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비운의 시드니스타 金 향한 일편단심

  • 입력2005-02-24 14:3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비운의 시드니스타 金 향한 일편단심
    직경 9m의 매트 위에 서 있는 한 그들은 야수(野獸)다. 레슬링은 잠자고 있던 인간의 원초적인 야성을 깨우는 가장 격렬한 스포츠. 실핏줄이 터져 흉물스럽게 일그러진 선수들의 귓불만 봐도 레슬링이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단박에 눈치챌 수 있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에서 국민의 가슴에 ‘눈물 비’를 내리게 한 선수가 있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8kg급 은메달리스트 김인섭(28·삼성생명). 예선에서 당한 늑골과 손가락 부상으로 결승전에서 만난 아르멘 나자란(불가리아)에게 2분24초 만에 폴로 패해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비운의 스타다. 시상대에 올라 북받치는 설움을 애써 참으며 ‘4년 뒤 아테네에서 보자’고 입술을 앙 다물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비록 금메달을 놓치며, 98년 이후 각종 국내외대회에서 기록한 경이적인 45연승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의 불같은 투지에 온 국민이 함께 울고 박수를 보냈다. 그랬던 ‘투혼의 승부사’ 김인섭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김인섭은 지난 2월, 올해 들어 처음 참가한 두 차례의 국제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의 낭보를 띄우며 재기의 청신호를 울렸다. 그가 정상에 오른 노르웨이컵 국제그레코로만컵과 스웨덴컵은 A급 국제대회. 해마다 가장 빨리 열리는 국제대회인 만큼 세계 레슬링 판도를 점칠 수 있는 비중 있는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김인섭은“이번 두 대회 우승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자신에 찬 모습이다. 시드니올림픽 이후 5개월 만에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그것도 한 체급 올린 63kg급에서 내로라하는 세계 강호들을 꺾고 차지한 우승이라 기쁨은 더욱 컸다.

    김인섭이 이번 대회에서 체급을 올린 이유는 부상 후유증과 아테네올림픽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 때문. 그는 “시드니올림픽에서 다친 왼쪽 늑골의 회복이 늦어 체중감량이 필요한 58kg급을 무리하게 고수할 필요가 없었다”고 체급조정 배경을 설명한다. 아테네올림픽 때 김인섭의 나이는 31세. 체력부담이 큰 그레코로만형 선수로는 다소 벅찬 나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감량고에 시달릴 58kg급보다 63kg급이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인섭은 오는 4월 열리는 국가대표선발전에서도 63kg급에 출전할 예정이다. 다행히 이 체급 국내 최강자 최상선(29·성신양회)도 불어난 체중을 감당할 수 없어 69kg급으로 체급을 올릴 것으로 알려져 그의 대표팀 선발은 유력하다.



    김인섭에겐 또 다른 소망이 있다. 같은 레슬러의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동생 정섭(26·삼성생명)과 아테네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이미 이들은 98방콕아시안게임에서 동반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그레코로만형 76kg급 국내 톱클라스인 정섭도 앞에서 끌어주는 형 인섭과 함께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꿈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흘린 ‘통한의 눈물’을 3년 뒤 아테네에서 ‘기쁨의 눈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김인섭이 도전자의 입장에서 다시 출발선에 섰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