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0

2001.09.06

‘마사회’ 뒷말 많은 입찰, 꼬리 무는 의혹

관행 벗어난 복수예비가격 작성으로 공정성 시비 … 탈락업체들 강력 반발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2-15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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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회’ 뒷말 많은 입찰, 꼬리 무는 의혹
    한국마사회(회장 윤영호)가 발주한 거액의 감리용역 입찰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 7월26일 마사회(경기도 과천) 입찰실에서 실시한 부산·경남권 경마장 건설공사 책임감리용역 입찰에서 마사회는 기존 입찰 관행을 벗어난 복수예비가격을 작성해 특정업체에 유리하도록 불공정한 입찰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부산시 범방동과 경남 김해시 장유면 일대에 들어설 부산·경남권 경마장의 총 사업비는 4500억 원. 8월27일 기공식을 가졌고, 2004년 7월 완공 예정이다.

    이번 입찰 의혹은 아직 언론에 보도된 바 없다. 그러나 마사회와 관련부처인 농림부에 따르면 청와대,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정원 등이 제보에 접하고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용역 입찰의 예정가격(입찰 전 낙찰자 결정기준으로 삼기 위해 미리 작성해 두는 가액)은 83억5891만750원. 대개 ‘덩치’ 큰 감리용역이 20억~30억 원대란 사실에 비춰보면 이번 입찰은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이다.

    마사회 “자체 규정 따라 적법 처리”



    입찰방식은 적격심사에 의한 최저가 낙찰제. 참가업체는 건축사무소로 이뤄진 6개 컨소시엄. 모두 입찰 참가자격을 결정짓는 PQ(입찰 참가자격 사전심사)를 통과했다. PQ 통과업체 중 적격점수(PQ점수를 70점 만점으로 환산한 점수)와 입찰점수(투찰금액을 30점 만점으로 환산한 점수)의 합(종합평점)이 85점 이상으로 최저 투찰금액을 써낸 업체를 낙찰자로 결정한다. 입찰 결과 낙찰자는 63억3075만3000원을 써낸 K컨소시엄.

    그러나 탈락한 5개 컨소시엄은 “입찰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입찰 다음날인 7월27일 ‘공정한 재입찰 집행촉구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구성, 8월1일 마사회에 재입찰을 요구하는 이의신청을 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의신청 요지는 마사회가 입찰 하루 전인 7월25일 “예비가격 기초금액 85억2319만6000원을 기준으로 ±3% 범위 내에서 (서로 다른) 복수예비가격 15개를 선정, 이 중 4개를 추첨해 산술평균한 금액을 예정가격으로 한다”고 입찰 참가업체에 통지하고도 실제론 예비가격들의 분포를 편중함으로써 특정업체(낙찰자)가 ‘특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비가격은 예비가격 기초금액(100% 기준)의 100~100.45%선에 7개, 97.05~97.50%선에 8개 등 15개 예비가격이 모두 0.9%(절대값) 범위 내 몰려 작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한 탈락업체 관계자는 “입찰 참가업체들은 보통 예비가격들이 일정 범위(예를 들어 ±3% 등) 내에서 최대한 각각의 간격을 넓혀 균등하게 작성되는 점을 감안해 예비가격 기초금액 안팎 수준으로 투찰금액을 쓴다. 하지만 예비가격이 지나치게 좁은 범위 내 한데 몰리면 써낼 수 있는 투찰금액의 선택 폭을 그만큼 제한한다. 따라서 예비가격 편중 사실을 미리 안 업체는 낙찰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며 마사회의 입찰 방식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처럼 탈락업체들이 쉽게 의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관급공사(또는 용역) 입찰의 경우 15개 예비가격의 간격을 ±3%(조달청은 ±2%) 범위 내에서 최대한 늘리는 게 통례기 때문. 이는 입찰정보 유출 등 불공정행위가 불거진 전례가 많아 입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 행정자치부 예규나 지난해 1월 개정한 건설교통부 훈령(제266호) 등은 예비가격간 폭을 최대화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조달청 계약과 역시 공공기관 발주 공사(용역) 입찰의 투명성을 위해 아예 컴퓨터 작업으로 예비가격과 그 폭을 선정한다.

    마사회는 지난 8월11일 ‘추진위’에 보낸 회신에서 ‘마사회는 입찰을 자체 계약규정에 근거해 집행하며, 이번 입찰의 예비가격도 계약규정 제46조 4항에 따라 적법하게 작성했다”고 답했다.

