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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보복 악순환 … 이-팔 ‘빅뱅 전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무단통치’ 강공책 제기 … ‘팔’은 폭탄 테러 맞선 ‘극한 상황’

피의 보복 악순환 … 이-팔 ‘빅뱅 전야’

중동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정권의 강공책과 하마스(Hamas), 이슬람 지하드(Ismaic Jihad) 등 팔레스타인 과격세력의 잇단 자살폭탄 공격, 그리고 이에 대한 보복 응징은 폭력의 악순환을 낳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5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죽었고 이스라엘인도 150여 명이나 죽었다.

초여름 들어 한풀 꺾이는 듯하던 중동사태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공동체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적 징벌 성격의 봉쇄, 팔레스타인 과격파 요원들에 대한 잇단 표적암살 등 샤론 총리의 변함없는 강공책으로 급기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탱크를 진입시키고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거점인 오리엔트 하우스를 점령해 이스라엘 깃발을 내걸었다. 지난 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이래 이슬라엘군 탱크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잇달아 밀고 들어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 군 ‘폭격에서 점령으로’

지난 5월 필자가 중동 현지 취재를 갔을 때 자살폭탄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전폭기를 동원해 서안지구 라말라와 나블러스의 팔레스타인 보안시설들을 폭격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은 자살폭탄 테러에 대해 훨씬 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점령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동예루살렘의 오리엔트 하우스가 언론보도의 과녁으로 떠올랐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에 못지 않은 비중이 있는 곳이 아부 디스다. 행정구역상으론 예루살렘이 아닌 서안지구지만, 바로 예루살렘에 잇닿아 있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안양이나 부천 같은 곳이다. 이스라엘군은 오리엔트 하우스를 점령하면서 이곳도 함께 점령했다.

아부 디스에는 여러 팔레스타인 행정기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장래 독립국가의 국회의사당으로 쓰일 것으로 알려진 건물도 세워져 있다. 이처럼 아부 디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아라파트에게 매우 중요한 거점이다. 공식적으로 아라파트는 예루살렘을 고집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이곳은 신생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행정수도로 꼽히는 곳이다. 그런 아부 디스를 점령한다는 것은 아라파트를 향한 심리적인 압박에 다름 아니다. 아라파트는 샤론이 그같은 강공수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를 알고 있다. 아라파트에게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과격세력을 자체 검속하라는 압력이다.



이같은 압력은 ‘상호 신뢰회복’과 ‘보안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미첼 보고서’와 조지 테닛 CIA 국장 중재안으로 요약되는 미국 부시 정권의 대(對)팔레스타인 핵심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티파다(봉기) 과정에서 하마스·지하드 그룹과 연합전선을 형성해 온 아라파트로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과격파 검속 압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론 무작정 거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라파트의 딜레마다.

최근 서안지구 비르 제이트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로는 팔레스타인인의 78%가 인티파다를 계속해야 하며, 74%가 자살폭탄 공격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아라파트로서는 과격파를 내버려 두자니 자신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잠식해 오고, 잡아들이자니 이스라엘을 돕는 ‘이적행위’로 대중적 반발이 예상된다. 이처럼 하마스·지하드 검속 문제는 아라파트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관련된 매우 미묘한 사안이다. 중동사태의 뇌관 같은 것이다.

현 샤론 내각은 강경파들이 지배한다. 시몬 페레스 외무를 비롯해 좌파인 노동당 출신 각료는 소수파다. 오리엔트 하우스를 점령할 것인지를 놓고 내각에서 장시간 격론을 벌인 끝에 이뤄진 투표에서도 9 대 3으로 강경파가 이겼다. 그러나 샤론으로선 미우나 고우나 아라파트를 정치적 상대자로 삼아야 한다. 샤론이 강공책을 거듭해 아라파트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정치적 입지를 옹색하게 만든다면, 하마스나 지하드 세력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유혈의 악순환은 샤론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게 뻔하다. 최근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으로 하여금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 나서도록 허락한 것도 이런 사정에서라고 풀이된다.

