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9

2001.06.21

기업들 ‘짝사랑’에 롯데 몸살날 판

홈쇼핑·수산시장 등 인수설마다 거론 … “매각 대상 기업들이 가치 높이려 시장에 흘린 것”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5-02-04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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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 ‘짝사랑’에 롯데 몸살날 판
    기업은 무엇보다 소문에 민감한 집단이다. 아직도 구조조정과정에 놓여 있는 우리 대기업 현실에서 인수 합병 또는 사업부 매각 등을 둘러싼 소문은 대부분 추후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더 더욱 관심을 끈다. 이러한 면에서 최근 인수 합병 매각 등을 둘러싼 소문이 시장에 퍼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롯데에 대해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롯데를 둘러싸고 나도는 사업 확장설은 대북사업에서부터 홈쇼핑 등 유통사업·주류사업, 테마파크, 심지어 수산시장 인수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잇달아 불거지고 있다. 대북사업 승계설은 일단 그동안 금강산 관광사업을 진행해 온 현대가 육로관광 허용을 통한 활로 모색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다소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진념 경제부총리까지 나서 롯데를 직접 거명하면서 대북사업 컨소시엄 참여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는 점 때문에 롯데로서는 아직까지 부담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상황이다.

    부총리도 대북사업 관련 롯데 거명

    그러나 아직까지 ‘대북사업 불가’라는 롯데 쪽의 입장에 변화의 조짐은 전혀 없다. 롯데측 고위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께서 IMF 이후 ‘규모의 경제’시대가 가고 ‘질 위주의 경제’시대가 오고 있다고 선언한 이후 그룹 내에서 수익성 없는 사업은 벌이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롯데측은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 등 일련의 대북사업을 ‘정주영’이라는, 북한 출신의 탁월한 사업가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본다. 그에 비하면 롯데야 북한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신격호 회장의 고향은 경남 울산) 굳이 연고를 찾으려고 한다면 롯데제과의 쵸코파이 생산, 수출 등으로 맺어진 공산권 수출 노하우 정도인데, 이 사업을 전담하던 북방사업팀도 올해 초 공식적으로 해체한 상태라는 것. 따라서 롯데의 사업 확장을 둘러싼 재계의 관심은 대북사업보다는 유통산업분야로 옮겨지고 있다. 롯데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홈쇼핑 사업 진출이 무산되면서 홈쇼핑 진출에 대한 롯데의 욕심은 곧바로 LG홈쇼핑 인수설로 이어졌다. LG홈쇼핑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시를 중심으로 이런 소문이 급속하게 퍼지자 공식적으로 부인 공시를 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정작 홈쇼핑 분야 진출을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롯데측은 느긋한 분위기다.

