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2001.01.18

고장난 신체부위 바꾸고… 기분도 “내 맘대로”

과학혁신 따른 21세기 인류 건강 혁명 전야… SF 영화 속 이야기 눈앞의 현실로 성큼

  • 입력2005-03-09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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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를 마감하는 2000년, 인류는 화성에 물이 존재했을 가능성, 인간 조상의 기원이 60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 인간의 DNA 염기서열이 발표되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면서 화려했던 20세기를 마감했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이 된 21세기에는 어떠한 과학혁명이 일어날까. 최근 발간된 미국의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21세기에 기대되는 과학혁신분야를 열 가지로 나누어 선정했다. 여기에는 인터넷에서 최대한 빨리 정보를 유통하는 기술, 계단이나 턱을 넘나들 수 있는 휠체어의 개발, 건강식품 개발과 같은 현실적 문제들에서부터 시작해 인류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도전인 노화방지, 인간신체의 재생, 알코올 중독증의 치료, 죽은 신경세포 되살리기 등도 포함돼 있다.

    진정한 21세기가 시작되는 이 시간에 혁신적 기술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러한 기술들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추론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소개한 열 가지 분야 중에서 특히 인류의 건강과 직결된 다섯 가지 혁신분야를 살펴보자.

    ▶어려운 수술도 척척: 수술용 로봇

    고장난 신체부위 바꾸고… 기분도 “내 맘대로”
    지난해 10월 미국 외과의사들의 연례회의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의사들은 모두 넋을 잃은 채 대형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한 의사가 작은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손가락 몇 개만을 이용해 의료용 로봇을 조정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가위, 메스, 핀셋을 갖춘 ‘다빈치’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능수능란한 솜씨로 조직을 절개하고 의료용 바늘에 실을 꿰고 절개부위를 봉합해갔다.



    1997년에 처음 선보인 이래 다빈치는 심장수술, 췌장과 전립선 암세포의 제거수술 등에 사용되어 왔다. 외과의사가 모니터 앞에서 조정해야 하는 다빈치는 완전히 자동화된 로봇이라기보다는 사실 로봇팔에 가깝다. 의사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마치 전자오락을 하듯 수술을 집도하게 된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의 가장 큰 장점은 절개부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줄어들 뿐더러 세균 감염의 위험성이 적고 회복기간 역시 빨라진다. 5월에 다빈치로 수술받은 69세의 벤필드란 환자는 6월 말에 알프스 산맥에서 하이킹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다빈치의 파급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매년 겨울이면 우리나라 신문에는 운동선수들이 미국의 저명한 의사로부터 어깨나 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출국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로봇팔과 고속의 네트워크나 3차원 가상현실장치 등을 이용하면 원격조종 수술도 가능하다. 물론 다빈치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대당 1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가장 먼저 극복되어야 할 장애물이다.

    고장난 신체부위 바꾸고… 기분도 “내 맘대로”
    이런저런 이유로 장기나 조직을 이식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증받거나 돼지와 같은 동물로부터 이식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필요한 세포를 아예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세포가 결국은 한 개의 세포인 수정란에서 분화돼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수정란을 이용해 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일 듯싶다. 하지만 복제양 돌리나 국내에서 행해졌던 인간 배아 실험이 일으킨 파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윤리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 때문에 수정란을 이용한 연구의 앞길이 그렇게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차선책을 궁리해냈다. 성인의 체세포로부터 필요한 세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미네소타 대학교의 연구진은 골수에서 추출한 세포를 이용해 신경세포, 간세포, 심장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정란의 분화 과정에서 각각의 세포가 만들어질 때의 환경을 재현해낼 수 있다면 인체에 존재하는 210종류의 모든 세포를 다 만들어낼 날도 멀지 않았다. 미네소타 대학 연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세포를 알츠하이머나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쥐에게 이식해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신체의 고장난 부위를 그때그때 새로 만들어서 교체하는, SF 영화 속에서나 보아왔던 그런 세상이 실현될는지도 모른다.

    ▶강박관념을 넘어서자: 정신의학

    고장난 신체부위 바꾸고… 기분도 “내 맘대로”
    도박꾼, 갓 출산한 아기엄마, 과식증 환자, 약물남용자의 공통점은? 바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왜 사람들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가, 각종 중독증의 이면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이런 현상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알코올 중독에서 니코틴 중독, 마약 중독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각종 중독증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노라 폴코는 여러 가지 상태의 뇌사진을 촬영해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연구했다. 그는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화학물질의 수용체가 정상수치보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각종 중독증에 쉽게 빠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도파민은 행복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다. 쉽게 말해서 도파민이 부족한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고 이 때문에 마약 중독과 같은 중독증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각종 중독증은 개인의 강한 의지로 치료할 수 있다는 기존의 학설은 틀린 셈이다.

    이처럼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화학반응들을 잘 이해하면 다양한 중독증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신의 기분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21세기에는 완벽한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할까. 자못 궁금해진다.

    장수하고 싶다는 소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다. 21세기에는 이 간절한 소망도 이루어질 것 같다. MIT의 분자생물학자 레오나드 쿠아렌테는 노화의 비밀을 푸는 분야에서 최선두에 서 있는 학자다. 그는 적게 먹는 쥐의 수명이 40%나 늘어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칼로리 섭취량과 수명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쿠아렌테는 SIR2와 NAD라는 물질이 DNA의 과도한 사용을 억제해 세포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NAD란 물질은 음식물을 소화하는 데도 작용한다. 식사량을 줄일수록 NAD가 소화작용에 투입되기보다는 SIR2를 활성화하는 데에 사용되어 세포의 노화를 지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SIR2를 알약으로 복용하는 길이 열린다면 금식의 고통 없이도 노화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과학자들은 추론하고 있다.

    노화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고작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최근 들어 속속 등장하는 연구 결과는 눈부실 정도다. 인류 공통의 숙원이니만큼 이 분야는 앞으로도 급속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슈퍼맨을 다시 걷게 하자: 신경학

    미국에서만 해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척추신경를 다쳐 몸이 마비되는 비극을 겪고 있다. 유명한 ‘슈퍼맨’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 역시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지난해 말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렸던 신경학회는 마비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을 던져주었다. 캐나다의 과학자 새뮤얼 데이빗이 ‘손상된 신경세포를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다’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리신경세포를 이용해 쥐의 시신경을 재생한 예’ ‘설치류의 뇌신경을 다른 부위로 이식한 경우’ 등 놀라운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신경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멜린(Myelin)은 신경세포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도록 억제하는 물질이다. 데이빗은 인체의 면역계가 멜린을 공격해 신경세포를 다시 자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데이빗이 개발한 방법은 신경세포가 다치기 전에 미리 처치해야 한다. 예방접종과 비슷한 역할인 셈이다. 또한 멜린이 지나치게 많이 파괴되면 신경세포가 무질서하게 자라나 몸을 마비시키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번 주에 크리스토퍼 리브에게 가서 ‘우리가 당신을 치료할 방법을 찾았습니다’란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는 데이빗의 말처럼 신경세포를 되살리는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멜린을 조절함으로써 신경세포를 다시 자라게 할 수 있다는 결과만으로도 이 분야의 연구는 큰 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마치 SF 영화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들 같지만 위에 소개한 연구 결과들은 21세기에 상용화될 수 있는 분야들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기술의 혜택을 보게 될지 아니면 손자 대에 가서야 비로소 혜택을 입게 될지는 예측키 어렵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우리 시대의 과학자들은 앞선 세대보다 훨씬 많은 자금과 고성능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의 과학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과학’은 21세기에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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