이스라엘 외무장관 페레스의 역할에 대해선 논쟁적이다. 팔레스타인인은 그를 ‘평화주의자를 가장한 샤론’이라 비난한다. 노벨평화상(1994년)까지 받은 시몬 페레스다. 그렇지만 문제는 페레스가 샤론을 비롯한 강경파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유혈사태로 이스라엘 내부의 이른바 ‘평화 캠프’(peace camp)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쑥 들어갔다. 어쩌다 열리는 집회 규모도 겨우 몇백 명 수준이다. 각종 여론조사 지표는 대 팔레스타인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이스라엘 강경파 지식인들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안을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인이 현재의 이스라엘 점령지역 안에서 제한된 범위의 자치를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는 달리 부시 미 행정부는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부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라파트에게 ‘폭력행위를 중단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메시지를 띄워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쪽의 강공책에 대해선 이렇다 할 말이 없다. 어쩌다 한마디 하더라도 정치인의 수사학(rhetoric)에 그치는 정도다. 취임 뒤 부시 대통령은 강경파인 샤론을 두 번이나 만났으면서도 아라파트와의 면담은 뒤로 미룬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인종주의(racism)를 비판하는 유엔 결의에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보이콧한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집트와 요르단을 비롯한 이웃 아랍국가들도 말로는 ‘아랍형제’인 팔레스타인인을 돕자고 하지만,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수준이다. 레바논·시리아·이란·이라크가 그나마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손길을 보내지만 한결같이 비민주국가들인 이들은 국내 반대세력의 억압에 중동사태, 즉 반이스라엘 정치정서를 이용하는 수준이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빅뱅’(big bang)을 거론하는 강경파들도 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점령해 저항조직을 뿌리뽑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무단통치 전략이다. 이는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원점으로 돌리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팔레스타인을 힘으로 확실히 제압한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전망으로 보면 힘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인구지도(demographic map)의 변화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는 유대인 500만, 이스라엘 내 아랍계 100만을 합쳐 600만명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랍인 300만 명이 살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합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인구 비율은 5 대 4다. 이웃 요르단의 팔레스타인 난민을뺀 비율이다. 그러나 이 균형은 곧 무너질 전망이다.

아라파트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랍 여성의 자궁이다”는 말을 남겼다. 아랍계 가정은 산아제한 개념이 없다. 한 가정이 10명의 아들딸을 두고 있는 게 흔하다. 반면 유대인은 고작 2∼3명이다. 이스라엘은 인구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최근 하이파 대학의 아논 소퍼 교수는 2020년이 되면 이스라엘과 점령지에서의 아랍계 인구가 거의 60%에 이를 것이란 보고서를 냈다. 소퍼 교수는 이 문제를 샤론 총리에게 브리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인구문제에 이스라엘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묘안이란 별로 없어 보인다. 앞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든 안하든 장벽을 높이 쌓는다는 게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물리적인 담장뿐만 아니라, 입국절차를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것처럼 팔레스타인측 인구가 이스라엘로 넘어오는 것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내부의 120만 아랍계 시민은 이스라엘 당국이 어쩔 도리 없이 장기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고민거리다. 그러나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 이들이 이스라엘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를 넘을 전망이다. 러시아와 동구권에서 유대인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도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스라엘 상황이 불안해짐에 따라 이민올 사람은 거의 다 왔다는 얘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강경파 샤론 총리은 마음이 급하다. 유대인의 안정을 공약으로 총리에 오른 그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힘으로 제압하는 데는 위에서 보듯, 중장기적 전망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죽음을 ‘순교’로 여기는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의 저항에는 샤론조차도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론 이스라엘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67년 6일 전쟁으로 넓혀진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잇단 강공책에 대해 오래 전부터 비난을 퍼부어 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최근 이스라엘의 오리엔트 하우스 ‘점령’(occupation)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아난 총장은 그같은 점령행위가 더 큰 마찰과 폭력을 불러올 현명치 못한 행위라 못박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샤론 총리는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듯하다. 여유가 없기는 아라파트도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중동사태는 자살폭탄, 응징, 보복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어느 날에 있을 대폭발의 극점으로 치닫고 있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52~54)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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