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2001.01.18

한국 종교, 너 맛 좀 볼텨?

불교-개신교-천주교 연대 자정운동 시작 … 별다른 비판 없던 ‘유일 성역’에 개혁 태풍

  • 입력2005-03-09 13: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 종교, 너 맛 좀 볼텨?
    종교계에 거센 자정-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쇄신’ ‘갱신’ ‘바로세우기’ 등 표현은 다르지만 ‘바꿔야 한다’는 핵심은 같다. 특이한 것은 이런 흐름이 개별 종교 차원을 넘어 종교간 연대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최후의 성역’으로 불리며 비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종교계는 이제 질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2월11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이하 재가연대) 사무실에서는 주목되는 모임이 열렸다. 종교개혁에 뜻을 같이한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3개 종교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종교자정운동을 공동으로 펼치기로 한 것. 이날 모임에는 불교계에서 재가연대 이영철 사무처장, 윤남진 기획실장, 정웅기 시민사회국장이 참석했다. 기독교계에서는 기독시민사회연대 박천응 집행위원장, 천주교에서는 박문수 우리신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만남에서 △종교개혁을 위한 보편 과제들에 대해 공동 대응한다 △종교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를 설정한다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고 합의했다. 이들은 1월 중순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다시 만날 예정이며 2월에는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천주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이제는 ‘희망의 메시지’ 들려줘야 할 때

    불교계 44개 재야-시민단체들의 모임인 재가연대의 윤남진 기획실장은 “4월 중순쯤 종교학자들과 시민단체 실무자들이 참여해 각 종교별 문제점들을 논의하는 공동 심포지엄을 열면서 연대기구를 출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시로 정한 심포지엄 제목은 ‘한국의 종교권력’. 그동안 각 종교별로 개혁을 촉구하는 흐름은 나름대로 있어 왔지만 3개 종교 관계자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종교계는 이들의 움직임이 미칠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된 데는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초 만들어진 총선시민연대(약칭 총선연대)의 영향이 컸다. 총선연대가 벌인 낙천-낙선 운동에 참가했던 이들은 낙천-낙선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자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재가연대 상임대표인 서강대 박광서 교수는 “이런 자신감이 자체적인 개혁운동에 나설 수 있도록 이끈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들 종교계 NGO는 ASEM(아시안 유럽 정상회의) 민간포럼 종교분과 회의(2000년 10월16∼20일)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해 4월쯤부터 ‘거사’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을 갖기까지 ‘교단개혁을 위한 천주교 NGO의 경험과 과제’(6월21일), ‘기독사회운동의 역사와 시민운동의 전망’(8월16일)이라는 제목으로 두 번의 포럼을 가졌다. 지난해 8월28일 서울 종로 수운회관에서 열린 ASEM 종교분과 사전 워크숍 주제도 ‘교단 개혁을 위한 종교 NGO의 역할과 과제’였다. 이런 8개월여 성숙기를 거쳐 12월11일 모임이 열렸던 것.

    재가연대 박대표는 “사회가 참을 수 없이 헝클어졌지만 종교계가 긍정적인 역할을 못할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더 썩은 곳도 있다. 이대로 두면 점점 더 썩을 수도 있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독시민사회연대(공동대표 홍성현 수송교회 담임목사,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 전유희 기독여민회 전 회장) 집행위원장인 박천응 목사는 “사회가 이처럼 혼탁하고 어지러울 때는 종교가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권력과 맞물려 돌아가 종교계 내부가 정치화된 측면도 있다. 아무도 쓴소리를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계가 그동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은 ‘유일한 성역’으로 존재했다는 점, 일반 사회에 요구되는 수준보다 종교계의 투명성이나 민주성 수준이 높지 않다는 점 등도 종교계 안에서 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 분석된다. ‘떡값’이나 ‘정치자금’ 등 과거에 하나의 ‘관행’으로 통용되던 것들이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가 됐듯 종교계의 각종 문제점들도 더 이상 ‘종교’라는 이름으로 묵인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것.