    롯데의 LG홈쇼핑 인수설이 그럴듯하게 퍼진 데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IMT-2000 사업 진출을 노리는 LG 입장에서는 대규모의 현금 동원을 필요로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알짜배기 기업 중 하나를 매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당연히 계열사들 중에서 필요한 현금 규모에 비춰볼 때 덩치가 엇비슷하고 건실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라 시장에서 금방 인수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LG홈쇼핑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도 롯데와 LG홈쇼핑 모두 팔려는 생각이나 사려는 생각이 누구에게도 없던 상황. LG홈쇼핑 인수설은 LG가 IMT-2000 사업권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수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정보통신부가 LG의 동기방식을 추가 허용할 방침을 시사하고 LG가 동기식 컨소시엄 주주사 모집에 들어가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기업들 ‘짝사랑’에 롯데 몸살날 판
    유통업계에서는 홈쇼핑 시장에서 중장기적으로 롯데의 행보가 가장 큰 변수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다. TV 홈쇼핑 시장은 오는 2005년에 약 2조5000억 원 규모로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 등 유통사업분야의 주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듯 홈쇼핑 사업의 약진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유통왕국’을 꿈꾸는 롯데가 이번에 홈쇼핑 채널 사업권 확보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대로 주저앉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먼저 롯데 인수불가론. 이는 LG홈쇼핑 등 기존 업체를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견해다. 롯데가 4∼5위 업체를 인수해서야 모양이 맞지 않을 것이고, 채널45의 LG홈쇼핑이나 제일제당 계열의 CJ39쇼핑을 인수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 역시 현실적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것. LG홈쇼핑 관계자는 “업계 1위인 LG는 물론 제일제당 역시 삼구통상에서 CJ39쇼핑의 채널권을 워낙 비싸게 사들였기 때문에 지금 팔아버릴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홈쇼핑업계의 과당 경쟁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3개 채널의 신규 허가로 인해 5개 사업자가 한정된 시청자층을 놓고 과열 경쟁을 벌이면 분명히 시장에서 낙오하는 업체가 생길 것이고 이때 롯데는 큰 부담없이 3위 정도의 업체를 충분히 인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롯데백화점측 관계자 역시 “이러한 상황이 오면 다른 업체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최근 롯데를 둘러싼 신규사업 진출 소문은 남북경협사업에서처럼 삼성과 패키지로 언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을 롯데나 삼성이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현재 한국민속촌은 (주)조원관광진흥이라는 사기업에서 운영중이다. 개발과 보존에 따른 각종 규제 등으로 인해 크게 이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운영업체에서는 매각의 ‘매’자도 꺼내본 적이 없는 형편임에도 시장에서는 매각설과 동시에 롯데 또는 삼성 인수설이 나돌았다. 물론 롯데는 롯데대로 롯데월드를, 삼성은 삼성대로 삼성에버랜드라는 대형 놀이공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다 두 회사 모두 넉넉한 자금 동원력을 가졌기 때문에 불거져 나온 소문. 대북사업 컨소시엄 참여자로 두 기업이 동시에 거론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때는 동아건설의 법정관리로 인해 매각대상으로 나온 대한통운을 롯데나 삼성이 인수할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있게 회자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농수산물유통공사 자회사인 한국냉장에서 운영하는 노량진수산시장 매각에 롯데가 참여해 인수할 것이라는 설도 불거졌다. 이 정도면 가히 인수 러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롯데측 관계자도 잇단 이런 소문들에 대해 “들어보면 다 그럴듯한 배경을 갖고 떠도는 말들이더라”며 헛웃음을 쳤다. 사실무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절묘한 시장 분석을 토대로 엮어놓은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인수설의 대부분은 피인수기업측에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시장에 흘린 것”이라 분석했다. 매각 대상기업들이 롯데를 향해 일종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것. 실제 외환카드 인수설, 진로소주 인수설, 메트로 미도파 인수설 등은 사후추적한 결과 증시 작전세력이 개입했거나 중간에 브로커가 개입해 인수 대상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꾸며낸 말일 뿐이었다는 것이 롯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난무하는 인수설 속에서도 정작 롯데가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나서는 모습은 보기 힘든 형편이다. 오히려 이러한 소문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롯데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불필요해서라기보다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롯데 계열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그만큼 롯데의 기업가치가 높아졌다는 말 아니겠느냐”는 말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롯데의 신사업 진출설이 어디까지 사실이든 간에 롯데가 기존 사업군의 외연 확장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 예가 그룹 차원에서 검토중인 경제연구소 신설 추진작업. 신격호 회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삼성이나 LG 등 다른 그룹에서 운영하는 그룹 산하 경제연구소의 운영 실태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롯데 관계자들은 삼성 LG 등 다른 재벌기업에서 운영하는 경제연구소에 대한 기초 조사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별도의 신사업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다른 그룹에서 신사업 추진 업무를 맡았던 실무 인력을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창업주의 2선 후퇴와 동시에 내분에 휩싸인 현대나, 2세 승계과정에서 홍역을 치르는 삼성의 고전을 느긋하게 지켜보면서 ‘가장 비정치적인 기업임’을 자부한 롯데가 최근 들어 행복한 고민에 빠진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게다가 업계의 잇단 러브콜이 안 그래도 행복에 빠진 롯데그룹에 달콤한 밀회에의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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