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2

2001.02.22

만약 영남 후보를 뽑는다면

DJ, 후보군 관리와 ‘가지치기’의 이중전략 구사 … “TK만 잡으면 만사 OK”?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

    입력2005-03-21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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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영남 후보를 뽑는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김중권 최고위원을 당 대표로 임명하려 했던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4·13 총선 이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 전 실장이 총선에서 석패하는 바람에 대통령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총선 직후라서 아무래도 ‘원외 대표’를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8·30 전당대회 이후 당직개편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곡절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일정상의 차질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의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김대통령이 김대표를 당 대표로 내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증언한다. 만약 김대표가 총선에서 16표 차이로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대표 취임은 훨씬 빨라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인지 김대표는 “16표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한다.

    김중권 대표 체제는 김대통령의 임기 후반 통치 구상은 물론 차기 대권 구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김대통령과 여권 핵심부는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당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정권재창출은 고사하고 김대통령부터 급격한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에 시달릴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인제 최고위원이 대중적 지지도를 앞세워 지금처럼 일방적인 독주를 계속할 경우 차기 구도의 후보군 관리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것도 염려했을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의 일방 독주는 대통령의 장악력과 통제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대 야당 전략도 역시 문제였다. 민주당은 오랜 야당 생활로 인해 ‘야당적 수세’에는 능숙하지만 ‘여당적 공세’ 혹은 ‘수비적 공세’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당 지도부부터 대야 전략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김대통령에게는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그 결과가 김중권 대표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영남 후보를 뽑는다면
    김대통령과 김대표의 ‘강-강-강 전략’(강력한 대통령-정부-여당)은 지금까지는 손발을 잘 맞추며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김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정치 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은 김대표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상태”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연말 당직자 인선 당시에도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김대표 안(案)과 별도의 인선 안을 만들어 올렸지만, 결과는 김대표 인선 안의 100% 수용이었다. 이 때문에 정작 청와대 비서실이 후임 당직자를 모르는 일도 생겨났다.



    여권의 ‘강-강-강 전략’은 김영삼 정권 때의 후보 관리를 반면교사로 삼은 측면도 있다. 당시 신한국당에서는 7룡이니 9룡이니 하는 대권 후보들이 현재의 민주당처럼 난립하면서 각축을 벌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에 대해 “독불장군에 미래는 없다”는 말로 강력한 통제 의지를 보였지만, 김현철씨 구속 이후 당에 대한 장악력도 잃고 후보군을 제어하지도 못했다. 현재의 민주당은 김대통령의 통제력을 계속 유지하며 난립하는 후보들을 가지치기하는 이중 전략을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경선으로 선출하는 내년 1월의 전당대회 연기론이 솔솔 나오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다음 전당대회까지는 현재의 김대표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김대표가 대권 후보에 다가서기가 한결 쉬워진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시간에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에 대표 직책만큼 좋은 자리도 없다.

    그러나 ‘2인자’의 자리가 오히려 대권 후보로서의 김대표를 제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음은 동교동계 한 고위 인사의 전망.

    “순전히 내 감(感)이지만 김대표는 성공적으로 영남후보론의 길과 터전만 닦고 정작 본인은 노무현 장관 등에게 후보자리를 넘겨주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김대표가 2인자이기 때문이다. 2인자는 막강한 권한은 갖고 있지만 정작 그 권한을 자신을 위한 일에는 쓰기 어렵다. 그게 ‘2인자의 숙명’이다.”

    이 인사의 전망처럼 김대표 등장 이후 영남후보론은 민주당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서 부쩍 힘을 얻었다. 최근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사석에서 “김중권 대표가 후보가 될 리 없겠지만, 만약 김대표가 후보가 된다면 대구-경북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영남 출신 여권 후보의 파괴력은 그 파급 효과가 일반인의 상상을 넘을 정도로 상당히 크다.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동교동계의 한 핵심의원은 “다음 대선은 누가 TK(대구-경북)를 잡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TK만 잡으면 된다. 김대표가 TK에서 20%대의 지지만 획득하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고 장담한다.

    김대표도 이런 분석들을 크게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2월11일 포항 MBC의 ‘시사포커스’ 1시간짜리 대담에서 “최근 장기표 민국당 최고위원의 ‘여권 차기 후보로 김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이나, 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김대표가 여당 후보가 되면 영남 지역의 정서가 달라질 수 있다’는 등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가장 두려워하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언론보도를 들었다”며 “저를 통해 대구 경북의 자존심을 되찾기를 바라는 많은 지역민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영남 후보를 뽑는다면
    그러나 현재 김대표의 최대 난관은 TK에서 일정 부분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겠냐는 것. 정치권에서는 김대표가 이 지역에서의 지지도를 적어도 이인제 최고위원 지지도의 5% 아래까지는 따라붙어야만 후보 확정 후유증을 겪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역시 이인제 최고위원의 입지 문제가 김대통령이나 여권의 최대 숙제인 셈. 이인제 최고위원의 한 특보는 “김대통령은 △권력 누수 없이 △자신의 의도대로 후보를 만들어내려 할 것이고 △여의치 않을 때는 3김 대연합에 의한 내각제를 꾀할 것이나 △이마저 수월치 않을 때는 야당까지 할 각오로 직계 중심으로 나갈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시도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인제 최고위원은 커다란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음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측 한 참모의 전망. “김대통령은 김중권 대표를 의도적으로 많이 키울 것이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이에 반발해 뛰쳐나가 독자 출마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회창-이인제-여권 후보(김중권) 구도가 된다. 영남은 분열된다. 여권에서는 이런 구도를 그리고 있고, 이렇게 되면 여권은 필승한다고 보고 있다.”

    ‘영남 후보라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영남후보론이 현 단계에서 만만찮은 명제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김심(金心)’은 결정되지 않은 듯하다. 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김심’의 향배는 여권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설령 대통령이 중립을 표방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김심’이 ‘민심’과 합치되지 않을 때는 역작용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민심을 주시하는 ‘김심’의 주시점이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지 정치권은 여전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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