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7

2001.03.29

가출청소년 급증 애타는 독일 부모들

1년에 약 5만명 집 나가 ‘길거리’ 전전… “돌아와라” 주말마다 수백명씩 ‘아이 찾아 삼만리’

  • < 강여규/ 하이델베르크 통신원 kang@debitel.net>

    입력2005-02-21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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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출청소년 급증 애타는 독일 부모들
    독일의 대도시들이 ‘길거리 삶’을 선택하는 청소년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출을 시도하는 청소년이 일년에 약 5만명에 이를 만큼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느는 한편, 몇 년씩 ‘거리의 삶’을 이어가는 고질적 가출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뒤셀도르프 주재 지방범죄수사국에서 나온 몇 년간의 통계는 이를 극명하게 뒷받침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는 14세까지의 청소년 실종신고가 1998년 1560명에서 1999년 1889명으로 17% 증가했고, 15∼17세(독일에서는 18세부터 성인으로 분류)는 12%가 증가, 가출 청소년이 7428명에 달했다. 1999년 전국통계는 3만6783명으로, 특히 구동독 지역은 인구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매우 높은 편.

    문제는 이들의 가출이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과 같은 낭만적 모험심리와는 관련이 없다는 데 있다. 가출 청소년 10명 중 8명 정도는 부모나 청소년 보호소 교육자들과의 사소한 말다툼 후에 사라져 버린다. 말다툼의 내용은 요란한 머리염색이나 일부러 옷을 찢어 입는 행위, 코걸이 또는 혀에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피어싱에 관한 것들.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면 이웃과 교사들에 대해 수치감을 느끼며 자녀 교육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가출청소년 급증 애타는 독일 부모들
    독일의 성인 교육기관인 시민대학(Volkshochschule)의 통계는 독일 부모들이 현재 처해 있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국 1000여 곳의 시민대학에는 8000여 개가 넘는 2세 교육에 관한 강좌가 있는데 10만 명 이상의 부모들이 강좌에 몰려들고 있으며, 이는 1991년과 비교해 25%가 증가한 숫자라는 것. 빗나가는 청소년들에 대한 대응방법을 찾는 부모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청소년들의 사춘기가 이미 11∼13세로 과거보다 일찍 시작되고 있으나 교육기간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는 것에서 찾고 있다. 청소년들이 독립해야 할 나이에 오래 지속되는 ‘반쯤의 독립상태’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큰 부담을 주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부모가 이해심이 풍부하고 교육자들이 포용적인 교육을 하더라도 가출의 증가를 막을 수 없다는 것.

    모범생 S군(16)의 ‘가정 탈출기’는 베를린 청소년들 가출루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학업성적도 좋고 어머니와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던 그는 베를린 펑크들의 집합소인 프렌츠라우어 베르크나 알렉산더 광장에 가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아이로 탈바꿈했다. 염색한 머리, 검은 가죽옷, 마약 섞인 맥주로 상징되는 이들의 삶은 구속을 거부하는 그에게 멋진 신세계처럼 보였다.



    S군은 “학교나 직업은 엿 같은 일”이라고 불평하며 수업에 빠지기 시작하다가, 펑크족 머리모양을 나무라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인 뒤 집을 나갔다. 그의 어머니는 길거리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거리작업반(스트리트워커)의 담당자를 만나 S군의 행방을 알게 되지만, 그는 부모 만나기를 거부했다. 4주 후, S군은 길거리에 쓰러진 채 경찰에 의해 발견됐으나 마약에 취해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경찰서를 나와 어머니를 뿌리치고 다시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S군의 어머니는 그나마 아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가출한 아이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마음을 졸이며 주말마다 ‘아이 찾아 삼만리’ 길을 떠나야 하는 독일의 부모들이 수백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S군과 같은 가출 청소년은 베를린에만도 약 3000명 정도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들 중 다수가 마약중독이나 에이즈 같은 여러 질병에 시달리며, 전문 매춘객들의 사냥감이 되기도 한다. 매춘객들은 대도시의 기차역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특히 가출해 막 역에 도착한 물정 모르는 어린 청소년들을 유인한다. 역 근처의 화장실은 동성연애 파트너를 찾는 사람들의 ‘매음굴’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종종 매춘의 대가를 돈으로 지불하지 않고 마약으로 제공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전락’의 출구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대도시로 흘러들어온 가출 청소년들은 일종의 ‘지하문화 세미나’를 통해 합법-불법적 생존기술을 배우게 된다. 구걸, 도둑질, 마약판매 등이 그것인데 베를린 ‘동물원역 그룹’의 경우 마약복용은 일종의 통과의례로 인정되고 있다.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동물원역(Bahnhof Zoo)은 가출 청소년들에게는 마력을 발산하는 장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동물원역은 ‘크리스티아네 신화’의 부활을 맞으면서 가출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자유의 상징적 장소가 된 곳. 크리스티아네는 동물원역 주변을 배회하며 마약과 매춘으로 살아가던 16세의 소녀로, 1978년 한 주간지에 의해 보도되면서 독일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녀와 가출 청소년들의 비극적인 삶은 책과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길거리 청소년들 10명 중 9명이 그녀의 이야기를 읽었거나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이들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자유로운 삶의 전형을 만들어내며, 자신들도 소시민적 삶의 강제성을 벗어나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길거리 청소년들의 문제와 고통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사회복지국 직원이나 거리작업원들은 한결같이 “상상했던 것처럼 실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청소년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가출 청소년들이 마약 중독의 늪에 빠져 질병에 시달리고 있거나, 반시민적 삶의 표식으로 몇 주일씩 목욕을 하지 않는 비위생적 생활로 ‘펑크병’이라는 피부병에 걸려 있다는 것. 이들 노숙 청소년에게 의료봉사를 하는 여의사 볼프그람씨는 “청소년들이 부모를 따라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자신의 행방이 드러날 것을 염려해 보험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제서야 자책하며 잘못을 찾기 시작한다. 심리학자 실버아이젠은 “자녀의 가출 후 독일 부모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자책감은 부자간에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독일 부모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오류 중 하나로 자녀들이 갑자기 부모가 생각하는 교육적 이상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거나 새로운 자유공간을 요구할 때, 일단 자녀에게 무언의 압력을 불어넣고 본다는 점을 꼽았다. 자유와 책임의 공간을 넓혀주고, 결과에 관계없이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부모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것.

    하지만 청소년 가출에 대한 책임론을 따지자면 교육기관도 자유로울 수 없다. 결석이 잦아지는 것은 가출을 예고하는 적신호로, 학교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모색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독일 교육기관들은 청소년 가출 방지에 대한 일관된 정책을 갖지 못하고 있다. 작센 안할트주에서는 학생들이 이유 없이 결석하면 의무교육의 책임 소홀을 명목으로 학생과 부모에게 벌금을 물린다. 반면, 하노버시에서는 1996년부터 ‘야간 침대’를 만들어 가출 청소년들에게 잠자리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8∼18세까지의 청소년 750명이 이 시설을 이용했고, 그 중 3분의 2 이상이 ‘길거리 삶’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게 시당국의 주장이다.

    독일은 흔히 처벌 위주의 엄격함과 설득을 통한 보호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나 이 양자는 서로 보완이 이루어져야 효율적인 것이 아닐까. 오늘날 산업국가들의 청소년 문제는 그 유형이 비슷해져 가는 현상을 보인다. 공부를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독일의 고민은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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