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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베를린市 ‘파산위기’

총부채 700억 마르크, 집권 기민黨 내각 실각 … 연방정부 재정지원 애타게 기다려

빚더미 베를린市 ‘파산위기’

빚더미 베를린市 ‘파산위기’
지난 6월16일 독일연방의 수도 베를린 시의회는 14년 동안 장기집권한 기민당의 시장 디프겐을 해임하고 시장관(세나토어)들을 전격 실각시켰다. 통독 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베를린시를 이끌어온 기민-사민당의 연합내각이 깨지고, 사민당이 다수당으로 나서며 녹색당과 소수 연정을 구성한 것.

기민당 내각의 실각 원인은 다름 아닌 베를린 시정부의 재정 파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베를린 기민당의 불법기부금 스캔들에서 시작한 은행 위기는 베를린시의 재정 파산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연정파기라는 파국적 결과를 잉태한 것. 정상대로라면 2004년에 치러야 할 시의회 선거를 올 가을로 앞당기는 등 이번 베를린 금융 스캔들은 여러 면에서 독일 전체에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 선출된 사민당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은 가을에 있을 새 선거 때까지 재정 파탄과 정치·금융 결탁의 부패로 병든 베를린시의 과도정부를 이끌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통독 이전 다른 도시 재정 운영의 모델 역할을 한 베를린시의 재정은 통독 이후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통독 이전 다른 주 평균 부채 5947마르크보다 오히려 낮은 4605마르크에 머물던 베를린시의 1인당 부채액이 2000년에는 1만9350마르크로 4배 이상이 늘어난 것. 통독과 함께 베를린시의 모든 공공·문화 시설이 2배로 늘어난 것에 반해, 이전까지 동·서독이 동·서 베를린에 해오던 대대적 재정 지원은 큰 규모로 삭감된 까닭이다. 즉, 지출은 큰데 수입이 줄어들다 보니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두고 재정 전문가들은 자체 생산력이나 산업구조가 취약한 베를린을 통합수도로 제정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통합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우선 모양가꾸기에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베를린시의 허약한 생산성은 1인당 총 생산액이 뮌헨의 11만7154마르크나 함부르크의 8만1266마르크보다 4만4492마르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반면 공공지출 부분은 두 도시보다 매우 높다.

빚더미 베를린市 ‘파산위기’
하지만 베를린 시민은 베를린시 재정 파산에 방아쇠를 당긴 것이 이러한 지출과 수입의 불균형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동안 수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축적되어 온 정치·금융권의 부패고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금융구조 자체가 와해된 것이 결정타였다. 베를린시가 56.6%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시 은행인 베를린 합자은행의 기부금 스캔들과 투자 실패는 베를린시 정부의 재정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지난 1994년 베를린의 3개 은행을 합병하면서 시 전체의 돈줄을 쥐고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베를린 합자은행은 지난 2월 그들이 합병한 베를린 휩 은행 총재이자, 시의회의 기민당 원내교섭 의장인 란도브스키의 정당기부금 불법 영수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도의 혼란 상황을 겪는다. 란도브스키는 전 베를린 시장 디프겐의 오른팔로서 시정부, 의회 그리고 베를린 합자은행을 연결하며 10년 이상 시의 재정관계를 담당하고 조정해 온 인물. 그런 그가 1995년 4만 마르크의 현금(기부금)을 받고 부동산회사 아우비스에게 용도를 밝히지 않은 6억 마르크의 신용대출을 허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올 초부터 베를린 합자은행의 비정상적인 대출 관례에 주목해 온 연방감독원은 그의 기부금 불법영수가 수많은 대형건설 프로젝트에 무분별한 대출을 남발하고, 거래 편의 봐주기에 나선 합자은행의 비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본격 조사를 개시했다.



연방감독원의 조사 결과 합자은행은 자매 건설회사인 IBG나 다른 건설회사들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면서 결정적 오류를 범한 것으로 드러났다. 베를린에 현재 건설된 130만 m2의 사무실 면적과 10만 호의 아파트가 아직도 비어 있을 정도로 형편없이 추락한 부동산 경기를 무시한 채 무분별한 대출에 나섬으로써 건설 투자가들에게 빌려준 대출금 거의 대부분을 회수하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합자은행의 이런 투자 실패의 책임을 베를린시가 물어야 한다는 데 있다. 감독원이 최근 베를린 합자은행의 재정 상황을 조사한 결과, 합자은행의 자기자본 최저한계 8%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최소 40억 마르크의 재정 수혈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베를린 합자은행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베를린시는 은행의 파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40억 마르크 이상을 빌려야만 했고, 이로써 올 한 해 베를린시의 부채액은 90억 마르크를 가볍게 돌파했다. 시의 총 부채액수가 시 1년 예산의 7~8%를 차지하는 700억 마르크를 훌쩍 넘어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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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대한 재정 위기 앞에서 베를린 정계를 전면 재편하는 것은 당연한 듯하다. 기민당의 란도브스키와 디프겐 전 시장의 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사민당은 기민당과의 결별을 전격 발표하고 시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기민당과 연정을 유지하다간 재정 파탄에 대한 책임 공방의 불똥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 것. 대신 지금껏 반국가적 성향 때문에 연정 기피대상이던 민사당과 전략적 동맹을 맺음으로써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민사당(PDS)은 구동독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신으로 구동독지역(새연방주) 외에서는 거의 지지자가 없으며, 공산주의적 강령과 호네커 정부(구동독)를 미화하는 발언 등으로 헌법보호청에게서 반국가적 성향으로 지목되어 감시를 받아온 단체. 하지만 이번 기민당 실각의 물밑작업을 진행해 온 사민당 원내 교섭단 의장 보베라이트(현 베를린 시장)는 시의회 전체 169석 중 기민당 75석, 사민당 42석, 녹색당 17석, 민사당 33석 및 무소속 2석이라는 구도 속에서 사민-녹색의 연합만으로는 기민당을 실각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민사당의 협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베를린 기민당은 사민당이 정권욕 때문에 베를린시를 “공산주의자들의 먹이”로 던졌다는 공격을 가하는 한편, 우익신문들을 통해 사민당의 “금기 깨기”라고 냉전시대의 분위기를 재연출하기도 했다. 반면 민사당은 이런 공격에 대해 “연정의 결렬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기민당이 자신의 실책을 빨갱이 적색논리로 무마하려는 의도”일 뿐 아니라 “가을에 있을 선거전에서 기민당이 ‘반(反)적-적’전략을 사용하겠다는 선전포고일 따름”이라고 비난했다.

사민당과 민사당의 이번 제휴는 새 연방주 내에서 구서독세력에 저항하는 지역당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 민사당이 야당의 위치를 벗어나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통일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독일 사회가 민사당을 정상적인 정당으로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민사당이 비현실적인 공산주의적 잔재를 빨리 털어버리도록 도와주고 정책 수행력을 국민 앞에서 검증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독일판 햇볕정책인 셈이다.

정치의 변화만으로 베를린시를 재정 파탄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동성애자인 사실을 서슴없이 밝히며 젊은 정치인의 패기를 드러낸 보베라이트 현 베를린 시장(47)도 수전노로 유명한 연방 재무장관 아이헬의 손가락만 애타게 쳐다보는 상태다. 연방 차원의 지원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 아이헬이 베를린을 위해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부분의 주 정부들은 베를린이 도움 받기 전에 먼저 절약안과 효율적 재정운영의 기초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1.07.05 291호 (p58~60)

  • < 강여구/ 하이델베르크 통신원 > kang@deb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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