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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새로운 문화코드 뮤직비디오

‘뮤비’가 떠야 음반도 뜬다

홍보·판매에 절대적 영향, 올해만 700편 예상… 가수마다 수억 원씩 쏟아붓기

‘뮤비’가 떠야 음반도 뜬다

‘뮤비’가 떠야 음반도 뜬다
단번에 뜨고 싶은 가수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유명 작곡가·작사가를 찾아 곡을 만들고 공들여 녹음하고 그 음반을 들고 방송국으로 가서 PD들에게 일일이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하고 다닌다? 오, 노! 이건 정말 구시대적 방법이다. 이젠 음반 전에 뮤직비디오를 고민해야 한다. 일단 가장 잘 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을 섭외하고 ‘땡빚’을 내서라도 장동건, 송혜교 같은 톱스타를 출연시켜야 한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 가수는 절대 얼굴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는 각종 TV연예정보 프로그램 담당자를 불러모아 제작과정을 이슈화한다. 물론 이 자리에도 가수는 없다. 이렇게 만든 비디오 클립을 갖고 케이블방송국으로 달려간다. 뮤직비디오가 ‘뜰’ 때까지 꼼짝 않고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못 이기는 척’ 방송에 나가 비로소 얼굴을 보여준다.

이건 조성모 이후 공식화한 가수들의 성공 전략이다. 우리 나라 음악시장은 이제 뮤직비디오만 가지고도 음반을 100만 장 이상 팔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조성모, 포지션, 김범수, 브라운 아이즈에 이르는 가수들의 성공은 뮤직비디오만으로도 충분히 음반 홍보가 가능하고, 뮤직비디오가 음반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음을 증명했다.

케이블 음악 채널서 24시간 방영 ‘광고효과 탁월’

‘뮤비’가 떠야 음반도 뜬다
뮤직비디오의 경제적 효율성을 한번 따져보자. 가수의 음반은 초반 홍보가 음반 판매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이런 상황에서 뮤직비디오 하나가 수백 번 방송을 탄다면 그 효과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m.net, KMTV, M-TV, 채널V 등 케이블 음악채널에선 하루 24시간 뮤직비디오를 틀어대고 있고, 이것도 성에 안 차면 케이블 채널의 광고시간을 돈 주고 사서 날마다 원하는 시간에 내보낼 수도 있다. 공중파 방송의 거의 모든 오락프로그램에도 끝자락에는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쯤 결코 아깝지 않은 것이다.



한 음반제작자는 “사실 노래야 웬만하면 된다. 뮤직비디오의 완성도가 어쩌면 더 중요하다. 열심히 음반을 만들어도 뮤직비디오가 시원찮으면 음악마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 수천만 원짜리 찍어 음반을 10만 장 파느니 5억, 10억 투자해 100만 장 이상 팔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요즘엔 1억5000만 원 정도는 들여야 제대로 된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만 너도나도 다 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이제 뮤직비디오는 음악의 홍보 수단이 아닌 핵심으로 떠올랐다. 지난 99년 1억 원을 들여 뮤직비디오 ‘투 헤븐’을 만든 조성모의 경우, 작년 ‘아시나요’ 때는 7억 원을 투입했고, 올 가을 선보이는 새 음반에는 1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책정해 두었다는 소문이다. 포지션, 스카이, 브라운 아이즈도 뮤직비디오 한 편에 3억 원의 돈을 쏟아부었고, 이정현은 러시아와 이집트에서 ‘평화’와 ‘너’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8억 원을 썼다. 저예산으로 제작하는 인디밴드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외하면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평균 제작비는 1억5000만 원선으로 지난해보다 3배 정도 상승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제작 편수도 크게 늘었다. 96년 한 해 동안 200편 정도 제작된 국내 뮤직비디오는 99년 300편, 작년에는 500편, 올해는 700편 정도가 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뮤직비디오 제작을 거의 하지 않는 성인가요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수가 음반 제작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는 다는 얘기. 우리 나라에서도 뮤직비디오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며 독자적 산업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감안하면 참으로 놀랄 만한 발전이다. 국내 뮤직비디오 산업은 95년 음악 전문 케이블 TV의 탄생과 함께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70년대 TBC ‘가요산책’을 비롯해, 91년 SBS 개국과 함께 마련된 ‘가요데이트’ 등에서 야외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제작해 방영한 것이 국내 뮤직비디오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는 기술적인 면에서 노래방 영상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고궁이나 카페에서 가수 혼자 립싱크하며 온갖 표정연기를 하는 뮤직비디오를 계속 만들었는데, 90년대 초 서태지의 등장으로 국내의 뮤직비디오는 일정한 완결성을 갖춘 작품으로 거듭나났다.

