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박노항과 '천적' 김대업

병무비리 커넥션 꿰뚫고 있는 ‘족집게’김대업 … 박노항 검거에 앞서 사기혐의로 구속

  •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

    입력2005-01-24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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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항과 '천적' 김대업
    우연치곤 기막힌 우연이다. 병무비리의 ‘대부’로 통하는 박노항 원사 검거에 앞서 병무비리 수사의 ‘1등 공신’으로 불리던 김대업씨(39)가 구속된 사실이 때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4월27일 오전 서울지방법원 522호실. 사기죄로 구속된 김대업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피해자 조아무개씨(여·59)에게서 모두 11차례에 걸쳐 3억770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김씨는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돈은 빌린 것이며 속일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 항변 요지. 액수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자 포함해 모두 1억5000만원이라는 것.

    겉보기엔 사기 혐의를 받는 피의자에 대한 평범한 재판이다. 그러나 지난 2년여 동안 진행한 병무비리수사의 내막을 아는 사람에게는 예사롭게 넘길 재판이 아니다. 1998년 7월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병무비리 수사에 참여한 김씨가 군검찰의 비밀정보원으로 활약하며 상당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의정하사관 출신인 그는 검찰관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의무행정과 병무행정에 밝을 뿐만 아니라 병무비리 전력이 있어 청탁자(부모)-알선자(브로커)-해결사(군의관)로 엮인 병무비리 커넥션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또 병무비리 수사를 둘러싼 군 내의 갈등과 불화의 한가운데 서 있던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 99년 1월 발족한 제1차 군-검합동수사본부에 참여한 서울지검 특수3부팀은 전과자인 그의 수사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겨 군검찰과 갈등을 빚었다. 군검찰 수사팀은 그를 활용하는 문제를 두고 내분에 빠졌다. 군검찰과 기무사의 충돌 배경에도 그가 있었다. 병무비리 수사의 칼끝이 기무사에까지 미치려 하자 기무사는 전과자인 김씨를 앞세운 군검찰의 수사방식을 문제 삼으며 반격에 나섰다.

    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김씨는 한때 수사팀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하지만 군검찰은 ‘병무비리 족집게’로 통하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반부패국민연대 기자회견을 계기로 하여 구성한 제2차 군-검합동수사본부 수사팀에 그를 합류시켰다.



    그런 그를 박원사 검거로 병무비리 수사가 절정에 이를 순간 수사팀에서 다시 배제할 수밖에 없는 묘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군검찰 주변에서는 “박노항의 비리를 속속들이 파헤칠 수 있는 사람은 김대업뿐”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병무비리 수사과정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노항이 잡힌 시점에 김대업을 구속한 것은 수사팀에 큰 손실”이라고 우려했다. 천적이라 할 만한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잇달아 구속된 데는 어떤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지난 4월 초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김씨는 박씨 수사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억울하다”며 음모론도 제기했다. 자신의 ‘박노항 수사’ 참여를 두려워하거나 꺼림칙하게 여기는 특정세력의 공작이라는 주장이다.

    범죄혐의(상자 기사 참조)를 별개로 본다면, 그의 구속과정에는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박노항-김대업의 악연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말하자면 지난 2년여 동안 상영한 병무비리 수사라는 영화의 공동 주연이다. 박노항 도주`-`김대업 출현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김대업 구속`-`박노항 출현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한 사람은 비리의 주범으로, 한 사람은 수사의 주역으로 각각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었다.

    박노항과 '천적' 김대업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박씨의 장기도피가 김씨의 수사참여 시점과 맞물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병무비리 전과자인 김씨는 일찍이 박씨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병무비리수사가 한창이던 99년 8월, 박씨와의 친분 탓에 기무사에 구속된 의정장교 출신 백아무개씨도 김씨와 잘 아는 사이였다. 김씨가 자민련 고위당직자 이아무개씨 아들의 병역면제를 백씨에게 부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씨에게 김씨는 여간 껄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지난 98년 5월 병무비리 수사의 촉발제가 된 ‘원준위 사건’ 직후 달아난 박씨는 도피 초기 군검찰에 몇 차례 자수 의사를 밝히며 ‘타협’을 모색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해 7월 김씨가 수사팀에 합류한 이후 박씨의 자수설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정황은 김씨 구속과 박씨 검거가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것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추측을 낳는다.

