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5

2000.12.28

부시 외교정책 좌우할 ‘흑인 조타수’

  • 입력2005-06-13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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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외교정책 좌우할 ‘흑인 조타수’
    내년 1월20일 미국의 제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의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46).

    사실 그는 워싱턴의 ‘이너서클’ 멤버로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흑인인데다 여성이고 나이도 젊다.

    그럼에도 그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된 것은 그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특별함 때문에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10세 때 부모를 따라 워싱턴으로 여행온 그는 창살틈으로 백악관을 쳐다보며 아버지에게 “언젠가 저 건물에서 일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탠퍼드대 부총장 출신의 콘돌리사 라이스는 구소련 및 동유럽 전문가다. 소련이 붕괴되기 이전인 냉전시절 크렘린 내부사정에 정통했던 그는 “나는 소련의 고위 장성에 대해 소련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소련에 관한 내 지식은 모두 라이스가 가르쳐준 것”이라고 그의 명석함을 칭찬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음악가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부시 당선자의 외교정책자문관으로 부시의 외교-안보팀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지난 여름 부시 당선자가 전국 투어를 돌며 유세를 다니는 동안에도 일주일간 몬태나주에서 열린 피아노 캠프에 참가해 하루 12시간씩 브람스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가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고 믿었던 부모는 그가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다. 콘돌리자라는 이름도 ‘콘 돌체자’(con dolcezza·부드럽게)라는 음악용어에서 따온 것이다.



    라이스는 54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나 15세에 덴버대에 입학, 19세에 학부를 마친 재원이다.

    그가 크렘린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덴버대 재학시절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아버지 조지프 코벨 교수의 국제정치학 강의를 수강한 것이 계기가 됐다.

    노트르담대와 덴버대에서 각각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87년 미 합동참모본부의 전략핵정책 자문관으로 기용되면서 워싱턴과 첫 인연을 맺었다. 2년 뒤인 89년부터 91년까지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시 국가안보위원회 소련-동유럽 국장 및 대통령 국가안보 특별보좌관 등을 지냈다. 90년대 초엔 ABC방송의 시사해설자로 구소련 붕괴를 조리있게 설명해 유명해졌다. 이후 스탠퍼드대 교수로 돌아온 그는 94년 ‘최연소, 첫 여성, 첫 흑인’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스탠퍼드대 부총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부시 당선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95년 부시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텍사스 오스틴을 방문했을 때였다. 열광적인 미식축구와 야구 팬인 라이스는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단 구단주였던 부시 당선자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야구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부시 당선자가 그를 외교정책의 주요 입안자로 점지한 것은 98년 메인주에 있는 부시 일가의 집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부시 당선자와 라이스는 장시간 외교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힘의 균형’의 측면에서 외교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라이스는 미국이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보는 전통적인 공화당 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지난 8월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평화는 힘과 함께 시작되며 군대는 평화 유지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가장 확실한 칼”이라며 부시의 외교정책을 ‘원칙에 입각한 리더십’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힘, 특히 군사력이 대외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미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콘돌리자 라이스가 될 것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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