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2001.07.26

“MBC와는 안 놀아!”… 연예인들 열받았다

2580 ‘노예계약’ 보도로 해묵은 갈등 폭발… 출연 거부 장기화, 법적 공방으로 옮겨갈 듯

  • < 허 엽/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 heo@donga.com

    입력2005-01-11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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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와는 안 놀아!”… 연예인들 열받았다
    MBC와 연예계 간 갈등이 확산일로다. 매니저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회장 엄용섭, 이하 연제협)가 지난 7월3일 MBC ‘시사매거진 2580-한·일 비교 연예인 대 매니저’(6월17일 방영)가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를 ‘노예계약’으로 왜곡보도했다며 소속 연예인들의 MBC TV 출연 거부를 선언한 이래 양측은 한치의 양보 없는 대결국면을 계속하고 있다. 연제협은 △MBC ‘뉴스데스크’ 머릿기사로 사과 △정확한 실태를 반영한 프로그램의 재방영 △관계자 징계 등을 요구했으나 MBC는 ‘뉴스데스크’ 머릿기사로 사과하는 부분을 거절, 협상은 난항을 거듭중이다.

    지난 7월10일 120여 명의 가수와 탤런트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협회를 지원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데 이어 MBC가 ‘뉴스데스크’ ‘미디어비평’ 등을 통해 강공함으로써 양측의 강경기류는 좀처럼 완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협회의 서희덕 대변인이 7월13일 CBS 라디오 생방송 ‘뉴스 레이더 3부’에서 MBC PD가 연루된 촌지 수수설을 언급하면서 사태는 연예계 전반의 비리 폭로전으로 확대할 조짐마저 보인다. 협회는 7월16일 전날 방영한 ‘~2580’의 ‘연예인 대 매니저’ 후속편 내용에 대해서도 “전편과 달라진 게 없으며 MBC가 자사 이기주의적 태도로 연예계의 요구를 매도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배경은 대체 무엇일까. 연예계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단순히 ‘~2580’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동안 방송사와 연예인 매니저 사이에 쌓인 해묵은 갈등이 ‘~2580’의 보도로 인해 폭발했다는 것이다.

    한치의 양보 없이 대결국면 계속

    방송사 PD와 매니저 간 앙금을 보이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 지난 5월 중순 연제협 주최로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드림콘서트’장. 주최측 대기실에서 돌연 소란이 일었다. 매니저 출신으로 현재 한 음반사 부사장으로 있는 A씨가 방송사 예능국의 고위 간부 B씨에게 면박을 준 것이다. A씨는 “당신말이야! Q사장하고만 어울리면서 그 회사 가수들만 봐주기야”라며 따졌다. 봉변을 당한 B씨는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왔다. 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예전 같으면 매니저 직업을 포기하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늦게 A씨는 “형님, 속이 다 후련합니다. 형님밖에 없습니다”라는 매니저 후배들의 격려 전화를 몇 통 받았다.

    또 다른 사례. 서희덕 대변인은 라디오 생방송에서 “최근 한 가수의 촌지사건에 대해 MBC는 해당 PD의 사표만 수리한 채 근본대책 없이 신인가수의 출연을 통제하는 등 책임을 연예계로 돌려 매니저들의 불만이 비등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2580’의 왜곡보도가 연예인들의 집단행동을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신인가수 K의 아버지가 아들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거액을 뿌렸으나 성과가 없자 모 처에 투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서대변인이 라디오 생방송에서 언급한 게 바로 이 소문. ‘~2580’이 지난 6월17일 방송에서 그룹 ‘H.O.T.’의 세 멤버(장우혁, 이재원, 토니 안)와 그룹 ‘한스밴드’의 사례를 들며 연예계의 계약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 부분도 연제협의 반감을 샀다. ‘~2580’은 특히 장기(5년) 계약기간이나 수익 배분의 불공정한 관행으로 가수들은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며 나이 어린 연예인들이 노예계약의 주대상이라고 보도했다.





