”며 세율 감소가 고소득자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을 경고했다. 일례로 지난 98년 대표적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1% 인하했을 당시를 보더라도 99년과 2000년의 민간소비 증가율은 0.06%와 0.0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부가세 인하가 곧바로 물가 인하로 직결되는 감세 방안임을 감안한다면 소득세와 같은 직접세 인하 효과는 간접세보다 훨씬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경제학) 역시 “세금을 조금 깎아준다고 해서 투자와 소비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나교수는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지 않는 한 추경편성 등의 지출 증대 방안이든 세율을 낮추는 방식의 경기 진작 방안이든 간에 일회성 앰퓰 주사에 그칠 것이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16대 총선을 앞둔 지난 99년에도 1조5000억 원 규모의 근로소득세 감면조치가 있었다. 1조9000억 원 규모의 감세방안을 발표한 올해 역시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선거 민심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조세법정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세금 체계야말로 큰 줄기를 유지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만 수술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정부는 해마다 세제개편안을 내놓는 형편이다. 당연히 세금 관련 법률은 누더기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세제개편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나는 감세 논란이 그러잖아도 취약한 나라살림을 또 한번 갉아먹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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