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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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진상 규명 제대로 될까

수십년 세월에 증거도 인멸… 진상조사위는 인력·기간 부족 ‘불안한 출발’

  • 입력2005-03-09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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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사 진상 규명 제대로 될까
    1월4일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에 자리잡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들에 대한 역사적인 첫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420여일에 걸친 국회 앞 천막농성과 거리시위, 피맺힌 외침으로 얻어낸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0년 5월 시행, 이하 의문사법)과 그에 따라 발족된 위원회이기에 첫 진상조사를 받는 유족들의 감회는 말 그대로 남달랐다.

    하지만 기대에 부푼 그들의 가슴 한쪽에는 아직도 ‘이번에는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의문사 이후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증거는 인멸됐으며, 아직도 국가권력은 그 죽음을 ‘자살’과 ‘사고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의문사의 가해자로 의심받는 정보기관이나 군, 경찰이 쉽게 기존의 수사결과를 뒤집고 역사의 심판을 받기 위해 선선히 나설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79명에 대한 진정인 접수 마감

    의문사 진상 규명 제대로 될까
    때문에 유족들이 지난해 10월17일 발족한 진상조사위에 거는 기대는 상대적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유족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위원회뿐이다. 유족들이 추천한 민간조사관과 청와대에서 추천한 검찰, 국가정보원, 경찰, 군 파견 조사관 50여명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반민특위’ 이후 역사상 두번째로 시도되는 과거청산 임무에 남다른 소명의식을 느끼고 있다. 의문사 조사는 한 개인의 사인을 밝히는 차원을 넘어 과거 독재정권의 허물과 죄상을 밝히는 역사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시행된 의문사법에 따라 1월2일까지 79명에 대한 진정인 접수를 마감한 진상조사위는 조사대상 선별작업이 끝난 8건에 대해 이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피진정 기관별 접수 통계를 보면 강제징집, 녹화사업 등과 관련된 국방부가 가장 많은 28건이고 검-경찰이 21건, 국가정보원이 9건이다. 아예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는 그 나머지 죽음도 21건에 달했다. 이 중 사상계 발행인으로 유신헌법 철폐투쟁에 나섰다 지난 75년 8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돼 ‘실족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장준하씨(당시 58세)와 지난 73년 10월 반유신 시위를 하던 제자들을 두둔하다 중앙정보부에 간첩 혐의로 불려간 뒤 시체로 돌아온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당시 41세)가 우선 눈에 띈다. 하지만 역사적 소임과 유족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위의 앞길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운동단체나 재야 법조계에서는 의문사위원회가 과연 ‘죽음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인지에 강한 의문을 표하며 벌써부터 의문사법의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문사법은 의문사 위원회의 조사기간을 최대 9개월(연장 3개월 포함)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50명도 안 되는 조사관들이 권력기관을 상대로 한 조사를 제대로 해낼지 의문입니다.”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이창수 사무국장은 조사기한의 연장 없이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위원회가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렸는데 조사기한이 끝나버릴 경우 사건 자체가 유야무야 된다는 게 이국장의 주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조용환 변호사도 의문사법이 다른 인권법과 마찬가지로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전혀 없는 졸속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다음은 조변호사의 주장. “증인이나 참고인의 허위진술에 대한 처벌이 전무한데다 참고인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조차 없다. 자발적 협조에 의지할 뿐 조사를 거부하는 기관들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조사권도 없다. 정부와 국회가 아무 것도 모르는 유가족을 기만하고 유엔 인권소위원회가 규정한 국가인권기구(진상규명위원회)의 지위에 관한 원칙마저도 깡그리 무시했다.”

    유엔 인권소위의 원칙에는 과거 인권침해에 대해 진상규명위원회가 가져야 할 권한으로서 △공적기록을 포함한 모든 문서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한 △정보제공을 강제할 권한 △당사자들에 대한 청문권 △증인을 소환하고 출석을 강제할 권한 등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범죄혐의가 있으면 검찰총장에게 고발하고, 개연성이 인정되면 수사를 의뢰하고, 보상은 보상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는 등 소극적 권한밖에 없지 않느냐고 조변호사는 반문했다.

    진상조사위 조사1과장 조남관 검사는 이에 대해 “시일이 오래 지난 의문사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사고 당시 조사과정에서 증거가 인멸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사권 같은 강제적 권한보다는 당사자나 증인의 결정적인 제보가 사건 해결에 더 긴요하다”고 반박했다. 사고 당시 관련 기관의 책임자와 담당자들이 대부분 이미 그 기관을 떠났거나 고령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문사법에 규정된 ‘유인책’을 이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즉, 자수자 형 감면 또는 면제 규정(법 제33조)과 제보자 포상규정을 이용해 양심선언을 이끌어 보자는 것. 이 규정은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피진정인의 경우 정도에 따라 형을 아예 면제하거나 감면하고, 제보자의 경우는 5000만원까지 포상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허영춘 의문사지회장은 의문사 규명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가해자를 찾아 보복을 하자는 취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의지가 문제입니다. 이제 그들도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진상을 규명하면 용서해주는 법을 만들어 놨으니까 말입니다.”

    지난 83년 부산수산대 학생으로 군복무 중 유류고 뒤에서 세 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허씨의 아들 원근씨(당시 23세)에 대한 군의 최종 수사결과는 자살이었다. 권총도 아닌 M16 소총으로 자신의 가슴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쏜 뒤 다시 머리까지 쏘았다는 군검찰의 발표는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허씨가 죽은 아들을 끝내 가슴에 묻지 못하고 17년 동안 시위장을 누비며 부르짖었던 외침은 오직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였다. 그러나 ‘허약한 진상조사위’가 허씨를 비롯한 많은 의문사 가족들이 품고 있는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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