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7

2001.03.29

밀려드는 밀입국자… 몸살 앓는 호주

수용소 포화상태, 난민탈출에 폭동까지… 연방 이민부 장관 中東 돌며 불법 이민 방지 ‘캠페인’도

  •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yesnet.com.au >

    입력2005-02-21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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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려드는 밀입국자… 몸살 앓는 호주
    위험천만하게 개조한 길이 50m 정도의 낡은 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 호주땅에 상륙하는 수많은 보트피플들. 이들의 최종도착지는 십중팔구 철조망이 높게 쳐진 난민수용소다.

    “호주에 무사히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동안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고생하겠지만 호주정부의 인도주의적인 정책이 당신들의 일생을 보장해줄 것이다”는 밀입국 알선조직책의 달콤한 말만 믿고 밀입국선에 올라 신천지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보트피플들은 갑자기 나타난 헬리콥터의 굉음과 해안경비정의 포위 작전에 놀라 해안선을 따라 무작정 달아나려고 하지만 호주땅은 너무 넓고 그들을 좇는 경비견들은 너무나 빠르다.

    호주 이민 당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여년 동안 호주해안선에 상륙한 밀입국선박은 200여척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밀입국선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호주로 밀려와 불법이민자 수용소 2개를 새로 만들고 호주 전역에 소재하는 수용소의 규모를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수용시설의 부족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연간 수천만 호주달러의 예산을 사용하면서 보트피플 문제를 처리하고 있는 이민당국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수용소 탈출사건과 폭동사건 등의 심각성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어 전세계로 번지고 있는 난민사태가 하루 빨리 진정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밀려드는 밀입국자… 몸살 앓는 호주
    지난해에는 궁여지책으로 필립 러독 연방 이민부 장관이 이란 시리아 파키스탄 요르단 등의 중동국가들을 방문했다. 그는 “호주로의 불법이민은 낙원으로의 진출이 아니라 국제적인 범법자가 되어 일생을 망치는 무모한 결정일 뿐”이라고 설득하면서 불법이민방지 캠페인을 벌였다.



    러독 장관은 특히 “호주의 해안선에는 악어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낡은 어선으로 항해하기에는 위험천만하며, 무사히 해안에 상륙해도 물리면 즉사하는 뱀들 때문에 단 한 사람도 살아 남을 수 없다”는 등의 연설을 해 난민단체들로부터 치졸한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악어와 뱀이 득실거리는 TV광고물을 만들어 호주로의 불법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실제로 밀입국 선박의 출몰이 가장 빈번한 호주 북부지역은 악어가 많아 인명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악천후를 만나면 꼼짝없이 좌초당할 수밖에 없는 해안선 지형 때문에 정작 밀입국 선박의 접안을 막아야 할 호주 해군이 인명구조작업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올해 초에는 200여명의 중동계 밀입국자들을 실은 인도네시아 어선이 호주 북부해상에서 악천후를 맞아 좌초됐다는 미확인 뉴스를 접한 호주 해군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펼친 적도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던 2000년과 호주연방 100주년을 맞는 2001년은 호주에 큰 경사가 찾아온 해다. 그러나 전세계에 퍼져 있는 밀입국조직들은 호주의 경사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어 호주당국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밀입국조직은 호주정부가 시드니 올림픽이나 연방성립 100주년을 맞아 호주에 체류하는 모든 불법체류자들에게 사면령을 내릴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면서 밀입국 희망자를 모집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사두’(巳頭)라는 조직은 재외 영국인 여권(British National Overseas Passport)을 위조해 중국인들을 꼬드기고 있다. 이 여권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에 영국식민당국이 홍콩주민들에게 발급했던 여권으로 이 여권을 이용하면 미국과 호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로부터 비자 면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호주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일부 한국인 범죄조직도 ‘사두’와 연계해 밀입국 알선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선적의 밀입국 선박을 제공하는가 하면 한국을 중간 경유지로 이용하도록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폭력조직은 중국인 밀입국 조직뿐만 아니라 이라크 등 중동계 밀입국자들과도 연계되어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 수년 전 한국에서 건너온 폭력조직 때문에 호주언론으로부터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는 호주동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금은 상태가 많이 호전됐지만 IMF사태 이후 한국인 불법체류자가 부쩍 늘어났다는 호주 이민부의 발표가 있었다. 또한 수년 전부터 많은 중국동포들이 호주에 불법체류하면서 불법취업을 하고 있다는 뉴스에 이어, 지난 1월에는 북한이 불법체류 위험국가에 포함됐다는 이민부의 발표가 있어 호주에 한국인의 불법체류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불법체류 위험국가 리스트를 발표한 필립 러독 이민부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몽골, 브라질 등과 함께 불법체류 위험국가 상위 5개국에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 불법 체류자 수가 1000명을 넘기면서 상위 10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밀려드는 밀입국자… 몸살 앓는 호주
    지난해 6월, 호주 정부는 불법이민자 수용소에 억류중인 3000여명 중 약 1600명을 석방했다. 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석방 난민들은 3년짜리 임시거주비자를 발급받아 호주에 체류하면서 정식 난민비자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호주정부는 지난 90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석방조치를 단행하면서 전세계적으로 급증하는 난민을 전향적으로 처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석방조치 직전에 발생했던 난민들의 수용소 탈출 사건과 폭동에 대한 대응 실패 때문이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한편 호주정부는 지난 2월16일, 약 400명에 달하는 코소보 난민들에게 5년간 호주에 체류할 수 있는 난민 비자를 발급했다. 그동안 난민을 수용하는 데 인색한 정책을 펴왔던 호주정부가 파격적으로 한꺼번에 대규모의 난민을 수용한 것은 ‘국토가 넓고 인구가 적은 호주에서 더 많은 숫자의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호주 이민부의 발표에 의하면 2001년 난민프로그램으로 호주에 입국할 수 있는 사람은 약 1만2000명 정도다. 그러나 코소보 난민과 지난해 6월에 석방된 난민들은 호주의 연간 이민 쿼터에 포함되지 않은 특별 케이스다.지정학적으로 아시아권에 속하면서도 서양문명을 계승한 ‘아시아 속의 서양국가’로 발전해온 호주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주변 아시아국가들로부터 질시를 받아왔다. 이유는 ‘이웃 아시아 국가들이 조밀한 인구밀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살고 있음에도 유독 호주만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한 채 부유하게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받아왔던 것.

    여하튼 지난해에 이어 대규모의 난민을 수용한 호주정부의 속내가 인도주의적 차원이든 국제사회의 여론에 굴복한 것이든, 난민 홍수에 시달리는 21세기 지구촌에 일조를 하는 전향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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