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2001.08.30

1급수 강 모래밭 ‘쫄깃한 속살’

  • 시인 송수권

    입력2005-01-20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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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급수 강 모래밭 ‘쫄깃한 속살’
    강의 근원을 일러 남상(濫觴)이라 한다. 접시물이 넘칠 만하다는 뜻이다. 강의 근원은 늘 그렇다. 섬진강 상류의 실개천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봉황산 상추막이 골에서는 첫 이름을 백운천이라 했다. 또 그 근원지가 팔공산 수분재의 남상인 다미샘이라고도 한다. 산꼭대기 노간주나무 잎새에 빗방울이 듣기면 금강의 물뿌리가 되기도 하고 섬진강의 물뿌리가 되기도 한다.

    이 물방울 하나가 동쪽으로 임실을 지나면서 오원강이 되고 순창에서는 적성강이 되기도 한다. 또 남원을 흘러 곡성 압록까지 이르면 순자강이 되었다가 압록 철교 밑에서 보성강과 합수해 그 폭을 넓혀간다. 압록에서부터 서출동류(西出東流)로 뻗다가 구례구의 변방산에서 코가 깨지고 남출북류(南出北流)로 치솟아 구례분지를 만든다. 다시 서출동류로 흐르는데 이를 섬진강이라고 한다. 하동(河東)이란 지명도 섬진강 동쪽에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여기까지 무려 장장 500리, 구례에서 하동까지 구간은 80리다. 남출북류는 역수(逆水)지만 서출동류는 모래밭을 쌓는 것이 우리 국토의 산세다. 그래서 하단은 모래밭의 강마을이며 북단은 산간마을로 강 문화도 차별화된다. 또 하단은 모래가람이라고도 한다.

    1급수 강 모래밭 ‘쫄깃한 속살’
    갱조개(재첩)는 바로 이 모래밭에 서식한다. 봄비에 묻어 갱조개 긁는 소리가 들려오고 희끗한 눈발이 비칠 때까지도 그 당그래질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갱조개는 강마을의 주수입원이 된 지 오래다.

    ‘조선에 가면 막사발이 널려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임진왜란은 더욱 가세되었다. 번주들의 성화가 빗발쳤다. 이 물목이 터지면서 북단 마을의 중심지인 남원성이 절단났다. 그 이북은 모악산계의 미륵신앙이요, 그 이남은 선도성모(仙桃聖母)의 국모(國母) 신앙이다.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 강줄기는 그 기맥이 화랑선사(花郞仙史)에서 저 남해에까지 이르고 있다.

    적어도 갱조개를 긁는 당그래(꺼랭이)질 소리에는 이런 민족의 메시지가 숨어 있고 갱조개회(재첩회)나 진국물 속에는 이런 숨소리가 숨어 있다. 이런 맛을 모르고 강마을을 휘덮는 매화꽃밭이나 벚꽃을 구경하고, 강바닥에 엎드려 당그래질하는 여인네들의 그림이 좋다고 너스레를 떠는 일은 난센스다. 갱조개 맛을 보려면 적어도 이 메시지 하나는 똑바로 알고 맺힌 속앓이를 풀어야 할 것이다.



    화개나루에서는 지금 영`-`호남 화합의 다리쌓기가 한창이다. 이 다리가 지역감정을 꿰매는 봉합선이라고들 한다. 양쪽 도지사가 똑같이 합의하고 돈을 투자했다. 강 건너는 광양 다압면이고 이쪽은 하동 화개면이다. 동학군 최후의 전몰지인 광포나루의 섬진교에 가면 갱조개 긁는 구획선(線)도 나누어져 있다.

    화개나루에 가면 하동으로 내려가는 화개장터 입구에 재첩회를 잘하는 아주머니가 산다. ‘팔도장 가든’(대표 김병두·055-883-4329)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섬진강은 악양면과 하동읍으로 차례로 거친다. 하동포구의 들물과 썰물의 간섭을 받으며 기수대를 형성하고 봄철에는 황어떼와 은어떼, 여름철에는 눈치떼, 가을철에는 참게떼가 오른다.

    팔도집 내외는 이렇게 말한다. “한눈에도 황달병이구나 싶은 간(肝) 환자들이 자주 찾아와요. 어디서 풍월로 듣긴 들은 모양이지요. 재첩국을 보름만 마시면 황달도 당뇨도 낫고 위 쓰림(궤양)도 낫는다고요. 그런디 이젠 하동재첩이 아니라 중국산, 강원도 송지호나 영암 뻘밭, 심지어는 낙동강 조개까지 올라와요. 이것들은 다 뻘조개라 덩치만 크지 맛도 없고 콩알만한 하동조개를 못 당해요. 그러니 알아서들 잡숴야지요. 북한산·중국산이 한 말에 5만 원인데 하동 것은 15만 원이니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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