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여자로 태어나면 4억6천만원 손해

美 여성 임금 남성의 72% 수준 ‘차별 심각’ … 여종업원들, 회사 상대로 제소하기도

  • 입력2005-02-23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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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만5320달러. 4억6191만6000원(환율: 1달러=1300원 기준).

    서울 시내 32평형 아파트 두 채를 사고 중형차까지 굴릴 수 있는 액수다. 부부가 보름간의 유럽여행(1인당 250만원 선)을 매년 세번씩 30년간 다녀올 수 있다. 은행에 넣어놓으면 이자만 매달 400만원 가량 된다.

    이 금액은 미국의 평균적인 직업여성 한 사람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손해보는 돈이다. 수태될 때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의 시장가치라 할 수도 있겠다.

    미국의 급여평등위원회(National Committee on Pay Equity)는 최근 센서스 자료(1999년 기준)를 분석, 남녀간 임금차별의 실태를 공표했다. 상시고용돼 있는 미국 내 모든 남성들의 연평균 소득은 3만6476달러(약 4742만원)다. 반면 여성들의 소득은 2만6324달러(약 3422만원)로 나타났다. 남녀간 급여 차이가 연간 1만152달러(약 1320만원)로 직업여성들은 동료 남성들에 비해 72.2% 수준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직장여성들은 한달 중 일주일을 사실상 무료 봉사하고 있는 셈이다. 26세부터 60세까지 35년간 일한다고 보면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평생 35만여 달러 적은 급여를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인종별로 보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백인남성의 수입을 100%로 했을 때 백인여성은 71.5%, 흑인여성은 65%, 중남미계 여성은 52.1%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표1 참조). 같은 소수인종 중에서도 남녀 차이는 크게 나타난다. 민주주의와 여권이 크게 신장됐다고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여성과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직종에서 거의 같은 일을 하는 데도 급여 차가 크게 벌어진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의사들은 남자의사들에 비해 주당 500달러 이상 적게 번다. 연간 총수입으로는 약 2만5000달러(약 3250만원) 차이가 난다. 로펌에 고용돼 있는 여자변호사들은 남자변호사들에 비해 주당 300달러 적게 번다. 연수입으로는 약 1만5000달러(약 2000만원)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여자교수들도 남자교수들에 비해 주당 평균 170달러 적게 받는다.

    여성들이 상당히 많이 진출하고 고위직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서도 남녀간 급여 차가 크게 난다. 초등학교 교사(83%가 여성)의 경우 남성은 월평균 3092달러 받는 데 반해 여교사는 2817달러로 연간 3300달러(약 430만원) 차이가 난다. 간호사의 경우(92%가 여성)도 남자(월 3345 달러)와 여자(월 3032달러)간에 연간 근 500만원 차이가 난다(표2 참조).

    미국에서도 교육수준에 따라 처우가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같은 교육수준 내에서도 남녀간에는 급여 차가 적지 않게 벌어진다(표3 참조).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학원을 마친 여성의 평균 소득(4만5345달러)이 대졸 남성(5만1005달러)보다도 낮다는 점이다. 성차별이 교육수준의 효과를 압도해 역전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미국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46.2%, 1997년 기준)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당장의 급여액수 차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입이 적으면 노후에 받는 연금 액수도 적어진다. 미국의 노인들은 거의 연금에 의지해 산다. 한국처럼 자녀들의 부양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안락하게 노후를 보내느냐, 아니면 쪼들리게 보내느냐는 거의 전적으로 연금액수에 달려 있다.

    미국의 노년층 남성들이 받는 연간 연금액수는 평균 7020달러. 그러나 여성들이 받는 연금은 평균 3486달러다. 미국의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에 비해 절반도 못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노년층들이 젊었을 때는 남녀간 임금 차이가 더 컸기 때문에 연금액수에서도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이다. 1960년 여성들의 수입은 남성들의 60.7% 수준이었다. 현재는 72.2% 수준이니, 11.5% 포인트 개선되는 데 장장 40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급여의 성차별이 벌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미국 노조연맹인 AFL-CIO측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종은 급료가 낮게 책정되어 있는데다 고용, 업무배치, 승진, 교육-훈련 등에서의 차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남성들이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여성들이 앉는 것을 원치 않는다”(워싱턴 포스트지 조사, 1998년 3월)는 점도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성, 인종 등의 이유로 고용기회나 급여 처우 등에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연방정부의 고용평등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에 제소할 수 있다.

    1997년 홈디포(Home Depot·가정용 건자재를 파는 대규모 체인)와 퍼블릭스 슈퍼마켓(Publix Supermarkets)은 각기 수천명의 여성종업원들에 의해 성차별문제로 제소당했다. 여성들을 낮은 직위에 배정하고 급료 및 승진 등에서 차별대우했다는 혐의였다. 이로 인해 두 회사는 각각 8000만달러(약 1040억원) 이상을 여성종업원들에게 배상해야 했다. 정유회사인 텍사코 역시 186명의 여성종업원들에게 임금차별을 했다는 이유로 310만달러(약 40억원)를 물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미국 직업여성들이 절실히 원하는 정책 순위 1번으로 꼽히는 것이 ‘평등한 급여’(Equal Pay)다. 미국의 한 조사기관이 지난해 미 전역의 여성근로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급여의 성차별이 연금 의료보험 근로조건 등보다 더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미 의회가 평등급여법(Equal Pay Act)을 제정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이듬해 제정된 민권법(Civil Rights Act)은 15인 이상 사업장에서의 임금 고용 승진 교육훈련 등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이번 4월 중 민주당의 톰 하킨 등 상원의원 두 명은 ‘공정한 급여를 위한 법안’(Fair Pay Act)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고 급여에 있어서의 성-인종 차별을 강력히 규제하는 내용이다. AFL-CIO 등 250여 노동-여성-사회단체들은 4월3일을 ‘평등급여의 날’(Equal Pay Day)로 정하고 미국 각지에서 ‘경제정의를 위한 행동’(Action for Economic Justice)에 나섰다.

    산업국가 중 세계노동기구(ILO)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1951년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는 단 두 나라, 미국과 한국이다. 미국의 현실이 이렇다면 한국은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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