    김씨를 조사한 서초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체포 직후 그는 “박노항 추적을 마무리하는 시점인데…”라며 무척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체포되기 얼마 전 그를 만난 언론계의 한 인사는 “김씨에게서 ‘박노항이 곧 잡힌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한 달도 안 되어 박노항이 잡히는 것을 보고 김씨가 정확한 정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구속시점 못지않게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은 체포 경위. 피해자 조씨가 김씨를 사기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한 시점은 지난해 12월 초. 사건을 맡은 서초서 조사과 용형문 경사는 3월 초 김씨를 지명수배했다. 용경사는 이에 대해 “김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대구)로 출두 요구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는데다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긴급체포된 것은 지난 3월30일. 엉뚱하게도 마포경찰서 관 내에서 순찰경찰관에게 잡혔다. 동교파출소 엄요섭 경장은 이날 오후 5시께 여느 때처럼 관 내를 순찰했는데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나 말을 붙였다. 그는 근처 PC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안에 지금 지명수배자가 있으니 빨리 가서 체포하라”고 했다. 신고자는 수배자의 신상, 곧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고 ‘친절하게도’ 사진까지 건넸다. 컴퓨터 조회 결과 신고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진 덕분에 엄경장은 PC방에서 손쉽게 김씨를 체포할 수 있었다. 엄경장에 따르면 체포 당시 김씨는 수배는 물론 고소당한 사실도 몰랐다.

    신고자는 자신의 인적사항을 알리지 않은 채 곧바로 사라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씨 체포 직후 동교파출소에 이를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온 사실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용인경찰서’라고만 할 뿐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김씨 체포에 관심을 나타내며 김씨의 주요 전과사실을 일러줬다.

    박노항과 '천적' 김대업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김대업은 과거 시장(모 광역시)을 지낸 분의 명예를 훼손해 고소당한 사실이 있다”고 전화를 건 사람이 언급한 점이다. ‘시장을 지낸 분’은 김씨와 오랜 악연이 있는 자민련 고위당직자 이아무개씨, 바로 그 사람이다. 김씨는 과거 이씨 아들의 병역면제 청탁을 알선한 적이 있는데, 그 후 이씨 딸과의 관계가 문제되어 협박죄로 구속, 1년을 복역했다.

    국방부 검찰부는 김씨의 자발적인 수사 협조에 대한 대가로 그가 저지른 병무비리에 대한 면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뒷날 군검찰이 기무사와 충돌할 때 기무사는 김씨의 전과를 반격수단으로 이용했다. 언론에 김씨의 전과사실을 적극 알린 기무사는 김씨가 관련한 자민련 고위당직자 이씨 아들의 병무비리를 독자적으로 추적했다. 기무-헌병 관련 병무비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팀이 만들어진 직후인 지난 98년 8월, 당시 기무사 참모장 조창현 소장(2000년 1월 전역)은 청와대 박주선 법무비서관에게 김씨의 비위사실을 보고하고 구속을 건의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김씨는 참여연대에 병무비리수사의 축소 및 외압 의혹을 제보하는 한편, ‘언론플레이’로 대응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육군 3군사령부 법무참모 고석 대령이 김씨와 맺은 악연도 지독한 것이다. 지난 99년 병무비리 수사 당시 국방부 검찰부장이던 고대령(당시 중령)은 수사 주도권을 놓고 수석검찰관 이명현 소령과 갈등을 빚었는데, 그 갈등을 증폭한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이소령과 김씨는 고석 검찰부장이 기무요원에 대한 병무비리수사를 방해한다고 여긴 반면, 고부장은 전과자인 김씨가 수사관 행세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고부장 탓에 김씨는 한때 수사팀에서 밀려났다. 한편 고부장은 99년 11월 김씨의 제보를 받은 참여연대에 의해 업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고발당했다.

    김씨를 신고한 사람은 오랫동안 그를 추적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김씨를 체포한 엄경장도 이에 동의한다. 그의 구속을 두고 ‘보복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연 누가 김씨를 넘긴 것일까. 신고인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그의 구속배경에 대한 의문이 밝혀질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김씨의 ‘능력’을 인정했던 국방부 검찰단장 서영득 대령은 김씨 구속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서초서 용경사에 따르면 피해자 조씨는 김씨를 체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잡았느냐”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대질신문에서 김씨는 조씨에게 가져간 돈의 사용처에 대해 “정보 활동비와 아내와의 이혼 소송비로 썼다”고 말했다. 돈을 되찾는 것이 목적인 조씨는 김씨의 고향(대구) 후배가 보증을 서자 합의를 받아들였다. 합의 직후 김씨는 구속적부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판사는 “전과가 있는데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구속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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