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2001.01.11

놀라운 첩보능력, 구멍 뚫린 정보보안

‘北 미그기 공중충돌’ 사실 항공통제·통신감청 통해 인지… 내부자, 기밀사항 언론에 제보

  • 입력2005-03-07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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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첩보능력, 구멍 뚫린 정보보안
    지난해 12월18일 동아일보에 ‘북한 미그 21기 2대 추락… 야간비행 중 공중충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12월13일 밤 북한 모 지역 상공에서 야간 근접비행 훈련을 하던 미그 21기 두 대가 충돌했으며, 이 사고 직후 북한 공군은 모든 비행훈련을 중단시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이 기사는 “북한 전투기가 훈련 도중 공중충돌해 추락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 조종사들은 최근 수년간 연료 부족으로 비행훈련을 거의 하지 못해, 조종 미숙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는 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사는 동아일보의 특종이다. 북한과 대립하던 과거 정권 시절이라면, 정부는 이 사실을 크게 홍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언론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고, 동아일보도 후속 기사를 내보내지 못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국가정보원이 “군사 기밀 노출”을 이유로 국방부 대변인실을 통해 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국방부와 통일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상대로 정보 누설자를 추적하는 내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에게 정보 제공자가 누구냐고 묻기까지 했다(기자는 취재원 보호가 생명이므로 이러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미그 21기 두 대가 공중 충돌했다는 ‘첩보’는 ‘S1’(secret one)이었다고 한다. 미그 21기의 공중충돌이 확실한 ‘정보’(Intelligence)가 아니고 약간의 불확실성이 내포되었을 가능성을 담고 있는 ‘첩보’(information)로 분류된 것은, 우리 쪽에서 추락한 미그기의 잔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첩보일지라도 정황상 확실한 것으로 보이면 정보로 ‘판단’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정보로 판단된 첩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S1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방법으로 미그 21기가 공중충돌한 사실을 알아냈을까.

    전문가들은 국정원의 내사를 의식해 입을 꼭꼭 다물고 있지만, 첩보 추적 경위는 어렵지 않게 유추된다. 경기도 오산(정확히 말하면 평택시)에는 미 7공군사령부(미 7공군)가 있고, 그 안에 한국 공군작전사령부(공작사)가 있다. 미 7공군과 공작사는 미 7공군 부지 내에 중앙방공통제소(MCRC·Master Control & Reporting Center)를 만들어 공동 운영하고 있다. 중앙방공통제소는 전국에 있는 한미 공군의 방공관제레이더가 포착한 모든 비행 정보가 들어오는 곳. 때문에 이곳에서는 남북한은 물론이고 일본과 만주 일대의 항적까지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

    놀라운 첩보능력, 구멍 뚫린 정보보안
    중앙방공통제소로는 한국의 모든 공항을 이착륙하는 민항기와 전투기의 예상 비행 정보가 입력된다. 한국에 착륙하지 않고 한국 공역을 통과하는 외국 항공기 정보도 들어온다. 이러한 정보는 중앙방공통제소가 잡아낸 레이더 화면상의 항적과 비교돼, ‘이 점은 LA로 가는 대한항공 073편이고, 이 점은 휴전선 바로 남쪽의 비행금지선 P-518을 따라 초계비행하는 한국 공군 △△전투비행단의 F-4 전투기이며, 이 점은 미 해군 키티호크 항공모함에 실려와 한반도 인근의 군사작전지역(MOA)에서 훈련에 들어간 미 해군 □□전투비행단의 F/A-18 전투기다’는 식으로 하나하나 대입된다.



    그러나 북한이나 일본 중국 러시아 공군이 띄운 전투기와 한국 공역 바깥을 지나가는 항공기 정보는 들어오지 않는다. 중앙방공통제소에는 공군 전투기들을 통합 지휘할 수 있는 ‘전구항공통제본부’(TACC·Theater Air Control Center)가 있다. 한국 공역 바깥을 지나던 정체 불명의 항적이 갑자기 한국으로 돌진하면, 전구항공통제본부는 즉시 초계비행중인 전투기를 그쪽으로 이동시키고, 공작사 예하 전투비행단에 ‘비상출격’(Scramble)을 하달한다. 이어 해군과 육군에도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알리고, 행정자치부의 민방위본부에도 알려 전국에 민방위 경계령이나 공습경보령을 내리게 한다. 4000만 국민이 모두 잠들어도 절대로 잠들 수도, 쉴 수도 없는 곳이 중앙방공통제소와 전구항공통제본부인 것이다.

