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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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영어 첫째 조건은 ‘재미’

  • 정철/ 정철언어연구소 소장 www.jungchul.com

    입력2005-01-27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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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영어교육에 관한 세 번째 얘기다.

    읽고 쓰기도 함께 가르쳐라.

    “아이들에게는 듣기, 말하기만 가르쳐야지 읽기, 쓰기를 가르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인즉 “갓난아기가 말하기부터 배운 뒤에 글을 배우지 않느냐”고 한다. 또 “유럽이나 남미 등지에서도 영어 발음을 완전히 익힌 다음에 비로소 읽기, 쓰기를 가르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네 고유한 문자가 없이 영어의 알파벳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자는 같지만 발음이 아주 다른 게 많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유명한 축구선수 ‘호나우두’의 스펠링은 ‘Ronaldo’이다. 이런 경우, 처음부터 글자를 보며 연습하면 영어 발음이 아닌 모국어 발음으로 하기 쉽다. 그래서 영어 발음이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글자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경우가 다르다. 알파벳과 완전히 다른 우리 고유의 한글을 쓰기 때문에, 모국어 발음 간섭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글자 없이 소리만 가지고 할 경우에는, 잊어버릴까 봐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어서 연습하기 때문에 우리말 식의 발음을 할 위험이 더 크다. 실제로 한 초등학생이, 영어로 인사하는 그림 옆에 “화차네” (What’s your name?) “마요네즈” (My name is) 라고 적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하려면 차라리 안하는 편이 낫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몰두할 수 있도록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청소년이나 어른과 달리, 재미없는 것을 참으면서 공부하지 못한다.



    제대로 훈련한 교사가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 영어에서 ‘누가 가르치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모처럼 시작한 영어에 흥미를 잃을 수 있고, 영어에 대한 그릇된 인상만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실패 사례는 수없이 많다. 1997년에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시작하면서,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수많은 현지인들을 데려다 영어를 가르치도록 했으나 거의 다 실패하고 만 것이 그 중의 한 예다.

    영어는 잘 할지 몰라도 주의 집중시간이 짧은 아이들을 계속 흥미있게 끌어갈 수 있는 교수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칠 줄 모르는 미국인 교사보다는 오히려 교수 기술을 제대로 갖춘 한국인 교사가, 미국인의 발음을 대신할 수 있는 비디오나 시디롬 등의 보조 기재를 이용해 가르치는 편이 훨씬 낫다. 또한 엄마가 어설프게 가르치는 것은 차라리 안하는 편이 낫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영어 공포증이나 나쁜 습관들만 전수해 주기가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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