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4

2001.05.17

팔손이나무 반겨주는 ‘섬의 낙원’

  • < 여행칼럼니스트 travelmaker@hanmail.net >

    입력2005-01-27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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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손이나무 반겨주는 ‘섬의 낙원’
    다사로운 봄날의 햇살 아래 비진도(比珍島)로 향하는 뱃길은 나그네의 여심(旅心)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한려수도의 서정적인 풍광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통영 앞바다의 어느 섬을 찾아가는 여행에서는 목적지보다도 그곳까지의 뱃길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 특히 비진도행 뱃길에서는 잔잔한 바다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섬들의 다채로운 풍광이 유달리 인상 깊다.

    한산도 용초도 추봉도 오곡도 충복도…. 옹색한 선창(船窓)을 통해 이름도 형용도 저마다 다른 섬들이 잇달아 나타났다가 총총히 뒷걸음질치는 광경을 지켜보노라면 ‘섬의 낙원’을 항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많은 섬들을 끌어안은 한려수도는 어찌나 맑고 푸른지, 새하얀 무명옷을 적시면 금세 파란 얼룩이 남을 것 같은 쪽빛이다. 이처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숱한 섬들이 올망졸망한 한려해상국립공원 통영지구의 맨 남쪽 바다에 비진도가 있다.

    비진도는 면적 4.1km2에 해안선의 길이가 9km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원래 안섬과 바깥섬으로 나눠졌다는데, 오랫동안 파도로 인해 이루어진 길이 550m의 모래톱이 천연 연도교(連島橋) 구실을 함으로써 이젠 하나로 이어졌다. 두 섬은 생김새며 크기가 서로 엇비슷하나, 주민들은 북쪽 안섬의 내항마을과 외항마을에 몰려 산다.

    남쪽의 바깥섬에도 한때 예닐곱 가구의 주민이 살던 ‘수포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들 마을을 떠난 지금은 자그마한 암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외항마을에서 그곳으로 넘어가는 산길은 섣불리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형체조차 희미해졌다. 그런 연유로 말미암아 비진도 내에서의 여정(旅程)은 내항마을과 외항마을이 있는 안섬에만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섬의 두 마을만이라도 온전히 둘러보기로 작정하고 내항마을에 발을 내디뎠다.

    내항마을은 50여 가구에 150여 명의 주민들이 사는 전형적인 갯마을이다. 외딴섬의 마을치고는 아직도 제법 큰 축에 속하는 셈이다. 게다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된 여느 낙도들과는 달리, 그리 쓸쓸해 보이진 않는다. 선착장 주변의 바닷가에는 소꿉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도 보이고, 마을 뒤편의 언덕배기에는 여전히 태극기가 펄럭이는 비진 초등학교도 자리잡고 있는 덕택이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학생 수는 해마다 크게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는 세 명의 선생님이 여덟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폐교될지도 모를 운명이다.



    팔손이나무 반겨주는 ‘섬의 낙원’
    내항마을은 누구나 한번쯤은 머릿속에 그려봄직한 갯마을의 풍정(風情)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가지런한 돌담길이 거미줄처럼 뻗은 마을 안쪽의 아늑한 정취도 인상적이거니와 마을 주변의 풍광 또한 무척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마을 앞에 펼쳐진 몽돌 해변의 남쪽 끄트머리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닻을 내린 포구가 있다. 그리고 포구 뒤편으로는 아름드리 상록수와 키 작은 팔손이나무가 빼곡이 들어찬 어부림(魚付林)이 자리잡고 있다. 뙤약볕을 피해 잠시 쉬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이고,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질 성싶은 숲이다. 더군다나 이 숲의 팔손이나무군락지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보호될 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러나 내항마을에서 무엇보다도 마음을 끄는 것은 외항마을로 넘어가는 언덕길에서 바라본 바다의 풍광이다. 새털처럼 많은 섬들에 둘러싸인 바다와 그 바다 위에 붙박인 듯 떠 있는 고깃배들의 어울림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내항마을에서 산허리의 오솔길을 타고 남쪽으로 1.5km쯤 걸어가면 내항마을이다. 울긋불긋한 민가, 시원스런 솔숲, 깨끗한 백사장, 푸르디 푸른 바다의 조화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또한 시야가 훤히 트인 날이면 바다 저편의 소매물도 등대섬에 우뚝 솟은 등대가 아스라이 보이기도 한다.

    외항마을의 선착장과 마을을 잇는 모래톱 위에는 좁은 시멘트 길이 깔려 있는데, 길 양옆에 길게 뻗은 두 해변의 풍광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거제도의 남부 해안과 마주보는 동쪽 해변에는 굵은 모래와 동글동글한 몽돌이 깔려 있다. 반면에 충복도 오곡도 등의 섬을 바라보는 서쪽에는 고운 모래밭이 1km쯤 뻗어 있다. 이 모래톱 위에 서면 아침에는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고, 해거름녘에는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

    경남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비진도해수욕장은 모래톱의 서쪽 해변을 이룬다. 완만한 경사에 수온이 적당할 뿐만 아니라 수면도 호수처럼 잔잔하다. 또한 몇 길의 깊이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물빛이 깨끗해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그래서 여름철만 되면 수많은 피서 인파가 몰려든다. 그러나 동쪽의 몽돌 해변은 경사가 급하고 늘 파도가 거세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파도와 몽돌이 서로 덮치고 쓸리면서 쏟아내는 해조음만큼은 어느 바닷가의 그것보다도 듣기 좋다. 게다가 쉼없이 들려오는 해조음에 귀 기울이노라면 까닭 모를 객창감(客窓感)이 파도처럼 밀려들기도 한다. 때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밤이라면 금방이라도 우수수 쏟아질 듯한 별빛과 은하수가 해조음 쏟아지는 밤바다의 정취를 더욱 깊고 그윽하게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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