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5

2001.08.02

아파서 눈물, 글리벡 못 구해 피눈물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 비싼 약값에 거덜날 판… 노바티스사 약가 조정 거부 ‘횡포’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5-01-1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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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서 눈물, 글리벡 못 구해 피눈물
    약이 없어 죽을 순 있어도, 돈이 없어 죽을 순 없다!” 지난 7월19일 오전 11시 서울시 마포구 건강보험회관 앞 마당. 환자복을 입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이날 모인 사람은 고작 몇 주일에서 몇 달 남은 시한부 생명을 살다 ‘신비의 비약’으로 알려진 글리벡의 임상 실험 대상이 되면서 목숨을 구한 가속기 또는 급성기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

    이들은 지난 5월 말부터 두 달 간 무상으로 글리벡을 투여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6월21일 글리벡의 정식 시판허가가 떨어졌고, 임상실험도 7월 말이면 끝나기 때문에 당장 한 달에 450만 원을 들여 글리벡을 사 먹어야 한다.

    이들 대부분은 글리벡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의료보험 적용시 본인 부담금 비율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끝’이 보이는 환자들이다. 이들의 생명 자체가 글리벡 생산업체인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들은 글리벡의 약값을 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앞에서 가격을 인하해 달라며 호소한 것.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의 한 의사는 이를 ‘호소’가 아니라 살려달라는 ‘애원’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에 사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 이승열씨(22). 그도 글리벡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전이 떨어졌지만 감히 글리벡을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당장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급성기나 가속기가 아닌 만성기 환자로 임상실험 환자에도 끼지 못했다. 노바티스사가 주장하는 만성기 백혈병 환자의 약품 반응률은 91%, 완치율은 30%에 달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 치료제인 인터페론을 매일 주사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가난한 상태. 인터페론은 한 달에 30만 원이면 맞을 수 있지만 한 알에 2만5000원씩 하는 글리벡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인터페론에 대한 부작용이 커 만성 두통과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며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처지지만 글리벡을 사먹자는 말은 가족에게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도 저 때문에 가족이 고통 받는데 이제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글리벡 가격 인하투쟁에 동참하는 것이었습니다.”



    글리벡을 먹을 수 있는 길을 찾던 그는 결국 의료보호대상자가 되기로 했다. 물론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리벡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의료보험 적용시 본인 부담금을 전액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의료보호대상자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부와 노바티스사가 보험약가 조정을 합의하고, 글리벡이 의료보험 대상 약에 포함된 다음의 이야기다.

    이날 오후 1시 서울시 종로구의 모 약국. 다급하게 들어온 잿빛 얼굴의 환자가 글리벡을 찾았다. “120알들이 글리벡 한 통에 300만 원 맞습니까?” 그런데 약사는 330만 원을 요구한다. 마진 10%가 붙은 것. 그것도 당장은 없고, 노바티스 직원이 약을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약값이 비싸 약사들도 이 약을 쉽게 사놓기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결국 약을 사러 온 환자는 처방전을 되돌려 받고 약국에서 나와야 했다.

    아파서 눈물, 글리벡 못 구해 피눈물
    31세의 사무직 회사원 출신인 그는 이번 달 들어 가속기 백혈병에 접어든 환자다. 이제 골수이식도 불가능하고 인터페론도 소용 없다. 오로지 글리벡만이 유일한 희망. 하지만 지난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직장을 그만뒀기 때문에 그도 글리벡을 먹자는 말을 가족에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전셋집을 내놓고 본가로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전세 계약금이 6000만 원이라 아무리 해도 글리벡 13개월 분량 밖에 안 됩니다. 하루에 6알씩 먹어야 하니까 120알 들이 한 병도 20일 분량밖에 안 돼죠. 언제까지 먹어야 완치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그는 글리벡 가격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1년 후에는 무일푼이 되는 셈이다. 완치하지 않는 한 그의 부모도 몇 년 후에는 같은 처지가 될 것이 뻔한 상황이다. 글리벡은 환자가 언제까지 투약해야 한다는 ‘시한’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가 없다. 아직까지는 죽는 날까지 계속 투약해야만 하는 것.

    그런데 이날 오후 3시 심평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미루고 미룬 글리벡의 보험약가 상한액을 정하기 위해 모인 약제 전문위원회가 심사평가원 제시안(한 알당 1만1400원대)을 무시하고 그 가격의 1.5배인 1만7000원선을 잠정 결정안으로 내놓은 것. 평소 약제 전문위원회는 심평원이 제시한 가격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상례였으나 이번에는 오히려 가격을 올렸다. 이는 노바티스가 희망 보험약가로 요구하고 현재 시판중인 한 알당 2만5000원에서 32%만 내린 가격이다. 보험 적용범위는 70%, 본인 부담금은 일괄 30%로 결정되었다.

    한 달에 180알의 글리벡을 복용해야 하는 급성기나 가속기 환자를 기준으로 볼 때 한 달 약값이 450만 원에서 306만 원으로 떨어지기는 한 셈이다. 보험을 적용하면 성인의 경우 이의 30%인 92만 원을 매달 본인 부담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달마다 92만 원씩 1년이면 1100만 원. 3년 복용하면 골수이식 비용이 빠지는 금액이기는 하다.

    그러나 환자와 시민단체는 약제 전문위원회의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의협 우석균 정책실장은 “심평원은 일반 수입약품이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쓰이는 항암제 대부분이 미국 판매가의 평균 40%, 어떤 종류는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40% 수준에서 약 값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약제 전문위원회가 제약사 희망가의 68% 수준으로 가격을 올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약제 전문위원회는 약품 공급자 입장에 있는 위원들이 과반수를 넘는다. 약값 결정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많은 의혹이 인다”고 비난했다.

    임상실험 대상자였다가 8월부터 당장 글리벡을 사야 하는 가속기 백혈병 환자 권성기씨(31)의 부인은 “이 가격도 웬만한 서민에게는 버거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며 “이 가격으로 3년을 견디면 집안이 풍비박산날 것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약제 전문위원회의 가격 조정도 서민 환자에게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논란 속에서 노바티스사가 약제 전문위원회의 제시안도 거부하고 자신들의 희망 보험약가를 조금도 굽힐 생각이 없다는 사실. 한국 노바티스사측은 20일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봐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가격 인하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스위스·미국에서 시판하는 값에 맞춰 국내 판매가를 정했으므로 약제 전문위의 가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노바티스사는 99년 7월 ‘산디문 네오랄’이라는 이식거부 반응 억제제를 국내에 들여오면서 약값을 깎으면 약을 팔지 않겠다고 보험 등재를 거부한 제약사다.

    보험약가 결정의 실무를 맡고 있는 심평원도 이 점을 가장 우려한다. “노바티스사가 만약 약가 조정을 거부하고 비보험약으로 이를 유지하거나 아예 한국 판매를 거부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심평원 약가분석부 관계자).

    급성기에서 사경을 헤매다 글리벡의 국내 첫 수혜자로 기적처럼 살아나 화제가 된 지만규씨(39)는 최근 의료보호대상자로 지정되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재산도 없어지고 수입도 전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것도 관할 동사무소에 통사정하다시피 해 얻은 ‘혜택’이었다. 그는 글리벡이 의료보험 약품으로 지정되면 무료로 글리벡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노바티스가 계속 약가 조정을 거부하고 글리벡을 비보험 약품으로 판매하거나 아예 공급을 중단할 경우 그는 어떻게 될까. 인의협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다국적기업이라 해도 생명을 담보로 한 무리한 이윤 추구는 ‘살인 행위’와 같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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