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8

2001.01.18

달라진 DJ “하나만 때린다”

‘두마리 토끼’ 쫓지 않고 확실한 타깃에 역량 집중 … “인기보다 정국 주도가 우선”

  • 입력2005-03-08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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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진 DJ “하나만 때린다”
    신춘 벽두부터 정국이 심상치 않다. 여의도 정가는 점입가경의 난타전으로 치닫고 있다. 3김(金)1이(李)의 진흙탕 싸움은 좀처럼 헤어나기 힘든 정치판의 질곡(桎梏) 그 자체를 보여준다.

    전면전의 시작은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으로부터 출발했다. 민주당 의원 3명의 자민련 이적, 15대 총선 및 대선에서의 한나라당(전신인 신한국당과 민자당 포함)에 대한 안기부(국정원 전신) 비자금 제공 의혹 제기 등 여권의 ‘강공’이 정치판에 일대 회오리를 몰고 오면서 ‘격동의 한 해’를 예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7년 대통령론’(김대통령 임기 후반 2년도 사실상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한나라당 논리)에 젖어 느긋해 있던 한나라당은 “야당 죽이기 작태”라며 연일 ‘필사 항전’을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의 목소리는 강경하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으며 물러나서 평가를 받겠다” “우리가 가는 길이 옳으며 너무 겁내는 것이 도리어 문제다”(1월5일 민주당 지구당위원장 신년하례) “확고한 의지와 원칙을 가지고 법대로 해나가겠다”(1월6일 76회 생일 인사) 등 김대통령의 어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하다. 여권 핵심관계자들의 입에서도 ‘결연’ ‘단호’ 등의 단어가 그치지 않는다.

    ‘김중권 체제’ DJ 정국전환의지 시발점



    달라진 DJ “하나만 때린다”
    김대통령은 정말로 변한 듯하다. 그 변화가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말했던 한달 전에 국민들이 원하던 변화는 아닌 듯하지만,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김대통령은 왜 변한 것일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1월4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나온 민주당 의원 3명의 자민련 이적에 대한 김대통령의 견해인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하다”는 말에 다 들어 있다. 대야 관계나 정국 해법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기조로 나가는 것이 김대통령의 최근 심경이자 결론이라는 얘기다.

    이를 민주당 동교동계의 한 핵심의원은 이렇게 해석한다. “김대통령이 과거 60년대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나서 한 말 가운데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 인식을 동시에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대목이 있다. 이승만의 현실인식과 백범 김구의 문제의식을 병행하겠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일관된 생각이었으며, 이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어느 쪽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 김대통령은 ‘현실인식’ 쪽으로 기울었다. 항상 그래왔다. 김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자다.”

    이 의원의 말을 해석해보면 지금 김대통령의 정국 운용 기조가 확연하게 이해된다. 우선 김중권 대표를 기용한 것부터 그렇다. “그동안 김대통령은 당을 관리하는 방식에 있어 민주성과 정통성, 효율성 등의 측면 가운데 민주성과 정통성에 더 무게를 뒀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 민주성과 정통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이 무기력한 것보다는 낫겠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가 김중권 대표 체제다. 효율성 쪽에서만 보자면 여권 전체를 통틀어 김대표 이상 갈 사람이 없다.” 역시 위 인사의 언급이다.

    말하자면 김중권 대표 체제의 등장이야말로 김대통령 정국 전환 의지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준비돼 있었다는 듯이 김대표가 들어서자마자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JP)와의 관계개선이나 DJP 공조가 복원됐고, 안기부 비자금 제공 의혹 등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 전술이 실행됐다. 속전 속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실행 속도도 빠르다. 과거 무기력하던 여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의원 3명의 자민련 이적과 관련해 “김대표가 오니까 비밀도 새나가지 않고 거사가 달성됐지, 옛날 같으면 거사를 거행하기도 전에 얘기가 다 새나가서 죽도 밥도 안 됐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오간다.

    물론 김대통령이나 여권 핵심 인사들이 의원 3명의 자민련 이적 방식에 대한 여론의 질타나 비판을 모를 리 없다. 이로 인한 지지도 저하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한나라당에) 질질 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여권 핵심부의 공통적인 기조다. 특단의 대책을 시행하지 않고서는 자민련과의 관계도 갈수록 멀어지고, 이를 목적으로 하는 한나라당의 방해 전략도 갈수록 공고해질 따름이라는 현실인식이다.

    한 중진급 인사는 “도하 모든 언론이 비판하고 국민들이 ‘웃긴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우선 JP가 변하지 않았느냐.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현실적 이득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DJP 공조를 깨려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 DJP 공조 복원은 중요하다. 의원 3명의 이적이 정도인지 아닌지는 명분과 이상의 문제지만, 공조 복원은 현실적 문제다”고 강조한다.

    1월4일 영수회담에서 김대통령이 “야당은 협력보다는 나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직설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도 김대통령의 ‘변한’ 모습이다. 물론 이는 이회창 총재가 면전에서 “과거 독재정권과 무엇이 다른가”고 직격탄을 날린 영향도 클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이총재를 ‘정국 운영의 파트너’로 더 이상 대접하기 어렵다는 김대통령 나름의 현실인식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상자기사 참조). 김대통령에게는 야당의 모든 전략 기조가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어 제물로 삼고, 그런 정국 주도권에 따라 2002년 대선을 치르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제 김대통령에게서 모든 계층, 모든 지역을 한꺼번에 아우르고 가려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계층간 지역간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그렇게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키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행 발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앞으로는 어느 한쪽만을 택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실용노선을 걸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더 이상 ‘두 마리 토끼’를 쫓지 않고 확실한 타깃 하나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노선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실용 노선 기조가 재집권 전략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지금까지는 영남권 전체에 대한 ‘구애’ 차원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영남권에서도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를 구분해 어느 한 지역만 선택하겠다는 전략상 변화가 읽힌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중권 대표 체제의 의미는 더 커질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15∼16쪽 기사 참조).

    물론 김대통령의 이런 실용성은 ‘오만과 독단’이란 비판에 언제라도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12월 대선을 향한 ‘대장정’의 행진곡은 이미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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