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5

2000.12.28

축구 발전 한평생 바친 ‘한국 축구사의 전설’

  • 입력2005-06-13 14: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축구 발전 한평생 바친 ‘한국 축구사의 전설’
    이기기만 하면 되던 축구 경기에 스포츠 정신을 심어놓았고, 그저 뛰고 달리던 축구 경기에 과학적인 전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세계무대에서 번번이 꺾이고 마는 축구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프로 축구의 장을 열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드문 시대에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FIFA 등 국제회의에서 우리 축구를 변호하는 등 스포츠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우리는 한국 스포츠사에 이런 축구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축구인 김용식. 1910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축구 대표팀의 유일한 조선 선수로 참가했고,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는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1937년 잠시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당시에는 체육부가 없었다) 스포츠 분야를 담당하기도 했지만 곧 선수로 돌아가 42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선수시절부터 코치를 겸하더니 은퇴 후 금성방직 축구팀을 창단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축구팀 할레루야를 창단해 프로팀 제1호 감독이 됐다. 1985년 75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FIFA총회에 한국 수석 대표로 4회나 참석하는 등 한국 축구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그런데도 그가 마지막 누운 유택(幽宅)의 위치를 기억하는 축구인이 없어 묘지를 찾는 데만 몇달이 걸렸다고 한다. SBS 축구 채널 전문 캐스터인 서기원씨(63)가 이 일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축구사에서 김용식이라는 이름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을 뻔했다. 서씨는 김용식 선생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취재를 해서 ‘어떤 인생’(명상 펴냄)이라는 책을 펴냈다. 너무 늦었지만, 더 늦어서도 안 되는 소중한 기록은 이렇게 탄생했다.



    확대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