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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덫에 걸린 공적자금

쓸 때는 ‘펑펑’ 회수 대책은 ‘구멍’

예보, 자산관리공사 전문성 부족 공적자금 회수 미흡 … 민간 부문 활성화 회수율 높이는 지혜 모아야

쓸 때는 ‘펑펑’ 회수 대책은 ‘구멍’

쓸 때는 ‘펑펑’ 회수 대책은 ‘구멍’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을 줄 알아.”

작년 4월 어느날 서울 강남의 퇴출 종금사 파산재단에 찾아온 김모씨는 대뜸 직원들을 몰아세웠다. 한 직원이 나서 “어떻게 오셨느냐”고 정중히 묻자 김씨는 자신의 명함을 그 직원 앞에 흔들며 “이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며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씨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었으니 위세를 부릴 만도 했다. 직원들은 한동안 그의 기세등등한 태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날 재단 직원들이 갑작스럽게 ‘봉변’을 당한 것은 이 재단이 충북 지역에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하려 했기 때문. 이 재단은 1999년 초 이 부동산을 김씨에게 26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김씨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자 계약을 해지했다(김씨는 이에 대해 즉각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그 후 재단이 김씨보다 더 비싼 37억원을 제시한 또 다른 매수 희망자 이모씨에게 이 부동산을 매각하려 하자 이를 안 김씨가 재단에 찾아와 ‘소동’을 부린 것.

김씨는 이에 앞서 이 재단 관계자 주변 인사를 동원, 온갖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원칙대로 밀고 나가자 급기야 이런 행패를 부린 것. 이 관계자는 “이 부동산은 좋은 곳에 위치한데다 외환위기 이후 움츠러든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자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해 욕심을 부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단의 계약 해지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금보험공사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파산재단의 자산 매각에 대한 동의권을 갖고 있는 예보가 이 재단과 이씨의 계약에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 김씨의 가처분신청으로 법적 분쟁이 생긴데다 공시지가보다 저렴하게 처분하는 것이어서 적절치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새로운 매수 희망자 이씨가 분쟁부분에 대해서는 양해한데다 예보가 당초 김씨와의 계약에 동의한 점을 감안하면 김씨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이씨와의 계약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재단 관계자는 예보에 강력히 항의, 결국 동의서를 받긴 했지만 이미 그때는 이씨가 다른 매물을 찾은 후였고, 이 재단은 지금까지 이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또 다른 퇴출 종금사 파산재단은 예보의 ‘보수적인’ 자세 때문에 골프 회원권 매각 시점을 놓친 경우. 이 재단은 작년 6월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골프회원권 법인 1계좌를 9억7500만원에 H사에 매각하기로 확정하고 예보에 매각 동의를 요청했다. 당초 H사가 제시한 9억5000만원보다 높은 가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동의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틀 후에 나온 예보의 반응은 “최대한 고가에 매각할 수 있도록 골프회원권 시세의 흐름을 파악해 여러 회원권 거래소 및 H사와 재협의한 후 매각 금액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건부동의 의견이었다.