    중방방공통제소나 전구항공통제본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북한에서 발생하는 항적이다.

    전투기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병기(兵器)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지상 기지와 끊임없이 교신해야 한다. 전투기와 지상기지 간의 ‘무선교신’은 어머니와 연결된 태아의 ‘탯줄’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러한 교신을 위해 전투기는 고유의 주파수를 사용하는데, 북한 공군기가 사용하는 주파수를 알아낸다면 전구항공통제본부는 북한에서 나타난 항적이 어떤 전투기인지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일을 위해 전구항공통제본부는 한미연합 통신감청 부대와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에는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무선 주파수가 날아다닌다. 이러한 주파수들 중에서 북한 전투기가 사용하는 주파수를 찾는 것은 잔디밭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전투기에 탑재된 무전기가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한정돼 있으므로 주의깊게 추적하면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북한을 비롯한 모든 나라 전투기들은 사용하는 주파수를 수시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주파수를 바꾼다고 해도, 탑재한 무전기가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 안에서의 변경이므로 통신감청부대는 다시 찾아낼 수 있다.

    주파수가 노출된다는 위험성 때문에 전투기 조종사와 지상기지는 암호로 구성된 ‘음어’(陰語)로 교신한다. 때문에 주파수를 잡아놓고도 음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일상 언어가 ‘문법’이라는 법칙에 따라 문장이나 말을 만들듯이, 음어 또한 법칙에 따라 뜻을 만든다. 때문에 많은 음어를 수집해 오랫동안 고성능 컴퓨터로 분석하면, 이를 해독해 낼 수가 있다. 통신감청부대가 포착한 주파수와 해독한 음어를 전구항공통제본부가 포착한 항적에 대입하면(이를 전문 용어로는 ‘융합’이라고 한다), 각 항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13일 전구항공통제본부와 한미연합 통신감청부대는 미그 21기들이 이륙해 야간훈련에 들어간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순간 전구항공통제본부에서는 두 개의 항적이 하나로 합쳐지고(충돌) 그 직후 사라진(추락) 사실을 포착했을 것이다. 이때 북한의 지상기지는 사라진 두 전투기를 찾기 위해 두 전투기의 무선주파수로 조종사를 애타게 불렀을 것이고, 이러한 사실은 한미 연합통신감청부대에 포착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융합하면 ○○주파수와 ▽▽주파수를 사용하는 미그 21기 두 대가 공중 충돌로 사라졌다는 판단이 나오게 된다.

    한미 연합감청부대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98년 12월18일 밤 광명함을 비롯한 해군 함정들은 전남 여수시 돌산읍에 상륙해 고정간첩을 태우고 도주하던 북한 노동당 작전부 소속의 반잠수정을 격침한 적이 있었다. 이 반잠수정은 서해에 면한 북한의 남포기지를 출항한 공작모선에 실려온 것이었다. 한미 연합감청부대는 이 공작모선이 사용하는 주파수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공작모선이 중국 쪽 공해(公海)를 따라 남해로 내려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추적이 가능했기에 해군은 반잠수정을 격침할 수 있었다. 반잠수정 격침 후 국방부는 통신감청에 성공한 미군 장병을 표창하고, 반잠수정 격침 사실을 대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그렇다면 왜 미그 21기가 공중충돌한 사실은 감추려고 하는 것일까. 관계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므로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다.

    첫번째로는 우리의 감청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미그 21기가 북한 땅에서 공중충돌한 사실을 발표하면, 북한은 ‘한미연합군이 우리를 샅샅이 살펴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전투기의 무선 주파수를 변경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연합 감청부대는 바뀐 주파수를 추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두번째로는 차제에 S1급 비밀을 누설한 자를 잡아냄으로써 김대중 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막아보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세번째로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로 추정할 수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의도라면 국정원의 내사는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번째를 목적으로 하는 내사라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최근 야당에서는 국정원이 국가(대한민국)를 위한 첩보 활동보다는 북한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첩보 활동에 주력한다며 ‘북정원’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내사는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 국익을 위해 노력하던 시절의 국정원은 항상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S1을 누설한 사람을 잡아내겠다는 국정원의 내사는 너무 요란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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