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4

2001.05.17

北 황태자 김정남 ‘의혹의 행보’

왜 가짜 여권 →일본 → 중국 추방 … 정치적 의도? 우발적 사건? 궁금증 ‘증폭’

  • < 김 당 기자 dangk@donga.com >

    입력2005-01-26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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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김정남 추방사건’은 5년 전‘성혜림 망명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96년 2월13일 당시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조선일보’는‘세계적 대특종’이라며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이 모스크바를 탈출해 서방으로 망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5개월 뒤 이 보도는 ‘세계적 오보’임이 드러났다. 당시 국내 언론은 성혜림을 김정일의 전 처 또는 전 동거녀라고 표기했다.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 이한영이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한영의 주장은 상당부분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30)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불법 입국하려다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체포된 것은 지난 5월1일 오후 3시30분경.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일본 언론이 처음 보도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5월3일 저녁이었다. 일본 정부는 30대 여성 두 명과 네 살짜리 사내아이를 동반한 이 남자를 체포한 지 사흘 만인 5월4일 중국으로 추방했다. 이로써 ‘김정남 추방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상 여러 가지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첫번째 의문은 이 30대 남자가 ‘정말’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냐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김정남이라고 밝혔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 이 남자의 신병을 인수하는 데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중국 당국의 태도, 전세기를 동원한 북한의 대응방식 등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 볼 때 이 남자가 김정일의 아들임이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 남자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인지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많은 탈북-망명자들이 김정일의 사생활과 여자관계에 대해 증언했지만 입증된 것은 거의 없다.

    북한 전문가들이 검증한 바에 따르면, 그래도 김정일의 사생활과 가족들의 신상에 접근한 인물(기록)은 신경완과 성혜랑, 그리고 이한영 등 세 사람 정도고, 이들 모두 다 책을 냈다.

    이 가운데 북한 전문가들이 가치 있는 북한 연구자료로 꼽는 것은 성씨의 자서전(‘등나무집’)과 신경완씨의 대담기록 ‘곁에서 본 김정일’이다. 신씨는 70년대 10년간 노동당 선전선동부와 대남사업부에서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김정일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온 인물이다. 신경완씨는 대담기록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사생활을 안다는 것이 북한에서 얼마나 위험스런 일인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1978년 대남공작원 출신으로 영웅 칭호까지 받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탄광으로 쫓겨가는 일이 일어났다. 이유는 병원 의사인 그의 처가 발설해서는 안 되는 ‘극비사항’을 남편과 주변 사람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친척 중 한 사람(현재 노동당 중앙위원)의 부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 여자가 병원 의사에게 김일성과 김성애의 갈등관계를 비롯해 김일성의 가족과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듣고 병원 의사가 주변의 친척에 전달했다. 국가안전보위부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곁에서 본 김정일’).

    이런 사실은 다른 탈북-망명자들에게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8년 러시아에서 망명한 C씨는 “북한에서 김일성 가계에 대한 언급은 아무도 못한다. 금기시하는 성역이다. 그런 법 조항은 없지만 불문율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주치의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씨는 “그의 행동거지로 보건대 김정일의 아들 정남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의사 출신인 C씨는 “김정남을 본 적은 없지만 스승인 김일성의 주치의(Y씨) 선생에게 김정남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의문은 그가 가짜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입국한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망명설에서부터 후계자 수업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시각으로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추방사건을 보는 탈북-망명자들의 시각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C씨가 러시아에 있을 때 김정일의 측근 인사인 국가보위부 간부 O씨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김정남은 똑똑하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C씨는 “전부터 (김씨가) 비밀 해외여행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어차피 미래의 북한을 통치할 지도자라면 해외 시찰을 통해 견문을 넓히는 것이 인민을 위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C씨는 또 김씨가 컴퓨터위원회를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해 컴퓨터 기술 수집과 관련해 일본을 방문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했다. C씨는 김씨가 일본 도시바 미쓰비시 등에서 컴퓨터 및 정보과학 기술을 도입하는 일을 맡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가 정보과학 분야를 맡으면 아버지보다 더 잘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 출신의 또 다른 탈북자 C씨는 이와 다른 시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위원회라는 이름은 북에 있을 때 들어보지 못했다. (김씨가) 위원장이라 하더라도 고문이나 명예직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이 컴퓨터, IT 산업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당 자금으로 일본에서 컴퓨터를 들여오는 일을 맡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후계자 수업을 한다면 그보다는 국가보위부나 보위사령부 일에 관여할 것이다. 김정일이 후계자 수업을 받았을 때처럼 김정남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추방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온 홍콩의 시사 월간지 광각경(廣角鏡) 최근호(4∼5월호)에 실린 ‘김정일과 그의 맏아들 김정남’에 관한 기사다. 이 잡지에 따르면, 모스크바와 스위스에 유학한 김정남은 컴퓨터에 정통하고, 일어 학습을 위해 일본에도 다녀오는 등 서방세계를 왕래하였으며, 현재 군부 내 비밀경찰부대인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요직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또 이 월간지는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 및 베이징을 방문할 때 김정남이 비밀 수행하는 등 장남으로서의 존재가 점차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C씨(전 북한군 장교)는 “김정남은 비밀리에 후계자 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공항에서 (김씨가) 보도진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면 여유작작하지 않느냐. 김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선진국을 둘러보는 것이 후계자 수업이다. 그러나 후계자 수업을 한다 해도 3대를 잇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용인할지 회의적이다”고 밝혔다. 또 다른 C씨(의사 출신)는 김정남의 존재와 관련해 대안 부재론을 폈다.

    “김정남은 틀림없는 후계자다. 그 외에는 (정권을) 맡을 사람이 없다. 1980년대 ‘곁가지론’에서 김정일이 ‘연개소문을 잊었는가’라고 한 뜻에는 장자론(長子論)이 담겨 있다. 어디서 낳았든 장자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일본 당국의 신속한 신병처리가 북-일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분석과 달리 C씨는 일본의 대처방식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이미 세 번씩이나 일본에 다녀간 것은 그가 일본에 호감을 가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그가 입국할 때 체포한 것은 경솔한 행동이다. 차라리 출국할 때 잡아 추방했더라면 북한이 고마워하고 일본도 생색을 냈을 것이다.” 후계자의 7일간의 비밀스런 해외 여행을 망친 일본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곱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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