이 재단은 예보의 권고대로 H사와 재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매각 실패였다. H사가 재협상 도중 다른 급매물을 매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재단이 당시 여러 회원권 거래소에 매각을 의뢰해 놓은 상태에서 어렵게 물색한 매수자에 대해 예보가 적정가격 여부를 또다시 확인하도록 함으로써 결국 매도 시점만 놓친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 재단 관계자는 “결국 골프 회원권을 넘겨받은 예보가 나중에 매도한 가격은 8억원선이라고 들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 지역의 또 다른 퇴출 종금사 파산재단 역시 예보 때문에 부실채권 일부를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 재단은 J화학이 제공하는 경남 진해시 공장용지에 대해 4, 5, 6순위의 근저당권을 순차로 보유하였는데, 99년 8월 J화학 인수를 희망하는 미국 S사에서 총 채권 잔액 306억8200만원의 일부를 변제하는 조건으로 근저당권 해지를 요청해 왔다. 이 재단은 변제금액이 너무 적다고 판단, 협상 끝에 채권 잔액의 15%인 46억원을 변제하면 근저당권을 해지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예보에 동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예보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 때문에 이 재단은 306억8200만원어치의 부실채권 중 일부나마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당시 이 재단은 이 토지에 대해 선순위 채권자인 N종금이 99년 5월 임의경매를 신청한 상태여서 S사가 제시한 변제금액과 경매 배당금을 비교한 결과 S사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올 3월7일 4회 입찰(법원 사정가 339억9400만원)도 결국 낙찰되면서 이 재단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4회 입찰에서 법원 사정가대로 낙찰되었다고 해도 선순위 채권자 N종금 배당액 310억원과, 이보다 더 선순위인 임금채권 24억원을 제외하면 이 재단이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은 46억원보다 훨씬 적기 때문.

퇴출 금융기관의 파산재단이 관리하는 자산은 결국 모두 처분한 후 채권자에게 배당한다(퇴출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예보도 형식상 이 퇴출 금융기관 파산재단의 채권자가 된다). 따라서 퇴출 금융기관에 투입한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파산재단이 남아 있는 자산을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제 값을 받고 처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앞의 몇 가지 사례는 예보가 오히려 공적자금 회수 작업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쓸 때는 ‘펑펑’ 회수 대책은 ‘구멍’
이는 또 그동안 퇴출 금융기관 파산재단 관재인을 맡고 있는 변호사들이 파산 절차를 신속히 밟지 않아 공적자금 회수가 늦어지고 있다는 예보의 비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예보는 그동안 법인인 예보가 파산관재인을 맡아야 공적자금 회수작업을 조기에 마무리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작년 12월 제정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도 예보의 이런 주장을 반영하였고, 헌법재판소도 올 3월 중순 이 법이 합헌이라고 판결, 예보의 권한을 넓혀주었다.

예보는 헌재 판결 이후 총 232개 파산재단 중 예보 직원이 이미 관재인으로 선임된 48개 재단을 제외한 184개 재단에 대해 예보 관재인 추가선임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3월22일 현재 법원은 28개 재단에 예보 법인, 9개 재단에 예보 직원 등 총 37개 재단의 관재인을 추가 선임했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 이미 관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들과 함께 파산재단 정리작업을 주도한다. 예보 김기돈 청산관리부장은 “그동안 변호사가 파산관재인을 맡는 파산재단이, 예보 직원이 파산관재인을 맡는 파산재단보다 평균 두 배 정도 늦게 첫 배당을 실시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파산재단 정리작업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에 대해 파산관재인으로 일하는 변호사들은 회의적인 눈길을 보낸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예보 직원들이 파산관재인을 맡는 경우 변호사들보다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더 약할 뿐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전문성도 실상은 보잘것없다는 것이다. S종금 파산관재인인 H 변호사는 “예보에서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파산작업을 주도한다고 말하지만 33년 설립된 이후 오랫동안 노하우를 쌓아온 미국 연방 예금보험공사와 우리의 예보를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종금사의 파산관재인으로 일하는 한 변호사도 예보가 파산재단을 ‘장악’하려는 것은 관료적인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변호사는 “예보는 큰 방향을 정하고 파산재단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 매입 희망자에 대한 각종 정보 제공 및 파산관재인 감사 등에 역량을 집중하기에도 버거울 것”이라면서 예보가 파산재단을 장악하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직을 확장하려는 관료적 발상은 한국자산관리공사도 마찬가지. 예보 관계자의 자산관리공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자산관리공사는 중고차 매매인에 비유할 수 있다. 중고차 매매인은 중고차를 매입할 때마다 주차장을 사지 않고 외부 주차장에 맡겨놓는다. 주차료를 아끼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중고차를 팔려고 하기 때문. 그런데 자산관리공사는 부실채권을 매입할 때마다 직원을 늘려왔다. 문제는 부실채권을 매각할 때마다 직원을 감원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자산관리공사의 문제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직원들의 윤리의식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감사원은 3월14일 공적자금 운용 특별감사 자료 수집 과정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 직원들이 일부 금융기관의 압류 부동산 경매 배당금 10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공사측은 이에 대해 “이번 횡령은 공적자금과는 관련이 없으며 횡령액 전액을 물어내도록 조치했다”고 밝혔지만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것처럼 미덥지 않은 것은 사실.

