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5

2001.05.24

사진도 보고 글도 읽고 ‘촌철살인’ 위력 실감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1-28 15: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진도 보고 글도 읽고 ‘촌철살인’ 위력 실감
    오랑우탄 한 마리가 다리를 꼬고 긴 팔로 턱을 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스듬히 한 일(一)자로 꽉 다문 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오랑우탄 대신 작가 브레들리 트레버 그리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Oh what to do, what to dooo?) 그리브의 사진 에세이 ‘더 블루 데이 북:The Blue Day Book’(바다출판사 펴냄)은 인간의 표정을 능가하는 다양한 동물사진과 작가가 달아놓은 한 줄짜리 글로 이루어진 독특한 책이다. 촌철살인의 글이 지닌 위력은 사진만 보았을 때와, 사진과 글을 함께 보았을 때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부릅뜬 눈으로 렌즈를 올려다보는 강아지 사진만 보았을 때의 밋밋한 감정이 “모두가 나를 미치게 합니다”라는 한 줄에 무릎치는 공감으로 바뀐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우울한 날,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읽는 책’인지는 일단 보면 안다.

    김정동 교수(목원대·건축도시공학부)의 ‘문학 속 우리 도시기행’(옛오늘 펴냄)은 건축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소설 24편(광복 전 17편, 광복 후 7편)의 무대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예를 들어 춘원 이광수가 도쿄 유학중 쓴 ‘무정’은 1916년 이전 서울 북촌을 주무대로 한다. 소설에는 주인공 이형식이 가정교사가 되기 위해 6월 여름 오후 2시 안동(지금의 안국동) 파출소 앞 중국 요릿집 부근을 지나 대부호인 김광현 장로를 찾아가는 장면, 종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철물교를 지나 배오개를 지나 동대문, 청량리, 홍릉 솔숲에 이르는 거리 등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김교수는 소설 분석과 함께 서울 북촌 양반가의 사진, 전차가 달리는 동대문 안쪽 풍경, 한-미 전기회사와 YMCA가 나란히 보이는 종로 거리 등의 사진을 실어 문학과 건축의 만남을 시도했다. 낡은 사진 한 장에 담긴 풍부한 문학적 영감과 역사적 의미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책이다.



    확대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