뮤직비디오 홍수시대… 일주일에 10편 정도 쏟아져

‘뮤비’가 떠야 음반도 뜬다
케이블 음악채널의 개국은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다. 음악채널의 주시청자인 10, 20대 사이에서 케이블 TV는 공중파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소위 말하는 ‘영상세대’. 우리 나라의 케이블 TV 가입자는 270만∼280만 명으로 아직은 보급률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음반시장의 주소비층과 케이블 음악채널의 시청자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볼 사람은 다 본다’는 것이 방송국 관계자들의 말. 음악채널에서 방영하는 뮤직비디오가 음반 구매와 연결되는 ‘다이렉트 마케팅’ 구조를 이룬다는 뜻이다.

“3년 전 까지만 해도 돈 없는 기획자가 음반을 가져오면 우리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방송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95년 개국 초기에는 불과 50여 편의 뮤직비디오만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느라 곤란을 겪었지만, 이젠 일주일에 10개 정도의 새 뮤직비디오가 들어온다. 뮤직비디오 시장과 케이블 방송이 함께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m.net의 김종진 방송본부장).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음악채널 M-TV와 채널V가 차례로 개국해 기존의 토종 음악채널들과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채널의 프로그램에서도 전체 비중의 70% 이상이 가요로 편성되어 있다. 앞으로 뮤직비디오는 인터넷, 디지털 방송 등 각종 뉴미디어의 콘텐츠로 활용 범위가 더 넓어질 전망이다. 다채널시대를 맞아 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장밋빛으로 한껏 부풀어 오르는 상황에서 국내 뮤직비디오 산업에 대한 전망도 일단은 밝다.

동북아 한류 열풍에도 막강 영향력 과시

M-TV 코리아의 한순조 PD는 “이렇게 채널이 많아지다 보면 음악 제작사가 ‘갑’이 되고 방송사가 ‘을’의 위치에 설 수도 있다. 현재 동북아 시장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에도 뮤직비디오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연말부터 시작할 디지털 위성방송은 기존보다 더 많은 뮤직비디오를 소화해 낼 창구가 될 것이고, DVD가 기존의 VTR를 대체함으로 인해 또 다른 시장이 열릴 가능성도 크다”고 말한다.

고졸 출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지금껏 500편에 가까운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홍종호 감독은 “뮤직비디오는 부가가치가 높은 벤처상품이다”고 말한다. 3년 전 ‘홍픽처스’라는 뮤직비디오 전문 제작업체를 설립한 그는 여명 등 아시아 지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면서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뮤직비디오의 범람이 곧 우리 음악산업의 발전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음반기획사의 4분의 1이 문을 닫은 것은 가창 실력보다 외모와 현란한 뮤직비디오를 중요시한 ‘변칙 마케팅’의 결과기도 하다.

뮤직비디오가 분명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기는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다 보면 우리 음악시장은 제살깎기식의 폐허가 될 수 있다. 또한 몇몇 대형기획사에 의한 프로젝트 앨범만 난무하는 음악시장은 다양한 가수들에 의한 다양한 음악의 공급이 가로막혀 점점 더 척박해질 가능성도 높다. 갈수록 눈높이가 높아지는 음악팬들은 이제 규모가 아닌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싶어한다. 세련된 영상과 내실 있는 음악이 바람직한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우리의 뮤직비디오가 세계시장에서 부끄럽지 않은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1.09.06 300호 (p66~68)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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