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0

2001.09.06

운영시한 연장 단서 조항이 ‘화근’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 외압 파문 … “일단 따내자” 리스크 큰 사업에 참여 ‘대박’노려

  • < 김 당 기자 > dangk@donga.com

    입력2004-11-18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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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시한 연장 단서 조항이 ‘화근’
    지난 8월5일 인천국제공항 주변 유휴지 개발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로비·외압 의혹사건이 처음 언론에 터졌을 때 K공기업의 개발사업팀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자신들도 로비·외압 의혹에 연루된 것처럼 덤터기를 쓰고 기업 이미지마저 나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을 건설하느라 4조 원 이상의 빚을 안고 있는 인천공항공사가 공항 주변 유휴지 120여 만 평을 개발사업자에게 한시적으로 임대해 임대수익도 얻고 주변 경관을 개선해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투자자 모집공고를 낸 것은 지난 3월10일. 모집공고에 따르면 이 투자유치사업은 인천공항 주변의 제5활주로 예정지역 등에 대중 골프장과 민간 자율 제안시설을 유치해 2020년까지 운영토록 하고 반환 받는 것이 골자.

    그런데 K공기업 개발사업팀 관계자들은 모집공고와 무관하게 C모 이사장에게서 개발사업을 적극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중앙부처 차관 출신의 C모 이사장은 역시 차관급인 해운항만청장을 지낸 강동석 인천공항공사 사장과 행정고시 동기로 절친한 사이. 게다가 K공기업 개발사업팀은 몇 해 전부터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대중 골프장을 인수해 운영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해 왔기 때문에 C이사장의 검토 지시와 관계없이 실무 차원에서도 검토해 볼 만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 간 골프장을 물색하느라 전국 골프장 중 안 가본 데가 없을 만큼 ‘골프장 박사’가 된 개발사업팀이 골프장 전문설계·감리기관에 컨설팅하고 현장을 실사한 후 내린 결론은 ‘사업 타당성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개발사업팀은 지난 3월 말 이런 내용의 사업 검토보고서를 C이사장에게 올려 결재를 받음으로써 C이사장의 사업 검토 지시로 시작한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사업 참여건은 없는던 일이 되었다. 개발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만약 우리가 그 사업에 참여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면 이사장님과 강동석 사장의 친분관계 등에 비추어 틀림없이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고 말했다.



    원익, 에어포트72 ‘실패한 로비 사건’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사업 로비·외압 의혹사건의 발단은 인천공항공사 강동석 사장(63)과 이상호 이사(44·구속)의 갈등. 강동석 사장은 개발사업 심사평가위원들이 우선협상 사업자 경쟁에 참여한 6개 업체 중 ㈜원익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지난 7월23일 이상호 개발사업단장의 보직을 해임했다. 해임 사유는 ‘경영 마인드 부족’. 개발사업단장이 사업자 선정의 중요 조건인 토지사용료를 다른 사업자보다 적게 써낸 업체를 선정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였다.

    그러자 지난 8월 초 이상호 이사는 특정업체 편들기를 해온 강사장이 그 업체가 우선협상 대상에서 탈락하자 자신의 보직을 해임했다며 언론에 의혹을 제기했다. 특정업체는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처남인 윤흥렬 전 대한매일 전무가 대표이사 사장인 ㈜스포츠서울21 등 6개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에어포트72㈜. 그러자 야당이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제기하는 가운데 이 사업과 관련해 이상호 전 단장에게 전화를 건 국중호 전 청와대 행정관이 구속되었다.

