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밖에서 조이고 안에서 치받고… “이대로는 안 돼!”

여권 연합전선 압박· 당내 비판 고조 ‘이중고’… 昌, ‘국민우선정치’ 내세우며 위기 탈출 시도

  • <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

    입력2005-02-23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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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서 조이고 안에서 치받고… “이대로는 안 돼!”
    3·26개각 이후 한나라당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뚜렷하게 실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당 인사들 사이에 쫙 깔려 있다. 마치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여권은 전열을 정비하면서 야당을 압박해오고 있는데, 총재의 지지율은 여전히 답보하고 있고 지지세력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원내 대책도 지지부진하기만 하는 등 전반적인 ‘장기 불황’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당내 전략가들은 여권의 노림수를 분석하면서 향후 나아갈 방향을 잡는 데 고심하고 있다.

    당 관계자들이 고심하는 것은 당에 대한 지지도보다 이총재의 지지율이 낮다는 것. 야당 시절의 김대중 대통령은 이와 정반대였다. 당의 한 관계자는 “대선은 당보다 개인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며 “뭔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변 상황은 이회창 총재에게 뭔가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한나라당 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다.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는 당내 비주류들과 일부 개혁파 의원들의 행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남아 있다. 이총재는 최근 ‘국민우선정치’를 천명하는 등 몇 가지 화두를 던지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성과 여부를 거론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총재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갈 것인가.

    지지율 제자리·원내 대책 부진 ‘장기 불황’ 양상



    지난 3월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423호 최병렬 부총재의 방에 한나라당 의원 몇 명이 모였다. 전당대회 의장을 맡고 있는 현경대 의원, 한나라당 최고의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맹형규 의원, 노동계 사정에 정통한 40대의 김문수 의원,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미래연대 소속 30대의 원희룡 의원 등이었다. 최부총재를 포함한 이들 6명의 의원은 1시간 남짓 당 안팎의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모임은 3·26 개각에 대한 한나라당 핵심부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한나라당은 특히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신건 국가정보원장의 기용에 주목하고 있다. “충성파들을 기용해 강수를 두겠다는 것”(맹형규 의원) “현 내각은 공격용 내각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번 더 내각을 개편할 것”(엄호성 의원)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여권이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데서 개각의 숨은그림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대응을 둘러싸고는 의견이 갈렸다.

    영남 출신 한 초선의원은 강경 대응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방심하면 당이 깨질 수 있다. 정권 바뀐 뒤 방심하다가 의원 29명을 빼앗기지 않았나.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여권에 협조해주지 않은 것은 딱 두 가지다. 김종필 총리 인준안과 자민련 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한 국회법 처리다. 이것 말고는 다 협조했다. 그러나 여권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다. 여권에서는 개헌을 노리고 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70%에 가까운 다수 의원들은 “국민 정서상 강경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심규철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민생 현안이 문제다. (개헌 등은) 여권의 희망일지 몰라도 가시화한 것도 아니다. 방심하면 당한다고들 하지만 ‘개가 달보고 짖는 식’이면 곤란하지 않느냐. 당당하고 의연하게 국민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이총재도 똑같이 상처받는다. 내년 대선에서 상대는 김대통령이 아니다. 전략적으로 유리할 게 없다.”

    이총재는 상이한 두 입장 사이에서 어정쩡한 중간 입장을 선택했다. 시-도지부별로 국정보고대회를 여는 대신 총재는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 또 4월 임시국회를 합의해 줘 여당에 대한 공격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이 있자 “4월 임시국회에서 문제 장관들에 대해 인사청문회에 준하는 엄격한 추궁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총재의 ‘뜨뜻미지근한’ 입장은 강-온파 양쪽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국정보고대회는 국민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남경필 의원) “싸워야 할 때는 확실하게 싸워야 한다.”(엄호성 의원)

    전략적인 대응을 둘러싼 강-온파간 이견이 노출된 가운데 김덕룡 의원 등 비주류들의 공세는 당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김의원은 “이총재가 제왕적 총재”라며 이총재를 직접 공격했다. “과거 야당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당은 더 시끄러워도 소화해낼 만한 저력이 충분하다”며 낙관하는 의원도 있지만 “김의원은 탈당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며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정대철 최고위원은 “역사 발전이 정반합의 원리를 따르듯 비주류가 있어야 정당도 발전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총재 주변에서는 여전히 “여당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목소리가 높은 게 현실이다.

    한나라당 소장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미래연대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미래연대는 최근 회의를 갖고 김덕룡 의원이 촉발시킨 ‘개헌론’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려 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대표인 남경필 의원은 “의견도 팽팽하게 갈렸고 무엇보다 여권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이들이 많아 성명을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래연대 사람들은 또 “당이 너무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다”며 “당직개편 때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물들을 등용해야 한다”고 이총재를 압박하고 있다.

    여권의 포위와 내부 비판이라는 이중고에 부닥친 이총재는 ‘국민’이라는 화두를 내세워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국민 우선의 정치’(1월), ‘주류세력 심판론’(2월)에 이어 3월 말에는 ‘국민대연합론’을 내놓았다. ‘국민대연합론’은 ‘대한민국이 바뀌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 양식 있는 지사와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는 것’으로 여권의 ‘3당 정책연합과 ‘’3김연합’에 대한 맞대응 카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 그러나 여권은 ‘메인 스트림’(주류세력) 결집론에 이어 또다시 “국민을 계층으로 편가르기하는 것”(남궁진 정무수석)이라고 비판한다.

    이총재는 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알리기 위해 국가혁신위원회(이하 국가혁신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혁신위는 “대통령 후보도 결정되지 않은 마당에 벌써 예비내각을 짜자는 것이냐”는 내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총재가 내년 대선을 겨냥해 띄운 승부수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총재가 국민에게 비전을 내놓을 수 있는 기간은 올 9월 전까지다. 그 뒤에는 정기국회와 선거 국면이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혁신위 구성은 대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시도로 성패 여부에 따라 이총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가혁신위 구성은 당직개편, 나아가 한나라당과 이총재의 변화로 시스템화해 연결하지 않고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총재의 당 운영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변화의 핵심은 분권적인 당 운영. “실질적으로 당무를 대폭 위임해야 한다. 여권의 의도에 이총재가 전면에서 맞서는 순간 공멸하는 것이다. 총재가 당 운영에 적극 개입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안 된다. ‘국민우선’ 등 수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김문수 의원도 “국민에게 ‘친근감이 먼’ 사람들이 총재 주변에 많이 포진해 있다. 국민 우선이라는 것과 맞지 않다. 이런 마당에 과감한 변화를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초선의원도 “갑갑해 미치겠다. 확실한 게 없다”고 당 운영에 대한 불만과 변화의 필요성을 털어놨다.

    이총재는 당 안팎의 난관을 뚫고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내년 대통령 선거 전초전의 일차 승부는 여기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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