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3

2001.07.19

뛰는 ‘기대수준’ 기는 ‘인사관리’

사무직 중심 관행으로 생산직 차별… 제한된 직급 사다리·연공서열 원칙에 능력개발은 뒷전

  • < 이영현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 yhlee@krivet.re.kr

    입력2005-01-07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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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는 ‘기대수준’ 기는 ‘인사관리’
    생산현장에 젊은 기술인력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부재다. 그동안 우리 나라 기업의 인사관리는 대졸 사무직 근로자와 저학력 생산직 근로자로 명확히 구분해 왔다. 내부 노동시장은 제한된 수의 사무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형성, 발전해 왔다. 생산직 근로자는 고용, 직무 배치, 보상제도, 교육훈련 등에서 한결같이 차별 대우를 받았다.

    숙련된 생산직 근로자는 제한된 직급 사다리와 능력개발 기회의 부족으로 끊임없이 외부 노동시장을 모색해 왔다. 기업은 기업대로 근로자를 훈련시키기보다 다른 기업에서 능력 있는 근로자를 스카우트해 오는 것을 더 선호해 왔다. 게다가 연공서열 원칙에 근거한 기업의 보상제도는 생산직 근로자에게 기술 향상의 의욕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인사관리의 이러한 문제점이 기대 수준이 높은 요즘 젊은이들을 생산현장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생산현장의 업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 규모에 따라 작업조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중소제조업체는 젊은 근로자가 부족해 생산직 근로자들이 고령화하고 있다. 숙련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48.6세에 이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우선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한 젊은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지식과 숙련기술을 습득케 하고 이러한 지식과 기술 활용에 긍지를 느끼게 하였다. 실제로 많은 생산직의 숙련 근로자들이 지식 근로자의 면모를 갖추었다. 또한 중소기업체에서 숙련 근로자는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비교적 많다. 현재 40~54세 연령집단의 40% 정도가 관리직에서 일한다. 중간에 입사한 근로자도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에서는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로 인해 노조를 통해 의견을 개진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제안활동, QC활동 등 다양한 팀 활동을 통해 근로자들이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제조업체의 젊은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많다. 먼저 생산현장의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 사무직보다 현저히 적은 생산직의 직급체계를 개선하여 승진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시간급 또는 일급제인 생산직의 임금체계를 월급제로 개선하여 사무직과의 차별에서 오는 불만을 해소해야 한다. 또한 생산직 근로자가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작업조직 자체를 습득한 지식과 숙련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조직으로 개조해야 한다. 실제 새로운 생산직 근로자의 의욕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는 기업의 경우, 훌륭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A기업에서는 생산·기능직 사원의 임금형태를 일급제에서 월급제로 전환하여 사무직과의 신분차별을 해소했다. 또한 학력과 연공서열 중심의 승진·승격 관리에서 직무수행 능력과 업적 중심의 제도로 전환하였다.

    B기업에서는 대졸 관리직과 고졸 생산직 근로자로 분리한 직급체계를 통합하여 단일 직급체계를 채택함으로써 생산직 근로자가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으며, 생산·기능직의 승진 사다리를 길게 하기 위하여 기존의 사원·반장·조장의 직급 위에 기성보 및 기성이라는 직급을 두었다.

    C기업에서는 근로자의 경력개발제도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노동인력의 교육수준 및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젊은 근로자들이 장래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능력개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체계적인 직무 순환, OJT, 팀 학습, 자율학습제도 등을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생산직 근로자에게도 연 40시간 이상의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사례는 고령화에 대응하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근로자의 참여와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인사관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우리 경영자들도 머지않아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터진 후 대처하는 것보다 미래를 예상하고 대처하는 것이 훨씬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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