    ‘한국마사회 계약규정’ 46조 4항(2000년 11월 신설)은 ‘예정가격의 결정기준’에 관한 사항. ‘예비가격 기초금액 기준 ±3% 범위 내에서 복수예비가격 15개를 선정하고, 이 중 4개를 추첨해 산술평균한 금액을 예정가격으로 한다’고만 명시했을 뿐 예비가격 폭과 관련한 명문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 마사회측은 “마사회는 정부투자기관이 아니라 비영리 특별법인이어서 국가계약법이나 공공기관의 내부지침(예비가격 폭 관련사항)까지 따를 의무는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마사회는 지금까지 자체 발주한 입찰에서 예비가격 폭을 어떤 기준에 의해 결정해 온 것일까. 의혹은 이 대목에서 증폭된다.

    마사회가 자체 집행하는 각종 용역 및 공사 입찰은 월평균 10여 개. 대개 1000만 원~2억 원대 소액 입찰이다. 그런데도 마사회는 수작업 대신 컴퓨터 작업으로 최대한 폭을 넓힌 예비가격을 작성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입찰업무를 맡은 마사회 조달팀 관계자는 “명문규정은 없지만 거의 모든 입찰에 행자부·조달청 등 공공기관의 입찰방식을 준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입찰방식을 ‘벤치마킹’해 온 마사회가 입찰의 공정성을 기하는 데 필수적인 ‘예비가격 폭’에 대해 명문화하지 않은 점은 아직도 의문이다.

    ‘마사회’ 뒷말 많은 입찰, 꼬리 무는 의혹
    의문은 꼬리를 문다. 문제의 예비가격을 작성한 당사자는 과연 누구일까.

    ‘주간동아’ 취재 결과 편중된 예비가격은 윤영호 마사회장(61)이 직접 수작업으로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사회는 예비가격 기초금액 50억 원 이상 입찰에서는 예정가격 결정을 회장이 직접 하도록 했다. 따라서 윤회장이 예정가격 산출근거가 되는 복수예비가격을 작성한 사실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윤회장이 마사회의 기존 입찰 관행을 지키지 않으면서까지 예비가격의 폭을 좁힌 까닭은 대체 뭘까. 윤회장은 8월24일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마사회 예산절감 차원에서 투찰금액 하향화를 유도하려 편중 작성했을 뿐 낙찰업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편중된 예비가격은 충분한 예산절감이 가능할 정도의 낮은 낙찰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절대값 0.9%의 좁은 범위 내에서도 예비가격들은 예비가격기초 금액(100%)을 기준으로 양극단(100~100.45%선에 7개, 97.05~ 97.50%선에 8개)에 몰려 있다. 만일 가장 낮은 낙찰가를 유도하려면 입찰 참여업체들이 15개 예비가격 중 가장 낮은 97.05~97.50%선에 위치한 8개 중 4개를 뽑아야만 한다.

    마사회 조달팀 관계자는 “확률상 낮은 낙찰가가 나올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15개 예비가격 중 4개를 뽑는 과정에서 가장 낮은 예비가격만 뽑힌다는 보장은 없다”고 털어놨다. 즉 100~100.45%선의 높은 예비가격이 나올 ‘우연’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예산절감’ 효과를 노렸다는 윤회장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지난해 11월 제29대 마사회장에 취임한 윤회장은 육군본부 예산처장과 육군 중앙경리단장을 지낸 예비역 장성(육군소장 예편). 남해화학 사장도 역임한 윤회장은 입찰업무에 능한 위치에 있다. 이런 윤회장이 몇 년에 한 번쯤 있는 거액의 용역입찰에서 ‘뒷말’이 예상됨에도 그런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더욱이 조달팀측은 “입찰 전 윤회장의 예비가격 작성 과정에 실무자들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달팀측은 또 “만의 하나, 예비가격 편중 사실을 미리 안 업체가 있다면 그 업체가 낙찰될 확률이 매우 높은 건 사실이다. 탈락업체들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며 이번 입찰의 문제점을 일부 시인했다.

    이번 의혹과 관련, 마사회가 8월23일 농림부에 제출한 해명자료에도 ‘자체 계약규정을 개정해 추후 입찰에서 (예비가격 관련) 유사 민원이 제기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고 명시했다. 농림부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청와대 등 여러 기관에 이번 입찰 관련자료를 제출했다. 현재 (농림부선에서) 더 이상의 의혹을 풀 방법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마 부정과 방만한 경영 등으로 ‘복마전’이란 여론의 지탄을 받아온 한국마사회. 이번 의혹이 투명하게 풀리지 않는 한 연 4조6000억 원대의 마권 매출을 자랑하는 마사회는 거액의 입찰조차 ‘경마 베팅’하듯 처리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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