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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한다!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1954~62년 알제리 독립전쟁 중 잔혹행위 속속 밝혀져… 佛 시민단체 “법적 책임 물어야”

“고발한다!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고발한다!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프랑스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의 잔혹행위 문제가 세밑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1830년 이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대 제3세계 국가들의 전면적인 탈식민지 민족해방 운동의 흐름 속에 1954년 독립전쟁을 일으켜 1962년 독립을 쟁취했다. 이 8년간의 독립전쟁 기간 프랑스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잔혹행위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전쟁이 끝난 지 38년이 지난 올해까지 그 실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30여년이 더 지난 과거의 문제를 ‘통과하지 못한 과거’의 문제로 만든 것은 프랑스 언론이었다. 르몽드가 지난 6월20일자 신문에 알제리의 여성 독립운동가였던 루이제트 이힐라리즈(Louisette Lghilahriz)의 고문경험을 보도하면서 프랑스 군대의 잔혹행위를 일반독자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그녀는 20세이던 1957년 말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체포돼 자크 마수(Jacques Massu) 장군 휘하의 10공수부대에서 고문을 당했고 죽음 직전에 한 프랑스 군의관에 의해 치료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며 지금까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 군의관을 찾고 있다고 증언했다.

실종자 3024명 대부분 즉결 처형

“고발한다!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10월 말부터는 다른 신문들도 르몽드가 불붙인 알제리 전쟁의 잔혹행위 문제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공산당이 발행하는 일간지 뤼마니테(L’Humanit?는 10월30일자에 지식인 10여명의 서명과 함께 프랑스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정부의 공식 인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11월부터는 보수적 성향의 일간지들까지 이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각종 매체들에 전쟁 당시의 고문 현장 사진들이 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11월23일자 르몽드엔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 군의 핵심 지휘자였던 92세의 자크 마수 장군과 82세의 폴 오사레스(Paul Aussaresses) 퇴역장군이 전쟁 당시 고문행위와 즉결처형 등을 인정하는 인터뷰가 실렸다.

이 인터뷰에서 두 장군은 스스로가 즉결처형을 행했다고 고백 했다. 통계에 따르면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에 집에서 체포된 2만4000명 가운데 3024명이 실종됐고 이들은 대부분 즉결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알제리 수도 알제의 경찰 책임자였던 폴 테트정(Paul Teitgen)은 스스로가 24명의 죄수를 즉결처형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잔혹행위가 전혀 즐거운 것이 아니었지만 당시 이미 일반화된 관행이었다”고 증언했다.



당사자들의 고백이 잇따르자 이 문제는 정치쟁점이 되었다. 11월 말 사회당과 함께 집권 좌파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산당은 의회 내에 알제리 전쟁시 잔혹행위 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잔혹행위를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수반인 사회당 총리 리오넬 조스팽은 이를 거부했다. 지금껏 공개된 사실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자크 시라크가 속한 공화국연합(RPR)을 비롯, 대부분의 정당들이 총리와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사회당 소속으로 현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는 자크 랑이나 연대와 고용부장관직 시절 주당 35시간의 노동시간 단축을 밀어붙였던 마틴 오브리 등은 정부의 시인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을 이끌고 있는 르펜은 잔혹행위 자체를 부정하며 전쟁 당시 ‘과도한 심문’이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여론은 관망적 입장인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민의 5명 중 3명, 즉 60%의 국민이 알제리 전쟁시 잔혹행위에 대한 정부차원의 시인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단지 20%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무응답이었다. 또한 58%가 전쟁시 프랑스 군대에 의한 잔혹행위가 부정의한 행위라고 응답했고, 23%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행위라고 답했다. 흥미로운 것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정당의 지지자별 응답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좌파정당 지지자들 중 압도적 다수가 프랑스 군대의 잘못을 비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우정당을 비롯해 각종 우파정당 지지자들 역시 과반수 이상이 이를 비판하고 있다. 이는 다른 이슈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별로 찬반 양론이 분분하던 지금까지의 프랑스 여론조사 결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즉 일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전쟁 잔혹행위가 부당한 행위임을 인정한 것이다.

알제리 전쟁시 잔혹행위가 비인도적 행위라는 여론의 판단은 잔학행위를 저지른 군인들에 대한 처벌문제까지도 공론화하고 있다. 정부는 좀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사실들이 확인될 때까지는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은 잔혹행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앰네스티는 알제리 전쟁시 비인도적 행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킬링필드의 크메르 루즈에 대한 비난, 2차대전 이후 수십년이 지나서야 행해졌던 98년 모리스 파퐁의 친나치 행위에 관한 재판,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의 신병인수 요구, 유고연방의 전직 대통령 밀로세비치를 헤이그 국제재판소에 기소하려는 프랑스의 움직임 등이 모두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프랑스 형법은 반인도적 범죄에 공소시효를 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 국민의 47%는 알제리 전쟁기간의 잔혹행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반대 여론은 39%에 불과하다.

“고발한다!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여론에 떠밀린 정부는 실제로 알제리 전쟁 당시 광범위한 잔혹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확인작업을 정부차원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과제는 역사가들에게 맡겨졌다. 조스팽 총리는 12월 초 알제리 전쟁 기간 프랑스군의 잔혹행위에 대한 역사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 발표와 함께 곳곳에 산재해 있는 모든 관련 문서고를 알제리 역사가들을 포함해 모든 역사가들에게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각종 공공문서가 문서보관법에 따라 30년, 혹은 50년 등 정해진 기간에 일반에 공개되는데 알제리 전쟁과 관련한 문서는 아직 공개시기가 되지 않은 문서라도 모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이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30년이 지나 이미 공개된 문서나 언론사료 등을 가지고 알제리 전쟁에 관한 연구작업을 했던 일부 역사가들은 기존의 문서로도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의 계획적인 잔혹행위가 확인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추가 공개될 문서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또다른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알제리에서는 아직 이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알제리 정부는 공식적 입장표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다만 일부 진보적 언론들이 연일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어쨌든, 알제리 전쟁시 프랑스군의 잔학행위 문제는 정부가 구성한 역사가 위원회의 활동 결과에 따라 새롭게 전개될 것 같다. 수년 안에 역사가들의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면 정부의 공식적 시인과 사과, 책임자 처벌 문제 등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드레퓌스의 후손이나 파리 코뮌 가담자들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사과는 100년이 더 걸렸다. 시라크 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친나치 괴뢰 정부였던 비시정부의 유태인 탄압에 대해 50여년이 지나서야 국가의 이름으로 사과했다.

과거의 잘못과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책임 규명, 시인과 사과는 ‘통과하지 못한 과거’를 통과하는 하나의 사회적 의식이다. 일단 역사가들의 손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광범위한 사실 조사 작업이 맡겨졌지만,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책임 규명과 시인 및 사과는 가까운 장래에 이뤄질 것 같다. 20세기에 프랑스가 통과하지 못한 또 하나의 과거를 통과하려는 전국민의 의지가 역사가들과 정치인들을 눈 부릅뜬 채 지켜볼 것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0.12.28 265호 (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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