    불교계에서는 최근 잇달아 터진 몇 가지 불미스런 사건들이 개혁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현실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98년 도박혐의로 16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성혜 스님의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임명, 백담사 주지 득우 스님의 대마초 흡연사건 등이 그렇다.

    지난해 12월20일 재가연대는 “조계종 총무원 고위 인사들에게 도덕적 상식이 존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성혜 스님에 대한 사퇴촉구 및 종단 지도자들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한 12월29일에는 불교계 9개 재가단체들이 모여 현재의 조계종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재가단체들끼리의 신년법회’를 갖기로 했다. 재가신도들이 스님들과 따로 이런 행사를 갖는 것은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종교라서 묵인된 관행 철폐 시대의 흐름

    현재 불교계 개혁운동은 ‘성혜 스님의 사퇴’를 가시적인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찰재정 공개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재가연대 이영철 사무처장은 “문제삼으려 하면 끝이 없다. 현재 불교계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점의 핵심은 자금 사용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재정이 투명화하면 문제점 가운데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가연대측에서는 이를 위해 조만간 ‘교단 자정 지원-감시센터’를 상설기구로 만들 생각이다.

    개신교는 어떤가.

    “보도되는 각종 비리사건에 기독교인이 끼지 않을 때가 없고 한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끝을 모를 정도”(숙명여대 이만열 교수), “목사직 세습과 성직 매매가 횡행하는 지금이야말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것이 요구되는 시점”(선한용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도덕성 회복 운동을 벌여온 기독교윤리실천운동(약칭 기윤실·대표 손봉호 서울대 교수)과 1970년대부터 진보적인 재야시민운동을 벌여온 개신교 단체들의 연합체인 기독시민사회연대는 개신교 개혁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는 쌍두마차. 이들이 주도하는 교회개혁운동의 촉매제로 작용한 것은 지난해 광림교회 등에서 불거진 ‘목사세습’ 문제다. 기윤실 김성학 사회정의영역 간사는 “각종 여론조사 등을 보면 세습 문제 등에 대해 교인들의 90%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간사는 “목사세습 반대 운동을 펼친 뒤로 기윤실에서 운영하는 건강교회정보센터에는 교회 내 인사 문제나 헌금 문제 등과 관련한 각종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기독시민사회연대 박위원장은 “헌금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하다. 앞으로 교회헌금 바로쓰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위원장은 “한국 교회는 실천이 없는 믿음만 가르쳤다.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의 10%만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줘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나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는 문제를 보는 시각이 약간 다르다. “천주교가 중산층 종교, 보수화된 가진 자들의 종교가 돼가고 있다. 성직자 중심인 교계 제도의 권위주의화도 문제다”(조현범 한신대 강사), “성직자들이 교회의 대량화, 물량화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시대정신이 없다”(박현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등의 지적을 보면 그렇다.

    천주교에서도 성당 신축비를 횡령한 경우 등 일부 공금유용 사례가 있지만 다른 종교처럼 개혁의 핵심고리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정예화된 교육체계와 윤리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각 종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운동이 앞으로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인 서울대 이진구 강사는 “시간적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있기에 앞으로 종교개혁운동이 확산되며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어느 정도 인적-물적 토대가 있는 개신교의 경우 의외로 빠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9월에 나온 계간지 ‘당대비평’ 가을호와 지난해 10월 발행된 ‘인물과 사상’ 16호는 각각 ‘권력으로서의 한국종교’와 ‘종교는 영원한 성역인가’라는 제목으로 한국종교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뤄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2월19일 MBC PD수첩에서 ‘2000, 한국의 대형교회’라는 제목으로 한국 대형교회들의 문제점을 파헤치자 보수적인 교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약칭 한기총)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언론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MBC 광고 안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현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개혁 목소리에 대한 내부 반응은 한마디로 극과 극”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교계의 한 언론인은 “종교계가 내부 개혁작업에 실패할 경우 시민사회에서 종교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쟁점화’ 자체가 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쟁점화되는 것이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나쁘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종교개혁운동의 앞날이 주목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