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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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떡 집단’ 하와이대 출신 막강 파워

한국 동창회원 900여 명 정·재·학계 거미줄 포진 … 유대관계 강해도 “파벌은 No”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입력2005-02-04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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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떡 집단’ 하와이대 출신 막강 파워
    현직 장관(급) 3명, 현직 주미 대사 1명 배출’.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는 ‘마피아’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 학교 출신들이 전국의 각 대학에 포진해 있다. 도대체 어떤 학교 출신들이기에 ‘성공 가도’를 질주하는 것일까. 미국 하와이대 출신이 그 주인공들이다.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한국 동창회 회원은 현재 900여 명 정도. 현직 장관(급)으로는 김호진 노동부 장관, 정우택 해양수산부 장관, 김광웅 중앙인사위원장 등이며, 양성철 주미 대사 역시 동문. 전직 장관(급) 인사로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김모임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종률 전 정무장관, 정종욱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있다.

    동서문화센터 단기 코스에 참여했던 박준규 전 국회의장,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한빈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등도 원로 동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재계 인사로는 이종대 대우자동차 회장, 박웅서 전 고합 회장, 박재천 ㈜아이클러스터 대표 등이 있다.

    하와이대 출신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학계. 박찬석 경북대 총장을 비롯해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현 한나라당 의원), 김세열 전 한남대 총장,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 등이 모두 동문이다. 중앙대 문과대학장 최상진 교수는 “동창회원 가운데 90% 정도는 학계로 진출한 상태”라면서 “이 때문에 전국의 웬만한 대학교에서는 하와이대 출신들이 상당한 파워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현 동문회장은 올 4월 추대한 김호진 노동부 장관. 동문회는 김호진 회장 체제 출범 후인 지난 6월8일 아침 서울 팔레스 호텔에서 운영위원회(위원장 맹광호 가톨릭대 산업보건대학원장)를 열어 임원진·고문단 선임 및 사업 계획을 확정했다. 맹광호 운영위원장은 “올해중 3회의 조찬 포럼과 부부 동반 송년회를 개최하며 두 번에 걸쳐 소식지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 나라로 치면 제주도 정도에 해당하는 미국 하와이의 주립대학이 어떻게 이처럼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을까. 한마디로 하와이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는 동서문화센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서문화센터는 동·서양 간 이해 촉진과 기술 협력 및 교류를 주목적으로 1960년 미 의회가 설립한 기관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및 미국의 인구문제, 자원개발문제, 환경, 문화,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이 센터의 관심분야다.

    인하대 송위석 교수는 “동서문화센터 장학생들은 센터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석사과정은 반드시 하와이대에서 밟도록 조건을 붙여놓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하와이대 출신들이 각 분야에서 상당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하와이대는 미국의 주립대학 중 중간 정도 수준이지만 이 대학에 유학한 한국 학생들의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송교수는 이어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이들이 하와이대의 수준을 끌어올려 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찰떡 집단’ 하와이대 출신 막강 파워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동서문화센터의 장학생 선발에 해마다 쟁쟁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100 대 1을 넘는 경우가 많아 한때는 ‘유학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유학 자체를 꿈꾸기 어려운 상황에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도 지원한다고 하니 많은 희망자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동서문화센터가 정부 관료나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 젊은 학자들 위주로 장학생을 선발한 것도 ‘하와이대 파워’를 이룬 이유 가운데 하나. 한국경영자총협회 산하 노동경제연구원 양병무 부원장은 “80년대 이후에는 자비로 하와이대로 유학 가는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동서문화센터 장학금을 받고 하와이대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유학 기간에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었고, 유학 후에도 사회 적응이 빨라 미국의 다른 대학 출신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와이대학 동문들은 하와이대 출신들이 학문 연구 방법에서도 ‘한국적’ 접근을 한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하와이가 동양과 서양의 접점이라는 지역적 특수성도 작용했지만 박정희 정권 당시 하와이대에 설립한 한국학연구소에 풍부한 한국 관련자료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 동서문화센터는 또 현직에서 물러난 한국의 고위 관료들을 단기 코스로 초청, 이들이 과거 경험을 정리하도록 배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기 코스로 초청 받은 인사들 가운데 도중에 입각을 통보 받고 황급히 짐을 싸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80년 총리가 된 남덕우씨가 대표적인 경우. 또 지난해 8월7일 개각에서 입각한 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93년 공진청장 퇴임 후 1년 동안 동서문화센터에 머물며 ‘재기’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신 전 장관은 93년 당시 장관을 눈앞에 두고 불명예 중도하차하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하와이로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관료로서 자존심과 명예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반드시 재기하겠다”고 되뇌이곤 했다고 한다. 이런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일까. 그는 1년간 현지에서 모범적으로 강의를 듣는 한편 연구실을 빌려 ‘선진 산업국을 향한 한국경제의 선택과 도전’이라는 책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동문 사이의 유대관계가 어느 집단보다 강한 것은 하와이대 출신들의 자부심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정택 연구본부장은 “생활비까지 지원 받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좁은 하와이 땅에서 유학생들은 다른 유학생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면서 “그런 교분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폐쇄적인 집단의식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중앙대 최상진 학장은 “유학을 마친 후에는 과거의 직장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굳이 동문들이 끌어준다거나 할 필요가 없어 학연을 바탕으로 한 파벌 형성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각 분야에 퍼져 있는 동문들에게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

    무엇보다 이들은 미국 돈으로 공부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되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우리 사회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인하대학교 정치학과 홍득표 교수는 “동문들은 우리 나라가 어려운 시절에 장학금 혜택을 받고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현재는 뭔가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맹광호 운영위원장은 “올 하반기에 1만 달러를 모금, 하와이대 및 동서문화센터에 기부할 예정”이라면서 “대학측에는 ‘북한 학생들에게도 장학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 5000달러를 모아 기부하기도 했다.

    미국의 명문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유학을 마친 후 다시 하와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맹위원장은 동문들 사이에서 하와이대 관련 일이라면 무엇이든 앞장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학생활 당시 다양한 학문분야의 사람과 끊임없는 토론으로 학문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큰 행운이었다. 다시 유학 기회가 온다 해도 하와이대를 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맹위원장뿐만이 아니다. 하와이대 출신들의 모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그만큼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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