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

‘대책 없는’ 일본의 대북정책

‘미사일·납치 문제’ 해결에만 집착… 급변하는 국제 정세 못 따라잡고 근시안적 태도 일관

  • 입력2005-03-07 14: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책 없는’ 일본의 대북정책
    연말이면 대개의 언론매체들이 그렇듯이 일본 언론매체들도 10대 뉴스라는 것을 선정한다. 일본 언론이 선정한 2000년 10대 뉴스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남북정상회담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다. 일본 언론들은 대체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 이니셔티브를 높이 평가해왔다.

    그러나 미국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출범 등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되고, 대북 전력지원 등을 둘러싼 이른바 ‘남남갈등’으로 남북 관계에도 미묘한 갈등이 노출되는 가운데 일본 언론이 한국 사정을 보도하는 흐름에도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이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김대통령의 평화 이니셔티브와 대북 햇볕정책의 성과를 은근히 깎아내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묘한 변화의 흐름은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 열도의 보수화 경향과 11차례의 교섭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일(北日)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환경 변화에 뒤따라가는 일본 외교

    ‘대책 없는’ 일본의 대북정책
    그렇다면 북일수교 협상이 이처럼 장기성을 띠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거기에는 북일 수교의 특수성과 국제성 같은 거창한 이유가 지적되고 있지만, ‘대책 없는’ 일본의 대북정책과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본 외교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즉 일반적으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의혹, 핵-미사일 개발 의혹 같은 이른바 ‘전후 특수관계’와 95년 11월 일본 정부가 대북 수교 3원칙의 하나로 공표한 한-미-일 3각 공조의 틀이 거론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갖는, 지난해 북한이 국제외교의 전면에 ‘화려하게’ 부상한 상황 변화에 따른 일본 소외에 대한 의구심을 지적하는 견해(동국대 강성윤 교수)도 있다.



    일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게이오대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도 외부환경이 북한에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는 북한 지도층의 인식과 상대적으로 위축된 일본 정치-외교의 리더십 부재, 그리고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국내 여론이 북일 수교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오코노기 교수는 외부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일본 외교의 소극성을 지적했다. 최근 북일 관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도 오코노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 정부의 한반도 평화와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위한 북일 관계에 대한 접근방식을 보면 장기적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일부에서는 ‘통일한국’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일본이 북일수교나 한반도 냉전해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경계심보다는 현안에만 관심을 갖는 일본 외교의 근시안적인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본 관료들의 문제는 새로운 방식에 의한 문제해결을 과거 방식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물론 북일관계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데는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의 강경 일변도 협상방식에 문제점이 크다는 지적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8월 일본열도를 화들짝 놀라게 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일본 본토를 뛰어넘은 탄도미사일의 출현은 일본인 납치사건의 기억이나 핵확산의 공포와 겹치면서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 북한의 위협을 ‘필요 이상으로’ 강하게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위협요소에 근거해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변화에 대한 평가에서도 여전히 ‘전술적 변화는 몰라도 전략적 변화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외교안보연구원격인 일본 외무성 산하 국제문제연구소의 구라타 히데야(倉田秀也) 객원연구원도 “북한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전략목표를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미사일 개발 및 납치 의혹 같은 양자간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북일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의 이같은 인식은 물론 북일 수교에 부정적인 일본 여론의 영향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극동문제연구소 신정화 연구원은 “북일 수교에 대해 일본 국민의 80%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한 여론조사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런 여론에 힘입어 “일본은 어차피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늦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늦게 북한과 수교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에서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위협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오는 북일 수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상당 부분 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신보수주의 경향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일 수교의 쟁점은 기본적으로는 과거사 인식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세현 경희대 객원교수는 “자신들의 과거사 문제는 덮어놓고 납치 일본인 문제와 미사일 개발 같은 과제에 집착하는 일본의 접근방식과 태도에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들의 ‘전전(戰前) 특수관계’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전후 특수관계’만 내세우는 것은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정교수는 과거 청산의 방식에서 보상이 아닌 한일회담 방식(청구권-경제협력)의 적용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상황의 변화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구라타 연구원은 “과거사 문제가 북일관계의 근원적 문제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먼저 청산하면 북한이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 그래서 포괄적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것이다”고 답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북한은 수교의 관건이 돈(보상금) 문제가 아니라 명분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명분이 돈 문제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21세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하는 일본에 주변국과의 과거사 청산, 특히 외교관계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대북관계는 아무리 어려워도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일본에 현재 이런 숙제를 풀 수 있는 외교 역량과 정치적 리더십이 있느냐는 점이다.

    일본 아사히신문(12월27일자)은 최근 자사 사회부가 선정한 20세기 일본의 10대 뉴스에 1910년 한일합병과 한반도 식민지화가 포함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1990년대 들어와 종군위안부와 여성들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과 공식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어 일본의 전후 보상 태도가 문제시되고 있는 점과 북한도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식민지 과거의 청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일본의 10대 뉴스로 선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올해에는 극적인 북일 관계 개선으로 일본 정치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세계 10대 뉴스에도 선정되는 것을 기대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