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2000.12.07

사생활 보호 ‘사이버 레지스탕스’ 뜬다

98년 결성된 ‘세계 인터넷 해방 캠페인’… 개인정보 유출시키는 범죄 예방 활동

  • 입력2005-06-03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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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생활 보호 ‘사이버 레지스탕스’ 뜬다
    조지 오웰의 고향 영국에서는 매년 ‘빅 브러더 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98년 제정된 이 상은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이라는 인권단체가 개인이나 단체의 사생활 감시에 ‘기여’한 개인 혹은 정부기관, 회사에 주는 것으로 현재 미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로 퍼져나가 ‘빅 브러더’를 선정하고 있다. 98년 영국에서 첫번째 불명예의 주인공은 뉴암시. 이 도시는 거리에 140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지나가는 시민의 얼굴을 촬영하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의 신원을 조회하는 장치를 마련한 바 있다.

    올해 12월4일 열리는 미국의 ‘빅 브러더 상’ 중 ‘최고 스파이 상’ 부문은 ‘더블클릭’사에 돌아갔다. 세계 제1위의 인터넷 배너광고회사인 ‘더블클릭’은 “5000만 명에 달하는 네티즌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공로”로 이 상의 수상자가 된 뒤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다.

    전세계는 지금 얼굴 없는 ‘큰 형님’의 감시 하에 있다. 지난 6월, 미국의 부모들은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 마텔사(바비인형과 게임기 전문회사로 유명함)가 아이들이 쓰는 교육-오락용 시디롬에 스파이웨어를 숨겨 사용자 몰래 개인정보를 빼내간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10월24일 영국 정부는 기업이 사원들의 이메일과 전화 내용을 감시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노조가 통탄할 일은 이때 사원의 동의가 전혀 필요없다는 사실이다. 또 오는 12월 유럽의회는 사이버범죄 방지에 대한 조항을 인준할 예정인데, 범죄방지를 빌미로 개인정보 유출은 훨씬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국가들은 이제 미국의 ‘카니보어’(Carnivore)와 같은 감시 시스템을 모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FBI가 만든 전자우편 감시시스템 카니보어는 국제적 차원에서 ‘테러’나 ‘마약’ 등 의심스러운 용어를 검색하여 이메일을 도중에 가로채도록 돼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통신감청시스템 ‘에셜론’이 독일과 프랑스의 입찰 가격 정보를 빼내간 사실이 밝혀지자 유럽은 미국의 부도덕함을 성토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유럽의회는 올해가 끝나기도 전에 각 국의 ‘에셜론’ 개발을 허용한다는 소식이다. 첨단도청장비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법 제정을 추진중인 ‘시민의 권리와 자유위원회’가 유럽의회 소속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나치보다 더 무서운 이름 없는 사이버 적을 타도하기 위해 사이버 레지스탕스들이 나섰다. 이들의 정식 명칭은 ‘세계 인터넷 해방 캠페인’(GILC). 표현의 자유와 네티즌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1996년 결성된 이 기구는, 유럽과 미국의 60여 기구가 연대해 만든 시민단체다. 여기에는 미국의 시민자유연맹(ACLU) 인터넷소사이어티(IS) 휴먼라이츠워치(HRW)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전자개척자연합(ALCEI), 오스트리아의 작은 해커 클럽도 포함돼 있으며, 그 최전선에 프랑스의 인터넷 사용자연합(AUI)이 있다.

    ‘세계 인터넷 해방 캠페인’은 유럽 의회의 사이버범죄 조항이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크나큰 위협’을 고발하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고, 유럽의회에 그 조항의 위험을 경고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빅 브러더 상’의 반대편에는 ‘빅 브러더 쇼’가 있다. ‘빅 브러더 상’이 프라이버시 침해를 규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빅 브러더 쇼’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게임의 룰로 삼는다. 오늘날 전세계 TV는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그들의 갖가지 행동을 24시간 내내 생중계하는 이른바 ‘인터넷 서바이벌 게임’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 쇼의 원조는 작년 가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빅 브러더 쇼’로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11개국으로 퍼져나갔고 한국에도 최근 도입됐다.

    ‘빅 브러더 쇼’의 성공과 그 놀라운 파급 속도를 보면, 인간의 불건강한 노출증(출연자측), 엿보기 심리(시청자측)를 조장하면서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이 쇼를 실재 세계에 대한 과장된 패러디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것을 만드는 ‘빅 브러더’ 제작자들의 제국주의다. 그들이 만든 TV 속의 ‘빅 브러더 쇼’는 머지 않아 우리의 실재 세계와 자리를 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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