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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세발 낙지

달보드레한 맛 씹을수록 일품

달보드레한 맛 씹을수록 일품

달보드레한 맛 씹을수록 일품
목포의 활어집 앞을 지나다 보면 ‘몬도가네’식의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낙지방’ 앞에선 이 방, 저 방에서 흔히 이런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세발낙지를 훑어먹는 모습이다.

세발낙지는 발이 세 개인 낙지가 아니라 발이 가는 낙지다. 세발낙지가 목포 명물이 된 지는 오래지만 맛이 달보드레한 것으로는 영산강의 물목인 미암(영암) 낙지, 해남 산이상공(山二相公)의 세발낙지가 예로부터 유명했다.

홍어가 맵고 지린 맛이라면 세발낙지는 입에 쩍쩍 달라붙어 씹을수록 달보드레한 맛이 초장과 어울리는 게 일품이다. 그러니 초발심자로선 감히 먹을 엄두를 못내고, 먹는다 해도 발이 볼따구니에 달라붙거나 콧구멍을 파고들면 질겁을 하고 나가떨어진다.

남도의 식탁에 힘을 실어주는 홍어와 산낙지. 이 맛을 두고 혹자는 잔인하다하고, 혹자는 살풍경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맛을 모르면, 미안하지만 남도땅을 밟을 자격이 없다. 즉 그들만의 표현대로 ‘개미가 쏠쏠’하여 원초적인 본능의 생생력(生生力)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지인과는 다른 점이다.

그러나 요즘은 남도에서도 신세대에게 세발낙지는 ET(외계인) 같다는 놀림감이 되어 있다. 뻘 구멍 속에 사는 화성인, 그 징그러운 것을 날로 먹다니, 보기만 해도 토악질을 한다. 또한 낙지는 낙제어(諾蹄魚)라고도 쓰기 때문에 시험 보는 아이들에겐 금기식이 되기도 한다. 피자나 햄버거가 판을 치는 동안은 더욱 그럴 것이다. 용봉탕이 되고 있는 거북이나 잉어 들은 장원급제와 효성을 상징하는 물고기로 애들의 책상머리에서 또는 임산부의 머리맡에서 용(龍) 신앙과 결부되어 염원을 담고 있지만 뻘 구멍 속의 ET는 그렇지 못한 게 유감이다.



그러나 낙지는 힘이 넘치는 그 야비한 맛 때문에 이젠 서울에서도 단골 메뉴가 돼버렸다. 여름날 더위지기 소가 드러누웠을 때, 낙지 서너 마리를 아가리에 처넣어 주면 벌렁 일어서는 강한 힘을 얻기도 한다. 이는 ‘자산어보’에 나오는 이야기다.

달보드레한 맛 씹을수록 일품
목포의 낙지방 호산회관(061-278-0050)은 낙지에 관한 한 본바닥 텃세를 누리고 사는 집이다. 주인 마행자씨(46)에 따르면 이젠 홍도나 제주 관광객들 가운데서도 앉은자리에서 세발낙지 서뭇(30마리)을 거뜬히 훑어먹는 대식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 추자도나 흑산도로 가는 서울이나 부산 낚시꾼들도 이곳에 들러 세발낙지를 찾는다. 그래서 이제는 낙지구이, 낙지회, 연포탕이 아니라 ‘진짜 훑어먹는 산낙지’에 이골이 났다고도 한다. 마행자씨는 그럴 때마다 오히려 ‘본바닥 자존심’이 꺾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조크다. 마행자씨는 구이, 연포탕, 산적, 회, 전골, 죽, 볶음 등 열한 가지 낙지음식 모두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게 호산회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또 낙지는 표고버섯과 궁합이 맞는데, 표고가 콜레스테롤을 낮춘다는 설명까지 곁들인다. 그래서 요즘은 병원 환자들에게도 낙지죽이 인기가 있단다.

낙지방에서 산낙지 외에 또 하나 인기있는 품목은 ‘낙지 갈비구이’(낙지호롱)로 마씨가 소개한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조리법은 이렇다.

①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꺼낸다 ② 소금물에 통째로 살짝 빨아낸다 ③ 간장, 고추장, 물엿, 생강 등 갖은 양념을 고르게 발라둔다 ④ 댓가지나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하루쯤 양념간장에 다시 잰다 ⑤ 번철에서 익혀낸다

짚불에 살살 구워내던 전통방식과는 사뭇 다르긴 해도 맛은 그만이다. 낙지산적과 전골 또한 제2회 남도음식축제에서 호평받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제 목포의 명물 중 세발낙지도 옛날 같지가 않다. 독천 미암의 광대한 뻘밭은 해남군 산이면을 잇는 서호방조제로 황폐화하면서 산이상공의 낙지도 그만큼 물동량이 줄었다. 그러니 유달산에 올라가 바다를 굽어보며 이런 시 한 자락 읊어봄도 좋을 듯하다.

산낙지 목포 몬도가네 보았나?/ 한 접이 몇인고, 산낙지 스물이라/ 이빨이 아조 빳기 전이라면/ 언제 한번 생각나면 와 보시게, 커.





주간동아 2001.03.08 274호 (p92~92)

  • 시인 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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