    연예인과 매니저들의 불만이 폭발한 대목이 바로 이 ‘노예’라는 표현. 그러나 ‘~2580’ 제작진은 “연예산업의 투명성이나 스타 시스템의 문제점, 연예계의 불평등계약 관행에 대한 문제점을 짚었는데도 매니저들이 이를 확대해석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매니저나 가수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수 박진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문제를 확대해 연예계 전반을 비리집단으로 매도한 건 MBC다”며 “‘~2580’의 내용을 뒤집는 사례들이 많은데도 보도가 균형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매니저 C씨는 “음반사업은 성공률이 2∼3%에 지나지 않을 만큼 위험이 크다”며 “1억∼2억 원에 달하는 초기 투자비도 못 건질 확률이 95%가 넘는 연예사업의 특성상 가수와 매니저간 계약은 그 위험을 보전할 만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이런 ‘산업적 특수성’을 도외시하고 ‘노예계약’으로 단정한 것은 연예계에 대한 편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7월3일 연제협 총회장에는 250여 명의 매니저들이 모여 ‘~2580’의 보도에 대한 대응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매니저들은 “문화산업을 일구는 첨병이란 긍정적 평가가 있음에도 방송사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여전히 우리를 하찮게 본다”며 “이번 기회에 우리 역할에 걸맞은 위상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30대 젊은 매니저들은 “나이어린 방송사 PD들한테도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있다” “급성장한 연예 산업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마당에 예전처럼 홀대당할 수 없다”며 의식의 변화를 외쳤다. 총회가 별다른 진통 없이 방송사상 처음으로 MBC TV 출연 거부라는 단체행동으로 결론난 것은 매니저들의 이런 달라진 의식에서 비롯했다.

    사실 최근 연예산업은 급성장에 따른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도레미미디어, 대영AV, SM엔터테인먼트, 예당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출현했고, 이 중 상당수는 코스닥에 등록해 있다. 음반 판매도 본격 밀리언셀러 시대로 접어들었고, 탤런트들의 CF 출연료는 억대가 예사다. 그만큼 연예계의 스타 파워는 하나의 문화권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산업의 총아인 스타를 발굴해 육성하는 매니저는 물론, 스타 스스로가 방송사에 대해 달라진 역학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반면 MBC 등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TV 등 다매체의 등장으로 영향력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 게다가 도레미미디어가 ‘채널 V 코리아’를, 대영AV가 음악채널 KMTV를 운영하는 등 연예프로덕션이 방송사를 소유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연예계는 이제 ‘스타 탄생’을 위해 굳이 MBC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연제협측이 “출연 거부를 장기화하면 MBC는 보도 프로그램만 남을 것이다”고 ‘배짱’을 보이는 것도 이런 역학관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반면 MBC는 “‘~2580’ 제작진이 연예계를 왜곡 보도한 것은 한 획도 없다”며 “법적 대응도 자신 있다”는 입장. 또 ‘미디어 비평’에서는 아예 이번 사태를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연예계의 집단이기주의로 비판하고 나섰다.

    예능국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능국 PD들 사이에서는 “출연 거부는 어차피 오래 가지 않는다. 이번에 밀리면 앞으로 캐스팅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MBC가 공세를 멈추지 않는 까닭도 이런 내부 분위기와 함께 아직까지 파행 방송이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 가요순위 프로인 ‘음악캠프’만 한 차례 결방했을 뿐 ‘목표달성 토요일’은 약 3주치 녹화분이 있어 눈에 띄는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MBC로서 늘 선정성 시비를 부른 오락 프로그램을 아예 외주제작으로 돌리는 방안도 고려해 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연제협 비대위는 지난 7월16일 “MBC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말고 무기한 출연 거부를 고수한다”고 결의했다. MBC로서도 사태 발생 이후 줄곧 공세만 취한 탓으로 마땅한 협상카드가 없어 사태의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제협은 이날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한 데 이어 조만간 명예훼손 소송 등을 제기할 방침이어서 양측의 갈등은 연예인들이 출연 거부를 계속하는 가운데 법적 공방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MBC는 시청률을 보장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어려운데다 KBS와 SBS가 이번 사태를 연예인과 방송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고 나서 마냥 맘놓고 있을 수는 없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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