    반면 강사장은 오히려 ㈜원익 컨소시엄에 참여한 특정 대기업의 로비를 받은 이상호 전 단장이 ㈜원익을 봐준 의혹이 있다는 ‘역(逆) 특혜설’을 제기했다. 그 특정 대기업은 삼성그룹. 삼성의 지주회사인 에버랜드는 ㈜원익측과 개발사업의 골프장 설계시공 운영사업을 맡기로 협약을 맺었고 삼성물산은 상당 지분을 갖고 참여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아직 의혹을 규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호 전 단장 또한 구속된 가운데 삼성 관련 로비의혹을 뒷받침하는 상당한 근거들을 제기함으로써 현재 이 사건은 ㈜원익과 에어포트72㈜ 양측이 모두 개발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 어쨌든 이 사건은 ‘옷 로비 의혹’ 사건처럼 또 하나 현 정부의 ‘실패한 로비’ 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사건의 의혹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는 이 사업이 일부 언론에서 표현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는 전혀 동떨어진 사업이라는 점이다. 이런 과장된 표현은 오히려 의혹을 부풀리기 위한 수사(修辭)적 장치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인천공항측이 사업자 선정공고 및 사업설명회에서 제시한 개발사업 추진방식과 조건을 짚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천공항공사 자료에 따르면 사업 추진방식의 골자는 한마디로 인천공항공사는 땅(사업부지)만 제공하고 사업 추진에 필요한 모든 인·허가 및 행정절차는 사업 시행자의 책임이라는 것. 따라서 골프장 인·허가 지연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모든 책임은 사업 시행자에게 있다. 사업에 필요한 모든 사업비와 운영비는 물론, 시설 건설·운영기간의 각종 부담금과 제세공과금도 시행자 부담이다. 또 시행자는 사업 투자비용 및 기대수익률에 근거해 적어도 종토세 총액 이상의 토지 사용료를 토지 소유주인 공항공사에 내야 한다. 물론 토지 사용료는 시설물의 운영 수입 및 경영성과와는 무관한, 마치 현대의 금강산사업 관광 대가금처럼 불변 지급조건이다. 게다가 투자유치 개발예정지는 공항 건설을 위한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갯벌 매립지(제5활주로 예정지역)로 염전 및 습지 아니면 습기 찬 나대지 상태거나 공항 건설용 매립지를 조성하기 위해 토사 채취장으로 사용하던 곳(삼목2도와 신불도)으로 흙이 없고 암반만 불거진 상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골프장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과 흙. 그런데 영종도는 물이 귀한데다 염전과 습지로 이뤄진 부지에 잔디를 활착(活着)시키려면 약 3m 높이로 복토해야 한다.

    골프장 전문설계·감리기관의 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골프장 54홀을 조성할 수 있는 제5활주로 예정지(80만 평)의 경우 토목공사비는 약 615억 원 정도. 클럽하우스 건축비와 조경·배수·전기공사비는 포함되고 토지 구입비, 골프장 취득세, 법인설립비 등은 제외한 것이다. 여기에 골프장을 조성해 잔디와 수목이 정상적으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복토량은 약 260만 m3로 이를 근거로 복토 공사비(표준품셈의 60% 적용한 실제 공사비)를 추정하면 최저 180억 원에서 최대 1000억 원이다. 그러나 반경 1km 이내에서 가져올 흙은 없으므로 ①은 실현 가능성이 없고 수도권역에서 흙을 파오려면 1000억 원이 소요되므로 ④의 경우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요한 흙의 절반은 인근 야산에서 파오고 나머지는 수도권에서 사온다고 전제했을 때 복토 공사비 추정액은 490억 원(공사차량의 공항전용 고속도로 통행료 미계상)으로 토목공사비를 합친 총투자비는 최저 1300억 원 수준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대중 골프장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40억∼45억 원. 그런데 전문가들은 인천공항의 경우 거센 바닷바람과 항공기 소음, 상대적으로 비싼 교통비, 단기간 운영 후 반환으로 인한 열악한 조경 유지 등을 감안할 때 다른 골프장보다 입장료를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사업 타당성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린 K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목표 기대수익률을 충족시키는 최저 이익금 규모가 연간 90억 원 수준이고, 16년 간 투자금 전액을 회수하는 데 따른 매년 균등 상환금액이 약 80억 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해마다 170억 원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는 데 반해 리스크는 너무 컸다”고 사업 포기 배경을 밝혔다.

    그렇다면 원익과 에어포트 등 다른 업체는 수익성보다 리스크가 큰 이 사업에 뭘 믿고 덤빈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개발예정지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제5활주로 예정지에 추가로 들어설 예정인 제5활주로 건설이 불투명한데다 공항공사의 계획변경 등에 따라 사용기간의 연장이 가능하다는 관측 때문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실제로 업계 인사들에 따르면, 협상 당시 이미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될 경우 사용기간은 협상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

    이와 관련 인천공항공사 개발사업단 관계자는 “2020년 착공 예정인 제5활주로 공사는 연기될 수 있으며 이 경우 토지사용기간도 늘어날 것이다”며 “이러한 조건은 당초 우리가 배포한 입찰관련 사업계획서에도 분명히 언급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항공사측이 두 회사에 그런 언질을 주었고 두 회사는 일단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면 로비를 통해 사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판단을 갖고 사업에 참여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K공기업 개발사업팀의 관계자는 “운영시한(2020년)에서 공사기간 4∼5년을 빼면 15∼16년 동안 투자보전 수익을 내야 하는데 아무리 따져봐도 그런 계산은 안 나온다. 따라서 운영시한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이용해 정권 말기에 공항공사측과 ‘담판’지으려 했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공항공사측이 제시한 개발 추진방식과 조건으로는 도무지 수익을 낼 수 없는 사업에 재벌기업과 언론사 자회사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뛰어든 데는 이런 ‘속셈’이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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