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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정권 말기 ‘절망’에 대하여

  • < 이 종 수 / 연세대 교수·행정학 >

정권 말기 ‘절망’에 대하여

정권 말기 ‘절망’에 대하여
어떤 의미에서 모든 개혁은 실패로 귀결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헌팅턴(S.Huntington)은 이미 1968년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라 갈파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대한 평가가 최근 부정적인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다. 집권 초인 1998년 4월 70.7%에 육박하던 DJ 지지율마저 2001년 4월 기준으로 26.9%로 추락하였다(갤럽, 2001년 4월). 어떤 의미에서 이제야 균형 잡힌 평가가 내려졌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김대중 정권뿐 아니라 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경험한 공통 현상이다.

사실, 한국에서 정권 초기 80~90%에 육박하던 정권 지지율은 허구적 구조의 산물이다. 이것은 정치안정을 의미하는 지표가 아니라, 정권 말기의 지지율 하락과 불안정을 예고하는 복선일 뿐이다. 새로운 정권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유권자들이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할 뿐이다. 유교식 민주주의 토양 위에서 지도자에게 과도한 권한을 위임시키고, 민초들은 박제된 지 오래된 지도자의 ‘위민’(爲民)을 기대하는 꼴이다. 그 결과 정권 초기의 ‘막연한’ 기대는 정권 후반에 이르면 ‘구체적인’ 절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정권 초반의 높은 지지도는 정권에게 지나친 부담일 뿐이다. 정권의 핵심 기획자들은 초반의 높은 지지율을 저감시켜 관리할 필요도 있다.

우리의 경우 정당 간 정책 스펙트럼이 분화하지 않은 것도 정권 초반의 막연한 기대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정당 간에 이념적·정책적인 분화가 이루어졌으면, 어떤 정당이 집권했을 때 각 계층의 유권자가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명백해진다. 또 그것을 계산하고 표를 던지는 것이다. 다운스(A.Downs)는 이미 오래 전 선거를 ‘정치라는 시장에서, 유권자라는 소비자가, 정당이라는 공급자에게, 표라는 돈을 주고, 정책이라는 상품을 사는 과정’으로 설명한 바 있다. 보수당을 향해 표를 던진다는 것은 국가의 간섭을 줄이고, 세금을 덜 내며, 공공부문에서 받는 복지혜택을 줄여도 좋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미국의 정치곡선을 분석한 시겔먼(Sigelman)은 정권에 대한 지지율의 변화를 인간의 결혼생활에 비유한 바 있다. 그는 대통령이 취임하면 초반에는 밀월 기간(honeymoon period)을 즐기다가 서서히 절망 기간(disillusion period)을 맞고, 말기에 이르면 오히려 관용의 기간(forgiveness period)을 맞는다고 정리한 바 있다.



지지율 추락… ‘존경할 만한 대통령’ 언제 나오나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겔먼의 이야기가 한국에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등장한 각각의 정권을 관찰해 보면 정권 초기 현상과 정권 말기 현상이 너무도 비슷한 사이클을 보이는데, 시겔먼이 지적하는 관용의 기간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다. 대체로 정권 초기에는 개혁에 대한 구호가 난무하고 지지율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후반에 이르면 지지율은 처참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개헌론을 들먹거리는가 하면, 급기야 일정 시점에 가서는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러 나타난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5월2일 명지대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계기로 대국민 사과를 하였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말 IMF 위기, 김대중 대통령은 의약분업 실패를 계기로 올 3월1일 사과성 발언을 한 바 있다.

각 정권은 자신들이 가야 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앞선 정권을 극복하고 차별성을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존경할 만한’ 대통령 하나 가져보지 못한 국민이 되었다고 자탄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극도로 집권적인 권력구도하에서 모든 권한과 자원·지위·정보를 정권이 독점하는 일이 지속된다면, 한국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정권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란 결국 앞선 정권을 ‘극복’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간동아 291호 (p104~104)

< 이 종 수 / 연세대 교수·행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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