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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뒤로 가는 공기업 개혁

“개혁? 우린 그런 거 잘 몰라요”

내년 2월까지 공기업개혁 마무리 사실상 불가능… 기업가치 개선 뒷전, 사람 자르기 급급

“개혁? 우린 그런 거 잘 몰라요”

“개혁? 우린 그런 거 잘 몰라요”
순손실 3조원 회사에 사내복지기금만 12억원.’ 최근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2조원의 긴급자금을 지원받은 대한주택보증은 잇따른 건설업체 도산으로 보증 여력이 바닥나 이미 회사로서의 기업가치를 몽땅 까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사기진작’이라는 명분으로 조성한 사내복지기금은 무려 12억원에 달한다.

“공기업 개혁은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

지난해 7월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한 이 회사에는 아직도 노조가 없다. 이 회사의 사내복지기금은 노사협의회의 합의로 조성된 것. 일반적인 공기업에서 강성 노조의 요구에 따라 노조 달래기용으로 목돈을 내놓는 것과는 또다른 ‘노사 한마음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내복지기금은 회사 세전이익의 5% 범위 내에서 노사간 내부협의를 거쳐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적정한 복지비 지출을 ‘세전 이익의 5% 정도’로 보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적자투성이의 기업이 노사합의를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복지기금을 조성하더라도 공기업 개혁 차원에서 이를 되돌릴 수단은 아무 것도 없는 형편. 경영진을 포함한 회사 관계자 어느 누구도 사내복지기금은 별도법인에서 별도의 정관을 갖고 운영된다는 이유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손대려 하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조차도 “경영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경영 실적이 나쁜 최고경영자는 해임하겠다’는 대통령 언급 이후에도 이처럼 공기업 경영자들 사이에서 달라진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기업 개혁을 주도해야 할 경영자의 충원 구조가 지극히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공기업 경영 평가에 꾸준히 참여해 왔던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의 회고.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사장을 외부에서 공모한다는 방침이 발표된 뒤였다. 정작 사장 모집 공고를 낸 곳을 보니까 정기독자가 가장 적은 신문, 외국인들이나 볼 만한 영자신문, 가장 규모가 작은 신생 서치 펌(search firm) 등이었다. 결국 임용 절차만 바뀌었을 뿐 ‘눈가리고 아웅’식 절차를 통해 현직 사장이 그대로 유임되었다.”

불행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이 공공부문 개혁 완료 시한으로 설정한 내년 2월 말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공기업 개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다고 느끼는 국민은 별로 없다. 개혁이 마무리되기는커녕 구조조정과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퇴직 후 재취업 보장’ ‘퇴직금 갈라먹기’ ‘편법 임금 보전’등의 제몫 챙기기 사례만 최근 들어 잇달아 드러난 바 있다. 매각작업이 진행중인 담배인삼공사와, 노조파업과 이사장 감금 등으로 홍역을 치렀던 건강보험공단에서도 이러한 유사 사례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또 3조원이 넘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사내복지기금을 과다 책정하고 연월차 휴가 일수를 과다 산정해 지적받고 있다.

이처럼 적자 투성이의 문제 기업에서 주로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왔던 공기업 평가 작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평가 자체는 제대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시정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현재 정부는 공기업 개혁의 막바지 수순에 돌입해 있다. 대통령 직속 민간기구인 정부혁신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돼 지난 9월, 140여개 공기업에 대한 감사원 지적사항을 중심으로 막바지 확인 평가에 들어간 것. 특히 이 평가단에는 중립적인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내년 1월15일 보고서 제출시한을 한달 정도 남겨놓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까지 감사원에서 지적한 사항들이 제대로 시정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관계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공기업 평가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평가 대상 기업에서 보내온 조치사항 자료는 대부분 ‘노조에 통보했음’, ‘노조와 협의중’ 투성이어서 실제 현장을 방문해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감사원 지적사항의 이행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2월까지 공공부문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기는커녕 공기업 개혁이 결국 ‘절반의 실패’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하지 못한 공기업 민영화 등 일대 개혁조치를 과감하게 밀어붙이던 DJ의 공기업 개혁이 왜 이렇게 야박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일까.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단장을 맡았던 서강대 이우용 교수(경영학)는 ‘실기(失機)론’을 내세웠다.

