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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허덕 세계경제 ‘달러의 딜레마’

부시 행정부 ‘强달러 정책’ 고수 … 경기 회복 불안감 시장에선 가치 하락

불황 허덕 세계경제 ‘달러의 딜레마’

불황 허덕 세계경제 ‘달러의 딜레마’
세계경제가 숨을 죽인 채 미국 달러 가치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달러 가치가 하루 사이에 1∼2%나 급락하는 등 국제외환시장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최근 달러 가치는 일본 엔화에 대해 119엔 초반에서 움직이며 올들어 강(强)달러 바람이 가장 거센 지난 4월 초의 126.75엔보다 약 5% 수직하락했다. 달러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최근 92센트대를 기록하며 불과 1개월 사이에 9% 이상 급락했다.

최근 달러 가치 추락의 직접 원인은 하반기에도 미국 경기의 회복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경기악화, 경상수지 적자 규모의 확대 등 달러 약세를 부추길 재료가 우세한 상황에서 경기회복 기대마저 불투명한 데 따른 시장 반응이다.

관심의 초점은 부시 행정부가 과연 ‘강한 달러 정책’(strong dollar policy)을 포기하느냐 여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올들어 7차례나 기준 금리를 인하, 미국과 일본, 미국과 유럽 간 금리스프레드가 역전되거나 크게 줄어든 상황인데다 ‘강한 달러’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최근의 절하에도 불구, 달러 가치는 다른 통화보다 여전히 강하다. 미국의 6월 중 무역적자 규모가 294억 달러로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달러 가치의 하락을 부추긴 것은 물론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달러 가치가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양되는 반면 시장에서는 절하 압력이 높은 데 따른 왜곡 현상들이다.

‘강한 달러 정책’에 대한 수정 요구는 미국 내 수출기업들이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언론들도 강한 달러가 미국 상품의 수출경쟁력을 낮춘다며 정부에 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실정이다. CNN은 최근 “강한 달러가 미국경제에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단기적으로는 FRB의 금리인하 효과는 물론 대량 해고 등 기업의 원가절감 노력을 상쇄시키고 있다. GDP 성장률에서 올해에만 약 0.8% 손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생산자협회(NAM)도 지난 5월과 7월, 8월 3차례에 걸쳐 정책의 책임자인 폴 오닐 재무장관에게 ‘강한 달러 정책’의 수정을 요구했다. NAM은 오닐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난 97년 이후 달러가 엔화에 대해서는 27%, 유로화에 대해서는 출범 이후 30%나 절상되었다. 자동차·항공 등 대형 자본이 소요되는 산업이 받는 타격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선진 10개국(G10) 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도 에드워드 조지 영국중앙은행 총재 등은 “달러 강세로 유럽과 미국 등 세계가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며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기본 입장은 “강한 달러 정책의 고수”다. 오닐 장관은 8월17일 CNN과 인터뷰에서도 “미국경제는 곧 회복된다. 강한 달러 정책은 포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 FRB의 거시경제 모형에 따르면 올 들어 금리를 3.0%포인트 내림에 따라 달러화 가치는 5.75% 평가 절하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교역비중을 감안한 달러화의 실질가치는 7% 이상 절상되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자금시장 등 금융부문은 물론 교역 등 실물부문이 동시에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이 있는데도 미국은 왜 강한 달러를 고집하는가. 미국은 강한 달러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7년 전 채택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95년 4월 선진국들이 인위적으로 달러화 가치부양을 위해 협력한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지금까지 미국으로 자금 유입이 지속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때 이후 올 1/4분기까지 약 7조7000억 달러의 자금이 미국시장에 투자된 것으로 분석했다. 나스닥 등 미국증시의 주요 지수들이 같은 시기에 급등한 것도 국제자금의 유입에 힘입은 바 크다.

강한 달러는 국제자금시장의 유동자금을 미국으로 유입시켜 막대한 무역적자 부분을 보충해 주면서 산업의 필요 자본을 수혈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유지시켜 주면서 수출주도형 국가에 대한 최대 수요처로 자리잡은 것은 물론 수입물가를 낮추는 등 인플레 압력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는 사이 유럽과 일본, 동남아 국가 등은 달러강세(자국통화 약세)를 이용, 수출 경쟁력을 높였으며 이는 세계경제 성장에 적잖게 기여했다. 결국 미국시장에 투입된 국제자금은 미국의 최장기 경제호황과 세계경제 성장의 주요 배경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릴 당시 얘기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는 강한 달러는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미 행정부는 ‘강한 달러 정책’을 수정할까. 현재로는 그 가능성이 낮다. 인플레 압력이 낮아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약한 상황에서 자금이탈을 초래할 ‘약한 달러’라는 모험을 걸 이유가 없다. 또한 약한 달러는 상대적으로 유로화의 강세를 자극, 미국의 국채시장과 주식시장에서 자금유출압력이 커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달러화 약세에 따른 △경기부양 △무역수지 개선 등의 긍정 효과보다는 해외자본의 미국시장 이탈에 따른 △주가 하락과 △역자산 효과 등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는 것.

불황 허덕 세계경제 ‘달러의 딜레마’
대외적으로는 미국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들도 펀더멘털(경기의 주변여건)에 변화가 없어, 자칫 자국 통화의 강세는 수출 경쟁력 약화로 증시와 경기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달러화 가치가 모든 통화에 대해 약세를 띠고 있어 경쟁력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경기침체 국면에 있는 아시아 신흥국가들의 경기회복을 더 늦출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오닐의 의지와는 반대로 ‘약한 달러’를 강요하고 있다. 유럽 투자가들의 대미(對美)투자가 급감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유럽계 자금은 기업채권만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매수할 뿐 주식매수나 기업 M&A 자금은 끊긴 상태나 다름없다. 유럽 자금이 기업채권만 사들이는 것은 향후 달러 가치의 하락을 뜻하는 것이다.

JP모건의 래리 캔터 외환투자전략 수석은 “달러 가치의 절하 압력이 거세져 유럽계 투자가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미국시장 투자속도를 늦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 행정부의 ‘강한 달러 정책’을 고수하였는데도 달러 가치가 완만하게 떨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많은 외환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강한 달러 정책’을 밀고 나가되 FRB의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한 후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달러 정책은 앞으로 전개되는 미국경기의 모습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설사 변화가 오더라도 기준금리가 워낙 낮은 수준이어서 ‘약한 달러 정책’의 채택은 자칫 극약처방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미세한 정책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시장에서 달러가 약세 기조를 보이더라도 향후 6개월 내 달러 가치가 엔화에 대해 115엔 밑이나, 유로화에 대해 95센트대로 떨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주간동아 2001.09.06 300호 (p52~53)

  • < 방형국/ 인디애나폴리스 통신원 > hkbahng@bs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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