물론 예보와 자산관리공사 입장에서는 앞에서 예로 든 사례에서 문제가 된 금액이 지금까지 투입한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무시해 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일부 공적자금을 메워야 한다는 분석을 제기하는 마당에 예보와 자산관리공사는 국민의 혈세를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올 1월 말까지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은 총 117조4246억원(회수에 의한 재투입분 포함). 예보는 쭠부실 금융기관 자본 확충을 위한 출자 36조1159억원 쭠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한 금융기관에 대한 손실 보전 12조1639억원 쭠부실 금융기관 부실자산 매입 9조479억원 쭠예금 대지급 21조986억원 쭠기타 금융기관 대출금 1조7933억원 등 총 80조2195억원을 투입했다. 자산관리공사는 채권가액 96조543억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37조2051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예보가 올 1월 말까지 회수한 금액은 총 11조9889억원. 이 가운데 2조6113억원은 금융기관 증자 지원을 위한 출자금 중에서 회수한 자금이고, 나머지 9조2489억원은 퇴출 금융기관 파산재단에서 받은 배당금 등을 통해 회수한 자금이다. 반면 자산관리공사는 매입한 부실채권 중 채권액면가 46조2557억원의 부실채권을 매각, 21조4074억원을 회수했다. 예보보다는 높은 회수 실적을 보이는 셈이다.

예보의 회수 실적이 낮은 것은 부실 금융기관 출자 지분 매각이 쉽지 않기 때문. 정부는 증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년 하반기부터 출자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출자 지분 가운데 일부라도 경영권과 함께 조기에 매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부실 금융기관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하고, 공적자금 회수율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24~25쪽 기사 참조).

정부 관계자들의 기대대로 부실 금융기관 출자 지분의 경우 잘 만하면 액면가 이상으로 매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의 성공적인 매각 여부가 공적자금 총 회수율을 결정하는 관건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분에서의 공적자금 회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파산재단 정리나 부실채권 매각 등 다른 부분에서의 공적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앞에서 보듯 파산재단에서의 공적자금 회수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그나마 공적자금 회수율이 높은 자산관리공사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사는 올 1월 말 현재 부실채권 정리를 통해 2조2145억원의 매각 이익을 올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공적자금 조달 비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때 얘기다. 작년 말 현재 부실채권 정리기금 현황을 보여주는 부실채권 정리기금 대차대조표를 보면 그동안 부실채권 운용에서 4조503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헐값에 매각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이에 대해 공사 정진문 자금회계부장은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4조7471억원이나 쌓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면서 “이를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부실채권 매각을 통해 2441억원의 수익을 올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1월 말 현재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하는 49조7986억원(장부가 기준)의 부실채권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작년 말까지 자산관리공사가 매입한 장부가 27조1327억원(매입가 13조4601억원)의 대우 관련 채권(상자 기사 참조).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자산관리공사가 회수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초기에 팔기 좋은 부실채권만을 골라 매각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사측은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다. 이는 공적자금을 최종 회수한 이후에 검증할 수 있는 사안이어서 지금으로선 속단하기 어렵다.

공적자금을 동원한 금융 구조조정은 우리가 처음 겪는 경험이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연구위원은 “초기에는 공적자금을 조기에 투입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이의 회수율을 높이는 방법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공적기구에만 전적으로 구조조정을 맡길 게 아니라 민간부문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18~21)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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