“IMF 위기가 닥쳤을 때가 공기업을 개혁하기에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DJ정부는 이 절호의 시기를 놓쳤다. 지금 와서 정부가 면피하기 위해 공기업 개혁을 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의문이다. 3년 임기의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교수의 실기론에 동의한다면 더더욱 DJ 공기업 개혁은 정권 출범 초기 내세웠던 것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1막을 마무리지을 가능성이 크다.

“개혁? 우린 그런 거 잘 몰라요”
물론 중장기적으로 따지자면 현재까지 추진해 온 일부 공기업 민영화 등 공기업 개혁의 공과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는 엇갈린다. DJ정부 초기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에서 한전 등 5개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을 총괄했던 박개성 회계사는 최근 타결된 한전의 ‘1년 후 분할매각’에 대해서 긍정적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한전 민영화는 1년이 유보되었지만 대단히 성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 편법 보전 등에 국민이 공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경쟁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들이다.”

서울대 김준기 교수(정책학)도 “민영화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정치`-`경제`-`사회적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다”는 말로 공기업 개혁에 대한 일부의 조급증을 문제삼기도 했다.

그러나 공기업 개혁의 방향을 놓고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공기업 개혁의 본질인 것처럼 인식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 개혁의 본질은 두말할 나위 없이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효율성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영화는 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주인 찾아주기’를 통해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채 인력만 줄인다고 해서 공기업의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들의 임명 방식을 바꾸고 인식 전환을 통해 기업 가치를 개선하는 작업이 효율성 향상을 위한 지름길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나타나는 공기업 개혁 양상을 살펴보면 인위적 ‘사람 자르기’로 본질이 호도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람 자르기 방식으로 일단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다 보니 한전이나 금융노조, 담배인삼공사 등에서 무리한 이면합의나 위로금 지급 등의 도덕적 해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대략 25%의 인력 감축 규모를 정해 놓고 이를 맞추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다. 서강대 남성일 교수(경제학)는 이를 두고 “달리기를 해서 뱃살을 빼야 할 판에 수술대 위에 눕혀 놓고 팔다리를 잘라 몸무게를 줄이려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다시 소신을 갖고 공기업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공기업 경영자가 얼마나 되는지로 모아진다. 두말할 나위 없이 총선 불출마에 대한 대가 등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공기업 사장들의 경우 공기업 개혁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로 지목된다. 일부 정치인 출신 공기업 사장의 경우 아예 노골적으로 고유 업무는 등한시한 채 총선 준비를 위해 지역구에 내려가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정부투자기관 평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정권 인수 당시 인수위에도 참여했던 정부투자기관 J사장의 경우 (평가기간에도) 아예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말했다. J사장은 그 후 차기 총선 출마를 위해 임기중인데도 사표를 제출했다. 또 모 공기업 사장은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 사퇴 시한이 임박해 사표를 맡겨두었다가 정작 공천에서 탈락하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사표를 되찾아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제는 외부의 정치권 인사들을 낙하산식으로 임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유능한 경영인으로 하여금 공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공기업 경영자를 자르겠다’는 엄포는 무성하지만 ‘구조조정 전략을 훌륭하게 추진한 공기업 경영자를 포상하겠다’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공기업 경영자를 자르겠다’는 엄포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획예산처 유성걸 공공1팀장은 “(올해 이미 도입한) 사장 계약제도를 보다 내실화해서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정부가 공기업 사장을 해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년 2월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한달여 동안 DJ 공기업 개혁의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DJ의 공기업 개혁이 그나마 ‘절반의 성공’이라도 거둘 것인지, 아니면 ‘절반의 실패’로 그칠지 머지않아 판가름날 것이다.





주간동아 2000.12.21 264호 (p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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